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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고쳐야 하나, 사회를 고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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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고쳐야 하나, 사회를 고쳐야 하나?"

[현장] 시설장애인의 목소리…"우리도 누릴 권리 있다"

참았던 말은 끊임없이 쏟아졌다. 순서가 이미 다음 차례로 넘어갔는데도 다시 마이크를 움켜잡고 못 다한 말을 이어가는 이도 있었다. 발언은 때로 호소로, 분노로, 또는 울먹임으로 마무리됐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가슴에 묻었던 사연을 온전히 말로 풀어내기에 5분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들어주는 이도, 말할 기회도 없던 이야기였기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은 석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경기도 김포 석암베데스다요양원(석암요양원)에서 10~20년 이상 생활해온 장애인이었다. 10일 서울시청 앞에서 '사회복지시설 비리 척결과 탈시설 권리 쟁취를 위한 공동 투쟁단' 주최로 열린 '탈시설을 위한 시설생활인증언대회'에 참석한 10명의 석암요양원 생활인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통해 시설 내 생활을 알렸다. 비리, 인권 침해 등 일명 '시설 비리'라 불리는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이렇게 직접 나선 건 사실상 처음이었다.
석암재단은…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을 비롯해 3개의 장애인 복지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복지재단인 석암재단은 지난해 한규선 씨 등 시설 내 생활인을 통해 각종 문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들 시설은 지난해 3월 서울시 감사 결과 회계서류를 허위로 작성해 횡령하는 등 모두 1억700만 원의 장애수당을 부적절하게 집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매달 국가가 장애인 개인에게 지급하는 장애수당을 시설에서 임의로 사용했던 것이다. 관할청인 양천구청은 이를 환수조치 했다.

재단을 설립했던 이부일 전 이사장은 지난달 6일 보조금 횡령, 사회복지사업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 전 이사장과 인척 관계인 제복만 현 이사장을 비롯해 시설장 2명도 공모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한규선 씨를 비롯해 석암요양원 생활인들과 장애인단체로 구성된 '석암재단 비리 척결과 인권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3월 25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법인설립허가 취소와 시설생활인의 탈시설권리를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죽어서 살아왔는데, 한번 죽지 두번 죽나요?"
▲김진수 씨(59)는 "우리나라가 이제는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1980년대 후진국을 살고 있는 것 같다"며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우리에겐 누려야 할 행복이고 권리"라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밖에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었어요. 사회 적응 훈련이라고 해서 1 년에 한 두번 정도만 나갈 수 있었어요. 맨날 방에만 누워있었죠. (…) 사실 지금도 선생님은 가지 말라고, 농성하러 다니고 자고 그러면 몸 상태가 더 굳어진다면서 말리세요. 하지만 내 몸 안 좋으면 전화하겠다고 그러고 나와요. 지금까지 죽어서 살아왔는데, 한번 죽지 두번 죽나요? 사실 시설에서 절대 살고 싶지 않아요. 갈 곳만 있으면, 주거지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나와 살고 싶어요."


김동림 씨(47)는 중학생 시절 교통사고를 계기로 자신이 유전병인 뇌위축증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집에서만 생활하던 그는 아버지로부터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 자진해서 시설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정작 시설에 들어와 마주친 것은 견딜 수 없는 구속이었다.

25살이던 1987년 석암요양원에 들어온 김 씨는 지적 장애 등을 가진 50~60대 장애인 5명과 함께 한 방에서 생활을 해야 했다. TV 하나를 보기 위해서도 방을 나와 휴게실에 가야 했지만 그것조차 일일이 보고를 해야 했다고 한다.

그는 "비록 시청 앞에서 잠을 자고,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서명을 해달라고 말을 하다 보면 입이 얼고 몸이 아프다"며 "하지만 여기엔 자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설은 항상 이상한 일 투성이였다"

"시설은 항상 이상한 일 투성이였어요. 손님들은 분명 왔다 갔는데, 그 사람들이 가져온 먹을 것이나 후원품은 주지 않았거든요. 나중에야 알았는데, 후원품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바로 주지 않고 창고에 넣어두고 안 줬었어요. 대신 유통기간 지난 과자랑 빵을 줬어요. 라면도 그렇고."

태어난 뒤 47년 동안 밖에 나가본 적이 거의 없다는 윤석도 씨(47)는 "어머니가 살아 생전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스스로 시설에 왔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 시설 민주화를 위해 요양원에서 서울시청 앞까지 3시간이 넘는 길을 거의 매일 오가며 농성에 참여하고 있다.

"농성에 참여하니까 원장이 가족에게 연락을 했대요. 걱정된다고. 놀라서 찾아온 형에게 내가 말했죠. '좋아지기 위해서 한다'고. 사실 나는 여기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어요. 집도 없고. 큰 형님은 63살이니 나이도 있으시고. 그렇지만 그게 두려워서 안 싸울 수는 없잖아요. 내 권리를 찾기 위해서 해야 해요. 나도 시설에서 나와서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지금 정부에서 지원하는 활동보조 몇 시간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어쩔 수 없이 시설에서 살 수밖에 없어요."

"나를 고쳐야 하나요, 사회를 고쳐야 하나요?"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봐요. 사람들 중 반이 장애인이었다면 휠체어를 타고 다녀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 거라고. 혹 모두가 장애인이고 몇몇만 비장애인이었다면 오히려 비장애인이 창피를 당했겠지요?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회는 장애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요. 사회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배우지도, 일하지도, 연애를 하지도, 평범하게 살지도 못하고 시설에 사는 거예요. 나를 고쳐야 하나요? 사회를 고쳐야 하나요?"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생활인 중 가장 나이가 어린 김현수 씨(33) 역시 시설에서 생활한 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9살부터 시설에서 살아왔다는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서 지내야만 하는 시설이 너무 싫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부모는 "시설에 가지 않으면 어디서 먹고 살거냐"라고 말하며 강요했고, 넉넉치 않은 집안이었지만 입소금은 2000만 원이나 내야 했다. 집에서는 "많은 돈을 냈으니 얌전히 살아라"라고 말했다.

8년 전쯤, 자립 생활을 해나가는 장애인들을 알게된 그는 이렇게 지낼 수만 없다는 생각에 한 직업학교에 지원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소지해야만 입학할 수 있다며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김현수 씨는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여기서 하는 일은 잘 할 수 있으니 지켜봐 달라"며 사정을 했지만 결국 필기시험을 풀지 못해 "누가 중학교 안 다니라고 했냐"는 핀잔만 들어야 했다고 한다.

그는 "못 배우니까 배우고 싶어서, 남들처럼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싶어서 간 거였는데라면서 엄마에게 원망을 했다"라며 "결국 엄마에게 부탁해 다시 석암요양원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선진국가? 우리는 아직 후진국에서 사는 것 같은데…"
▲100% 국고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복지 시설을 감독해야 할 정부는 정작 '남의 일'이라는 듯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프레시안

이날 발언에 나선 생활인들은 모두 지적 장애를 갖지 않은 장애인들이었다. 이들은 "사실 장애인 시설에는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서도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해 이를 지적하지 못하는 지적 장애인들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매월 장애인 개인에게 국고 보조금으로 지급되는 10만 원 가량의 장애인 수당을 '무연고'나 '지적장애'를 이유로 주지 않는 등의 비리는 이미 공공연한 행태다.

그러나 100% 국고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복지 시설을 감독해야 할 정부는 정작 '남의 일'이라는 듯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6년 10월 서울시는 비리 사실이 밝혀진 성람재단으로부터 강원도 철원 지역 세 개 시설을 기부채납 받기로 정작 채납을 미루고 있는 재단 측에 대해서는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서울시와 관할구청 측은 검찰에 의해 이사장 등이 기소된 석암재단에 대해서도 법원의 결과가 나온 뒤에나 설립허가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석암요양원 생활인과 장애인단체들은 지난달 25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서울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현재 정부는 이처럼 수수방관 속에서 비리가 끊이지 않는 복지 시설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사회복지시설 생활인 인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의 김정하 활동가는 "현재 정부는 '21세기 희망한국'이라는 이름으로 760억 원을 들여 장애인 시설을 짓겠다고 한다"며 "그러나 어느 누구도 유배지처럼 사회와 격리된 시설에서 사회적 활동이 단절된 상태로 사는 건 바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나서야 할 건 복지 사업을 내세워 이익을 챙기려는 재단을 돕는 일이 아닌, 장애인이 불편없이 살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날 발언에 나선 이 중 하나인 김진수 씨(59)는 "우리나라가 이제는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1980년대 후진국을 살고 있는 것 같다"며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우리에겐 누려야 할 행복이고 권리"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에 대해 석암요양원 제복만 원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김동림 씨의 경우 자진해서 들어온 건 사실이지만, 법적으로 보호감찰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또 "우리 시설은 대문이 없고 생활인의 외출을 금지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또 제 원장은 "김현수 씨는 스스로 직업학교에 들어간 게 아니라 시설에서 들여보낸 것"이라며 "부모가 확인해준 입소금은 2000만 원이 아니라 700만 원 가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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