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느낌은, 진보신당은 노선이 틀렸다기보다는 전략상 실패를 했고, 민노당은 노선이 옳았다기보다는 전략상으로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상한가. 그러나 여하튼 감은 그렇다.
선거를 예측하는 감이라는 게 묘하다. 선거일 며칠 전에 의석 예측치를 기록해두고 예측의 정확도를 평가해보았는데, 민노당 4, 진보신당 1, 문국현당 3이라고 쓴 것이 거의 맞았다(이회창당 18, 통합민주당 85라고 썼었다). 그러고 보면, 한나라당 쪽이 남는데 거기에는 박근혜 세력이 그렇게 강세일 줄 미처 몰라 예측이 아주 크게 빗나갔다. 전날에 박근혜계에서 이명박계로 줄을 바꾸면서 한 의원이 박근혜계를 "무슨 종교집단 같다" 운운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과연 그 결집력은 놀라운 수준이다.
선거 때에 가까운 후배인 진보신당 후보를 만나보았다. 역시 총선 20여 일 전에 창당했기에 유권자들이 당명마저도 잘 모르고 있다는 고충이었다. 잘 알고 있던 유권자도 "민주노동당 아니에요?" 하더란다. 그 후보의 표정에서 이미 저질러진,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대한 후회가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총선이 끝나자 여러 가지 진단이나 처방들이 나온다. 사후 약방문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개혁적인 학자로 잘 알려진 김형기 교수의 '진보가 사는 10가지 길(<조선일보> 4월 11일)' 같은 것을 주의 깊게 읽었다.
일반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거의 종합한 것 같은데 "반 시장경제, 반 기업 이미지를 탈피하자", "노동의 권리와 윤리를 함께 주장하자" 등은 크게 참고로 하여야 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얼마간 이의가 없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국민의 평균적 정서와 동떨어진 정책을 제시하지 말자"라고 했는데, 그 평균적인 정서란 대기업의 영향 아래 있는 거대 매스미디어들이 좌지우지하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진보진영의 dissent(불복)는 기존의 사회 통념을 깨고 새로운 사회 통념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그 이야기는 맞는 것 같지만 맞지 않는다.
또한 "민족주의의 틀에 갇히지 말자"고 하면서 뒤이어 민족경제론, 민족문화론만을 말하였다. 남북 간의 민족 문제, 그 강대국 국제정치 관계상의 맥락 같은 게 빠졌다. 민족주의의 과잉과 냉철한 현실적 판단력의 부족 등은 문제겠지만, 분단민족으로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이 떠안은 숙명이 아닐까.
민노당 내부의 NL과 PD파 간의 치열한 논쟁과 그 후에 있은 분당과정을 지켜본 경험으로도 그렇게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실패한 체제임이 분명하고 핵무기까지 만든 북한이 '악의 축'이고, 핵무기도 없고 알 카에다와 연결도 없는 이라크를 침략한 미국은 '정의의 사도'라고 단세포적으로만 볼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폭력이 최종적인 의지처인 국제 정치의 정글에서 말이다. 거기에 민족적 고민이 있고 아픔이 있게 된다 할 것이다.
민노당과 진보신당 측 모두 다시 합치는 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독자적인 길을 가겠단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본다. 생각이 현저히 다른 두 정당끼리 이제 와서 굳이 무리하게 합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는 것이 진보운동에 있어서의 두 개의 궤도(two tracks)론과 단계론이다.
진보지식인 사회에도 크게 두 개의 궤도가 있다. 한쪽은 정책대안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무조건 올곧은 이야기만을 계속 주장하는 지성인이다. 정책대안이 없다고 하면 "노! 라고 말하는 것도 대안이다"라고 되돌아온다. 미국의 노암 촘스키가 떠오른다.
다른 한쪽은 무조건 올곧은 소리만 외친다고 되는 게 아니고 현실 정치에 도움이 되는 대안을 내고 참여해야 한다는 진보지식인이다. 글쎄. 누가 맞을까. 굳이 찾자면 내가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는 이정우(李廷雨) 교수 같은 사람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진보정당에도 두 개의(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개의) 궤도가 있을 수 있다. 영어로 말하여 dissent(불복, 이의제기)로 보람을 찾는, 아니 그 dissent만으로도 충분히 정치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당이 있다. 그것대로 충분히 역할이 있다고 본다.
미국의 진보적인 이단 정치인 랄프 네이더는 이번에도 대통령 선거에 나서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 "Dissent is the mother of ascent. And in that context I've decided to run for president." dissent(불복)와 ascent(상승)의 음운을 살린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계속 dissenter나 야당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고 어떻게 하든 집권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진보정당이 있다. 그 예는 너무나 많다. 우리는 외국 정당의 예를 들 때 흔히 미국, 일본, 영국 등을 자주 거론하는데 우리가 소홀히 하는 이탈리아도 흥미롭다. 2차 대전 후의 정치에서만 보면 역사적 상황으로 인하여 좌우의 대립이 팽팽했던 것부터 어쩌면 참고가 될 일이 많을 것 같다.
근래 외지(<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영문판 1월호)에 보도된, 본래 공산당 출신으로 이탈리아 대통령이 된 지오로지오 나폴리타노에 관한 정치생애 해설은 흥미롭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1991년 이탈리아 공산당(PCI)은 PDS(좌파의 민주당)로 탈바꿈하고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국제모임 SI(Socialist International)에 가입한다. 공산당의 일부는 재건공산당으로 남는다. PDS는 1998년 SD(좌파 민주당)로, 2007년 PD(민주당)로 바뀐다.
그러는 사이에 공산당은 사회당, 사회민주당 등과 합류하게 되고 지난날의 맑시즘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개혁주의적인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된다. 나폴리타노는 하원의장, 좌파연합의 내무장관 등을 거쳐 드디어 대통령에 이른다. 내각책임제지만 대통령의 정치적 역할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 유명했고 막강했던 이탈리아 공산당이 말하자면 영국 노동당처럼 변신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죽산 조봉암의 진보당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진보당에 대한 민노당의 인식은 애매한 데가 있다. 민노당만이 노동자 계급에 기반한 한국 초유의 진보정당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그들은 진보당을 진보정당으로 인정하는 데 소극적이다. 그러면서 죽산에 대해서는 존경의 뜻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이론적인 논의가 있어야 할 듯하다.
자유당 정권이 사사오입이란 억지 개헌을 강행하자 야당 진영은 호헌(護憲)을 명분으로 대동단결 움직임을 보인다(그것이 민주당이 되었다). 이때 죽산은 그 대동단결정당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만들지 않고 보수세력이 주류인 범야대동단결 정당에 참여하기로 한 결단은 정당정치의 전략전술로 연구 감이다.
죽산의 가입 제의에 한민당의 후신인 민국당계인 낭산 김준연, 유석 조병옥 등 보수파가 완강히 반대하고 동암 서상일은 적극 찬성하였으며 인촌 김성수는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지는 가운데 죽산의 가담은 무산되었다.
그래서 한민당의 8총무 가운데 하나였으면서도 개혁적이었던 동암과 죽산이 합류하여 진보적인 정당을 모색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결렬되어 죽산은 진보당으로, 동암은 민혁당으로 갈린다. 그때를 목격했던 죽산의 수석참모인 창정 이영근(나중에 일본에 망명하여 <통일일보>를 발행하고, 4·19 후에 서울에서 발행된 <민족일보>를 스폰서)은 죽산이 이른바 약수동파라고 지칭되던 완고한 당 간부들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한민당의 튼튼한 뿌리를 갖고 있는 동암 한 사람을 잡았더라면 비극을 맞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때 당시의 정치는 (지금도 비슷하지만) 죽산, 동암의 두 지도자만 손잡으면 당원들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 점이 주로 노동자계층에 기반한 오늘날의 민노당과 다른 점이기는 하다.
보수 본류인 YS정권 때 그의 정당에 진보적 정당인 민중당 출신의 이재오, 김문수 등이 입당할 수 있었던 것은 격세지감이 있다. 그때 대망을 품고 있던 최형우 의원이 학교동창인 안병직 교수의 권유로 그러한 파격적인(?) 영입을 성취시켰다는 소문이다. 그때 본래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함께 행동하지 않은 장기표는 어쨌든 지금까지도 떠돌이 별이다.
그러한 나폴리타노나 죽산의 경우에 비추어보면 민노당에서 진보신당이 분열되어 나온 것은 형태적으로는 역(逆)코스라 할 것이다. 죽산은 범을 잡으러 범굴로 향했고, 진보신당은 범을 피해 범굴에서 나왔고….
하기는 기독교의 구약성경에도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있다. 형제 살인까지도 불사한다. 진보 측에서는 그들 사이에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치열하여 오히려 카인과 아벨의 관계가 되기 쉽다고 전부터 유럽 진보정치에서 운위되어 왔었다.
성급하고도 무모한 장기예측을 시도해 본다면,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통합민주당과 문국현당과 진보신당이 일단 연합세력을 형성하는 일이다. 민주노동당은 독자적인 진보정당으로 갈 길을 가도록 놓아두고 말이다. 영국 노동당에서 갈라져 나온 사회민주당이 결국은 자유당과 합류하였다는 이야기는 전에 언급한 바 있다.
덧붙여 말한다면, 우선 통합민주당 측은 17대 국회 때 탄핵 파동에 힘입어 원내 다수가 되었는데도 개혁정책을 지그재그로 하여 실패하였으며 거기다가 그 성원 일부의 경망함으로 국민의 미움을 샀다는 점을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일관성있는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것인데 예를 들어 미국 민주당을 모델로 하여 개혁적 세력의 결집체로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 때는 '제3의 길'이라 하여 영국 신노동당의 블레어의 '제3의 길'과 통하기도 하였으니, 영국 신노동당을 모델로 하여도 무방할 줄 안다.
만약에 한나라당의 MB정권이 무모하게 대운하 계획을 관철하고, 인플레 정책을 따르면서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여 대기업을 더욱 살찌게만 하며, 교육‧의료 등 여러 분야에 신자유주의정책을 집행하여 나아갈 때, 자칫 사회 계층 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불만은 더 쌓일 것으로도 내다보이기도 한다(물론 한나라당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그렇게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럴 때 개혁운동, 또는 진보운동은 힘을 받을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잡지 <헌정>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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