영화감독들의 방송 드라마 연출이 줄을 잇고 있다. 이른바 TV영화의 제작이 붐을 이루고 있는 것.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제 영화의 시대가 끝나고 TV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진정 영화의 시대는 지났는가. 영화감독들의 TV드라마 제작 러쉬의 현황을 점검한다. 더 나아가 방송통신의 융합을 넘어 방송과 영화의 통합 현상을 알아 본다. 이 글은 미디어 전문지 '미디어 미래'에 실린 글임을 밝힌다. - 편집자 |
김윤진, 신은경 주연의 스릴러 영화 <6월의 일기>를 만든 임경수 감독은 요즘 꽤나 분주하다. 물론 새작품 준비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요즘 주로 다니는 곳은 충무로가 아니다. 여의도다. 충무로에서 새영화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여의도에서 새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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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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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충무로니 여의도니 하는 말들은 그냥 상징일 뿐이다. 임경수라는 영화감독이 영화에서 방송으로 축을 옮기고 있음을 가리키는 의미다. 임경수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려는 상대는 공중파TV 뿐만이 아니다. CGV, OCN 등 케이블 채널과 위성TV인 스카이라이프, 심지어 IPTV까지다. 그는 여기가 영화 쪽보다 훨씬 시장이 넓다고 생각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이제 드디어 방송과 영화가 몸을 섞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 쪽이 더욱 그럴 필요가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임 감독은, 비록 제작이 중단되긴 했지만, 얼마 전 OBS TV에서 방송할 요량으로 <미스터 킹 밴드>라는 8부작 미니시리즈의 제작에 착수하기도 했다. <미스터 킹 밴드>는 임하룡, 김청, 전영록 등 '7080 세대' 연기자들을 출연시키는 코믹 드라마다. 임경수 감독은 현재 이런저런 이유로 이 작품을 첫회만 찍고 잠시 촬영을 중단한 상태다. 또 다른 유명감독 박진표도 최근 배우 겸 프로듀서인 백종학(<강원도의 힘>)의 동생이자 방송사 PD 출신인 백종우와 손을 잡고 드라마 제작사를 설립했다. 이름은 '프로시안 미디어'. 박진표 감독 역시 이제 영화든 TV든, 어느 것이 먼저인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감독으로서 궁극적으로 박진표가 추구하는 것은 물론 영화다. 하지만 영화가 영화다워지기 위해서는(영화 일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방송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임경수나 박진표 감독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요즘 영화계의 새로운 세태다. 스타감독인 장진 감독도 케이블 채널에 단편 드라마를 발표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중견감독인 박종원 감독은 이미 8부작 역사드라마인 <8일>을 찍기도 했다. <인어공주>의 박흥식 감독은 SBS와 한창 드라마를 개발중에 있다.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 역시 방송용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할 요량으로 베트남에 가있다. 한마디로 러쉬다. 영화감독들의 방송으로 줄지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 영화가 방송을 껴안아야 하는 이유 영화감독들이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이유는 알고 보면 간단하다. 영화 쪽에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혹은 점점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화 쪽에서 일이 없다는 건, 영화가 만들어지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얘기다. 그건 곧 돈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투자가 현재 극도로 위축돼 있다는 얘기다. 영화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방법은 당연히 영화의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영화를 만들어서 돈을 벌 수 있다면 투자자들은 앞다퉈 줄을 설 것이다. 영화가 3~4년 전처럼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라고 생각되면 여기저기서 영화를 만드는 망치 소리가 들릴 것이다. 영화감독들은 영화란 고기를 낚는 데만 집중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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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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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황이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영화의 투자수익률이 마이너스여도 한참 마이너스이기 때문이다. 돈을 투자만 하면 손해를 본다. 얼마 전 개봉한 청춘 로맨스 <허밍>같은 경우는 개봉 첫주말 고작 6만여명의 관객을 모았을 뿐이다. 이런 걸 두고 영화계에서는 흔히들 '재앙'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2007년 이후 영화계에는 이런 '재앙'이 부지기수로 발생했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그럼으로써 안전한 투자자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영화계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그리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돈이 적게 벌리는 한 돈을 적게 쓰는 것이다. 이른바 긴축재정을 펼치자는 것이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를 중심으로 한동안 평균 제작비를 낮추는 노력이 경주됐던 건 그때문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영화들마다 50억원에 이르는 돈을 쓰던 것을 30억원 선 혹은 그 이하로 낮추자는 것이다. 50억원이면 전국 150만 관객이 들어야지만 간신히 수지를 맞출 듯 말 듯하게 된다. 하지만 30억원 정도면 전국 90만 관객로도 가능해진다. 이건 해볼 만한 싸움이다. 일단 허리띠를 졸라매고 조금 고생을 하면 그 성의를 알아줘서 투자자들이 컴백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 90만 관객을 만들기도 이제는 힘에 겹기 때문이다. 또 대폭으로 비용을 줄이다 보니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되기도 한다. <허밍>같은 경우 마케팅비를 극도로 아낀다는 취지로 주연배우들을 TV버라이어티 쇼에 출연시켜 돈안들이고 영화의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을 썼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 셈이 됐다. 영화의 진짜 가치가, 이들이 출연했던 TV쇼마냥 희화화됐기 때문이다. <허밍>의 실패 이유는 궁극적으로 실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올바른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자본의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론 제작비 부분에서 거품을 제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영화는 분명 거품을 없앨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건 어찌 보면 소극적인 방법일 수 있다. 그리고 그다지 효과가 없는 방법으로 점점 밝혀지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때론 보다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돈을 들일 영화는 충분히 돈을 들이고 그럼으로써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돈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투자자가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이들의 옆자리를 든든히 지켜줘야 한다. 이는 곧, 한편으로는 제작비 절감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영화에 투자할 '큰 손'을 찾아야 하는 일이다. 일종의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 국내 영화계가 다소 휘청거리고 있긴 해도 과연 향후 가치를 믿고 일단 '묻지마' 투자를 해줄 상대는 없을까. 있다. 그게 바로 방송이다. 방송자본과의 결합은 크게 위축돼 있는 영화 투자환경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대안이다. 영화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솔루션은 여기에서 찾아진다. 막대한 방송 자본과의 결합을 통해 안정적인 투자 환경이 조성되면 다양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미학적 실험들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작품성 면으로나 흥행성 면으로나 뛰어난 작품들이 잇달아 나오게 되면 시장은 불황 국면에서 활황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
. 방송이 영화를 껴안아야 하는 이유 그렇다고 무턱대고 영화가 방송 쪽을 향해 구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방송도 영화 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환경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상황이다. 이른바 新방송통신의 시대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구축되고 있는 방송 분야는 일종의 '콘텐츠의 바다'다. 콘텐츠을 집어 넣고 또 집어 넣어도 망망대해, 여전히 빈 곳이 너무 많다.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가 요구된다. 케이블TV 채널이 100개 이상 늘어나도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볼 게 없다'는 볼 멘 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때문이다. 채널은 많은데 여기 저기 채널마다 같은 프로그램을 재방,삼방, 끊임없이 재탕하고 있을 뿐이다. 심한 경우는 인기 버라이어티쇼인 <무한도전>이나 <1박2일><해피 투게더><상상 플러스> 등을 세개, 네개 채널에서 동시에 방영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수용자들은 금방 등을 돌릴 공산이 크다. 어디선가 새로운 이야기의 영상을 만들어 공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중 가장 인기있는 품목은 드라마다. 하지만 이미 방송 쪽으로서는 드라마를 만들 인력 풀이 고갈된 상태다. 이걸 어디서 보충할 것인가. 나아가 그 과정을 통해 기존의 드라마와는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일까. 있다. 영화 분야의 인적 자원을 활용하면 얘기가 풀린다. 그리고 그 인력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는 돈을 쓰면 된다. 가뜩이나 영화계는 돈이 고갈된 상황이고 거기 사람들은 한창 구직난에 시달리고 있는 참이다. 이건 서로를 위하는 일이다. 방송과 영화의 결합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그때문이다. 따라서 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영화라는 벽을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대대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영화가 벽을 뛰어 넘어 방송과 손을 잡는 순간 새로운 영화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건 방송도 마찬가지다. 이건 마치 A와 B를 합쳐 C가 만들어지는 변증법적 과정과 같다. 영화와 방송이 결합되면 영화방송이나 방송영화, 영화적 드라마나 드라마틱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영상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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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 ⓒimbc.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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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같은 실험은 할리우드가 성공시켰다. 할리우드의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는 제리 브럭하이머가 성공시킨 일련의 TV 시리즈들이 그것이다. 시즌 드라마
는 할리우드 시장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킨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이제 영화의 외지 격으로 불리는 나라, 예컨대 카자흐스탄 같은 곳에까지 진출한다. 안가는 곳이 없다. 그 파괴력은 할리우드를 뛰어 넘는다. 영화가 방송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순간 엄청난 전파력과 함께 대규모의 시장을 얻게 된다. 가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아니면 그 무엇인지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에 스크린에서 얻었던 쾌락을 새로운 방식으로도 충분히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 미국의 어떤 방송사에서 송출되는 것인지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가 할리우드産, 혹은 할리우드의 어떤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의 여섯번째 시즌 마지막 2회분은 특히, 영화광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퀜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들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이 마지막 2회분은 묶어서 극장으로 가져가 바로 틀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TV드라마인 동시에 영화였기 때문이다. 할리우드가 유형, 무형의 방식으로 새롭게 대규모 시장을 구축해 내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 영화방송통신 융합의 시대 따라서 혼란에 빠진 국내 영화산업을 구해내는 일은 영화인끼리만 해서는 안된다. 그 솔루션은 이제 더 이상 영화 안에서만 찾을 수가 없는 노릇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를 총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경기가 급속도로 하강할 때 라면값, 자장면값 등등 생필품 가격을 잡으려고 재래시장을 뛰어 다닌다 해서 경제살리기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조용히 책상에 앉아 골똘히 세계 원자재 값의 폭등 원인을 분석하고 금리나 환율의 상황을 점검하는 등 보다 거시적인 경제환경을 고민해야 한다. 영화의 위기도 똑 같은 문제다. 방송이나 통신 분야의 구조조정도 똑 같은 문제다. 따로따로 들여다 봐서는 솔루션이 찾아지지 않는다. 이를 한데 묶어서 봐야 한다. 일본에서는 십수년 전부터 영화든 방송이든 창작자들을 지원하는 여러 제도를 실시해 왔다. 그런데 여기서 창작자는 영화를 감독하거나 드라마를 연출하는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엉뚱하게도 이들이 열심히 지원하려고 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작가들 곧 소설가들이 포함된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영화의 위기든, 방송의 위기든 그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시나리오나 대본의 원작이 되는 '이야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화감독을 지원하고 독립프로덕션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끊임없이 '만들 거리'를 제공하는 진짜 창작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이유><모방범>)나 기리노 나쓰오(<다크>), 텐도 신(<대유괴>), 고이케 마리코(<욕망>) 류의 대중소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것, 그럼으로써 영화와 드라마들이 양산될 수 있는 환경은 여기서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영화계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그 같은 배경때문이다. 국내의 여러 지원제도나 지원기관도 생각을 바꾸면 공통의 문제를 도출할 수 있게 된다. 영화진흥위원회와 문화콘텐츠진흥원, 방송위원회와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등이 창작지원의 효과적인 모델을 만들어 내기란 사실 그리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결론은 단순하다. 문제를 병렬로 보지 말고 복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고 영화와 방송이 서로 다르다는 태도를 이제는 확실히 버려야 한다. 영화의 위기, 영화의 수익률을 회복시키는 일, 그럼으로써 전반적인 국내 영상산업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일은 통합을 넘어 통섭의 철학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제는 방송통신의 융합 뿐만이 아니라 방송통신영화의 융합이라는 차원에서 영화의 문제, 방송의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결국 발상의 전환이 먼저다. 대대적인 물갈이가 필요하다. 영화가 방송으로 가고 방송이 영화로 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든 방송이든 스스로가 스스로를 부정하는 혁명이 필요하다. 그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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