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특검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삼성 비리 의혹을 앞장서서 공론화 했던 이들이 한 목소리로 하는 이야기다.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는 7일 서울 한남동에 있는 조준웅 특별검사팀 사무실을 찾아 특검 수사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특검 수사 끝나면, 검찰로 사건 넘겨야"
삼성 계열사가 여러 방식으로 회사 자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 정ㆍ관ㆍ법조계 인사들에게 돈을 뿌리며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 등에 대해 특검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김 변호사는 "이달 23일 특검 수사가 끝나면 검찰로 사건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삼성 관련 사건을 고발한 단체들도 이날 특검 사무실을 방문해 기자 회견을 열고, 수사 의견서를 제출했다. (☞참여연대-민변의 기자회견문 전문, ☞참여연대-민변의 삼성특검 수사의견서 전문)
이들 단체들은 이 자리에서 "특검은 불법 로비 의혹 관련 고발장조차 접수하지 않았다"며 "경영권 승계 관련 의혹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특검팀은 성과를 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들 역시 김 변호사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특검, 결정적인 갈림길에서 삼성 편 들다
실제로 특검은 삼성이 차명계좌로 관리한 수조원 가량이 모두 고(故) 이병철 전(前) 삼성 회장의 유산이라는 삼성 측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렇게 되면, 차명계좌에 담긴 돈은 이건희 회장의 개인재산이 된다. 이 경우, 유산을 물려받아 관리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여부가 수사의 초점이 된다.
하지만 삼성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다. 김용철 변호사는 지난해 "삼성 계열사들이 그룹 차원의 비자금 조성에 동원됐다"며 다양한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그리고 이런 증언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는 풍부하다.
김 변호사의 증언대로 삼성 계열사들이 그룹 차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회사 돈을 빼돌렸다면, 이 회장은 형사 처벌을 피하기 힘들다. 횡령·배임죄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조세 포탈에 따른 처벌 역시 추가된다. 그리고 차명계좌에 담긴 돈으로 고가 미술품을 구입한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 역시 같은 죄가 적용될 수 있다. 특검의 수사가 이 회장 부부의 처벌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에서 멈춰 있는 셈이다.
삼성 계열사의 비자금 조성, 정황 증거와 증언은 충분하다
차명계좌에 담긴 돈의 출처가 규명되지 않는다면, 이 회장은 구속을 피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들이 여러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대해 삼성 측이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풀이된다.(☞관련 기사: 삼성전자, <프레시안>에 10억 원 손배 소송)
삼성 계열사들이 업무처리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은 여러 차례에 걸쳐 제기돼 왔다. <프레시안>이 제기한 삼성전자 운임 관련 의혹은 이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삼성테크윈(옛 삼성항공), 삼성SDI, 삼성물산 건설 부분 등이 국내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비자금 조성에 가담했다는 의혹도 여러 매체를 통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의혹들은 어느 하나도 수사를 통해 검증되지 못했다.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모호해서가 아니다. 특검이 수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이날 고가 미술품을 구입한 자금 출처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삼성문화재단은 서양화 등 7500여 점을 소유하고 있다고 신고했지만 자금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다"며 "특검팀은 내게 '그걸 수사하려면 너무 멀리 나가 그림의 바다에 빠지는 셈'이라고 말하는 등 수사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철 "새 정부 인사들의 흠 없애는 게 특검의 최대 업적 될 것"
그리고 김 변호사는 삼성SDI 등이 연루된 해외 자재 대행 과정에서의 비자금 조성 의혹, 삼성물산 건설공사비 횡령 의혹 등은 수사가 전혀 안돼 있다고 덧붙였다. 또 정ㆍ관ㆍ법조계 불법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특검이 수사의지 자체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국민들의 관심이 가장 뜨거웠던 불법 로비 의혹에 대해 김 변호사는 "특검이 '공소시효 완성'이나 '무혐의' 처분할 것"이라며 "로비 대상자로 지목된 새 정부 인사들의 흠을 없애주는 것이 특검의 최대 업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특검 관계자는 이날 "8일 2차 수사기간 연장을 하더라도 (특검의 활동은) 그동안 조사해왔던 내용을 정리해가는 단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의 지적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제 남은 관심사는 "특검 수사가 끝나면 검찰이 사건을 이어받아 계속 수사해야 한다"는 김 변호사와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실현될지 여부다.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특검이 삼성 비리 의혹을 덮는 쪽으로 수사를 매듭짓는다면, 삼성 내부자 혹은 정부 관계자의 새로운 양심고백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관련 기사: "삼성의 '진짜 자존심'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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