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한반도 대운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국민들을 겁나게 만든 이 정부가 또 다시 국민들을 그야말로 사시나무 떨듯 떨게 만드는 공포 정책을 발표했다. 저 악명 높은 '0교시 수업'과 '우열반'을 완전히 '자율화'하겠다는 것이다. 실용과 능력의 이름으로 투기와 표절로 범벅된 사람들을 청와대 수석이며 장관에 임명해서 국민들을 뒤로 자빠지게 만들더니, 이제는 자율의 이름으로 공포의 '0교시 수업'과 '우열반'을 대대적으로 권장해서 국민들을 숨죽이게 만들려는 모양이다. 국민에게 헤드록을 가해 정신을 빼놓고는 바로 이어서 코브라트위스트를 거는 것인가? (☞관련 기사: "0교시, '야자', 우열반…학교 마음대로!" )
'0교시 수업'과 '우열반'은 이미 과중한 학습 부담과 과열 경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이미 과중한 학습 부담과 과열 경쟁으로 적지 않은 아이들을 학교를 가지 않거나 아예 세상을 떠나고 있다. '0교시 수업'과 '우열반'은 더 많은 아이들을 세상 밖으로 내몰 것이다. '0교시 수업과 우열반의 자율화'라는 말은 언뜻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모는 것의 자율화'가 될 위험이 너무나 크다. 과중한 학습 부담과 과열 경쟁 때문에 이미 많은 아이들이 죽었다. 이 문제를 극단적으로 악화시키는 것이 실용이고 능력인가?
1986년 1월 15일 새벽에 '전교 1등'으로 당연히 '서울대'에 진학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던 15살의 여중생이 시의 형식으로 쓴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이 학생의 시는 '행복의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제목의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져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국민적 고질병인 '학벌사회'의 문제를 널리 알리기도 했다. 그 가슴아픈 시를 다시 찾아 읽는다.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난 그 성적순위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위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
(…)
난 나의 죽음이 결코 남에게
슬픔만 주리라고는 생각치 않아.
그것만 주는 헛된 것이라면,
난 가지 않을 거야.
비록 겉으로는 슬픔을 줄지는 몰라도,
난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줄 자신을 가지고
그것을 신에게 기도한다.
('O양의 유서', <내 무거운 책가방>, 실천문학사, 1987)
친구들과 놀고 싶고 산과 바다를 좋아한 소녀였던 'O양'은 사랑하는 엄마마저 자신을 '로봇', '인형', '돌멩이'처럼 다루는 답답하고 비정한 현실을 견디다 못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는 큰 희망을 품고 떠났다. '0교시 수업과 우열반의 자율화'는 'O양'이 세상을 떠나며 우리에게 남겨준 희망을 짓뭉개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공부기계'로 만들고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나누는 정책을 '교육'의 이름으로 추진하면서 이 정부는 국민의 불안과 불신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국민들을 괴롭히는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O양'이 지적했듯이 무엇보다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늘어놓고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학벌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아이들이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부모들도 불안에서 해방되어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병적인 지경에 이른 이 나라의 학벌경쟁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들의 성적이 떨어져서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매일매일 가시방석 위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시킨다. 아이들은 과중한 학습 부담과 과열 경쟁으로 고통받고, 부모들은 과중한 사교육비와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 해 사교육비는 어느덧 무려 30조 원을 넘어섰다. 중산층조차 사교육비 때문에 다른 가계비를 크게 줄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이다. 0.1% 안에 들어가기 위해 사실상 100%가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정부는 무능한 정부이고, 이런 상황을 부추기는 정부는 악랄한 정부이다. 국민의 복지와 국가의 안정을 추진하는 정상적 정부라면, 아이들과 부모들을 모두 끝없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학벌 경쟁을 하루빨리 완화시켜야 한다. 학벌 경쟁과 사교육비를 생각하면, 이 나라는 정말 애 낳기 무서운 나라이다.
학벌 경쟁이 완화되지 않는 한, 이 나라는 결코 '선진화'될 수 없다. 대학의 권력화도 그 좋은 예이다. 학벌 경쟁이 사실상 '묻지마' 식으로 관철되고 있다 보니 사교육비의 문제에 덧붙여서 대학의 권력화라는 황당한 문제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아예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조차 어렵고, 반면에 이른바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그것만으로 '실력자'로 인정받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의 대학시장은 이른바 '좋은 대학'을 정점으로 하는 강력한 공급자 중심시장이다.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의 권력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로 등록금 문제를 들 수 있다. 많은 대학들이 멋대로 등록금을 책정하고 사용내역도 거의 공개하지 않는다. 이른바 '좋은 대학'들은 한결같이 엄청난 돈을 쌓아 놓고도 매년 돈이 없다며 등록금을 엄청나게 올리고 있다. 이미 대학 등록금만 무려 12조 원을 넘어섰고, 국민들은 대학을 이제 '인골탑'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듯 국민들의 골수를 빼서 '정치교수'들과 '업자교수'들이 교수입네 학자입네 행세를 하며 호의호식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기도 하다.
이 상태대로라면 머지않아 대다수 국민들이 사교육비와 대학 등록금 때문에 커다란 채무자가 되고 말 것이다. 또한 근로소득을 통해 이 채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없기 때문에 결국 대다수 국민들이 가장 손쉬운 '재테크'인 부동산 투기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학벌사회-투기사회-토건국가의 문제가 긴밀히 연관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특수성을 형성하고 있다. 그 귀결은 1% '강부자'의 지배가 강화되는 것이다. 이렇듯 학벌사회-투기사회-토건국가는 양극화의 원천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관련해서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또 있다. 바로 미성년자 강간 범죄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 형사(송강호)가 서태윤 형사(김상경)에게 발차기를 하면서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고 외친다. 정말 이 나라는 '강간의 왕국'인가? 여고생을 상습 강간한 교육공무원이 아무런 형사처벌도 받지 않고 청소년수련원으로 옮겨서 근무하는가 하면, 이번에는 여고생과 그 여중생 동생, 동생의 친구를 상습 강간한 자를 신고했으나 관할서가 아니라며 떠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참담하다. 해야 할 일은 제대로 안 하고 아이들과 부모들을 더 괴롭히기로 작정한 정부 때문에 더욱 더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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