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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건희 특검 소환, 무엇을 조사 받나?

경제개혁연대 "이건희 구속기소해야"

이건희 삼성 회장이 4일 오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는다. 삼성 비리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조준웅 특별검사팀의 소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삼성특검, 이재용, 홍라희 이어 이건희에게도 면죄부?

하지만 이 회장에 대한 조사는 요식 행위에 그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특검이 이제까지 보여준 행보 탓이다. 특검은 이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씨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이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에 대해서도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조준웅 특검은 "'삼성특별검사'가 아니라 '삼성특별변호인'"이라는 비아냥을 듣곤 했다.
- 삼성특검, 이재용 씨 불기소 관련 기사

삼성특검이 알려준 합법적인 '손해회피' 절차
삼성 '천년왕국'의 꿈, 3대에서 꺾이고 말까
삼성특검, 이재용 주도 'e삼성' 수사 착수
"삼성의 2001년 e삼성 관련 해명도 짜맞추기"
"핵심은, 구조본이다"
"핵심은, 이재용이죠"

이 회장에게 제기된 의혹은 다양하다. 삼성 경영권을 이재용 씨에게 넘겨주기 위해 다양한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 비자금을 불법적으로 조성하고 관리해 왔다는 의혹,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이들에게 금품을 제공하며 불법 로비를 해 왔다는 의혹 등이다.

이런 의혹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던 것들이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의 경우, 시민단체가 이 회장과 관련 인사들을 고발하기도 했다. 삼성 에버랜드 및 서울통신기술 전환사채(CB)·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이 헐값에 발행돼, 해당 기업이 큰 손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 CB, BW 용어 해설)

이처럼 기업에 손해를 끼치는 결정을 주도한 것은 해당 기업 임원들이 아니라 삼성 구조조정본부였다는 게 삼성 문제를 오래 전부터 파헤쳐 온 시민단체들의 판단이다. 이들 단체들은 "삼성 구조본은 이건희 회장 가족을 위해 계열사를 조종했다"라고 여긴다. 이런 판단대로라면, 삼성 구조본과 이건희 회장은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불법 행위 증거는 뚜렷, 수사 의지는 흐릿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의 다양한 비리 의혹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주체는 이건희 회장과 그 가족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가 삼성 구조본에서 근무하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에 바탕을 둔 주장이다.

또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 대한 불법 로비 의혹의 경우, 이건희 회장이 직접 로비 방법을 지시한 문건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돈을 받지 않는 법조인 등에 대해서는 고급 포도주를 선물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문건이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의혹들이 4일 오후 한 차례의 조사를 통해 풀릴 수 있으리라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다양한 불법 행위의 주모자라는 의혹이 제기된 이 회장에게 법적인 면죄부를 주기 위한 절차에 불과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10조 원 넘는 비자금, 모두 故 이병철 유산이다?

삼성 문제를 오랫동안 파헤쳐 온 경제개혁연대가 이날 낸 성명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경제개혁연대는 "특검은 엄정 수사 통해 이건희 회장 구속기소해야"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이번 삼성특검 수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라고 강조했다. 설령 특검이 이 회장에게 면죄부를 준다 해도, 비리 의혹을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 증거들이 워낙 구체적이어서 의혹을 쉽게 거둬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삼성 측이 제시한 해명은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경제개혁연대 성명 전문 보기)

차명주식과 비자금의 원천은 삼성 창업자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재산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인인 김영희 변호사에 따르면, 삼성이 국내에서 관리하는 비자금 규모만 10조원 이상이다. 만약 해외로 빼돌린 비자금이 있다면, 전체 비자금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그래서 경제개혁연대는 "최근까지도 삼성계열사들이 천문학적 액수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진술을 감안할 때, 모든 차명주식과 비자금의 원천을 20년 전에 고인이 된 이병철 선대회장의 재산으로 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삼성 비자금은 명백히 불법적인 방식으로 조성됐다는 주장이다.

이건희 경영권 넘기는데, 이건희는 몰랐다?

그리고 삼성 측은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에 대해서도 삼성 그룹 총수인 이 회장의 책임을 계속 부인해 왔다. 대신 계열사 경영진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경영권을 이재용 씨에게 넘기기 위해 내려진 다양한 결정들을 이 회장이 몰랐다는 주장은 대중의 상식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을 포함한 이재용 씨로의 경영권 승계 과정의 불법행위는 그룹총수인 이건희 회장의 지시 혹은 승인 없이 실행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특검 역시 '떡값검사'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닌가"

지난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이후,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정·관·법조계 고위 인사들에 대한 불법 로비 의혹이었다. 언론은 '떡값'이라는 낱말로 에둘러 표현했지만, 사실상 뇌물 제공 의혹에 가깝다. 하지만 특검은 이런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는 정황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에게서 돈을 받은 이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발표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심지어 김 변호사가 직접 돈을 줬다는 발표가 나와도 마찬가지였다.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 임채진 검찰총장, 이귀남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이종백 전 국가청렴위원장 등이 삼성에서 정기적으로 돈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하지만 특검을 이들을 조사하지 않았다. 대통령 역시 이들을 문제삼지 않았다.

그래서 경제개혁연대는 "그리고 직접 돈을 건넸다는 진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비대상자들을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은, 특검 역시 이른바 떡값검사의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심을 자인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조준웅-이학수 독대 이후, 삼성특검이 '삼성특별변호사'로 변했다"

특검이 언제부터 이처럼 삼성 비리 의혹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됐을까.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도왔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조준웅 특검과 이학수 삼성 부회장의 독대가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지적했다. 조 특검과 이 부회장이 배석자 없이 만난 뒤, 특검 수사 방향이 삼성을 변호하는 쪽으로 변했다는 지적이다.

경제개혁연대 역시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이 마치 특검의 수사방향을 지시라도 하듯,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사건은 유석렬 현 삼성카드 사장과 자신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저지른 일이며, 삼성생명 차명주식과 미술품 등은 이병철 선대 회장의 상속재산이다'라고 주장한 이후, 사실상 특검수사는 답보상태를 거듭하면서 삼성의 기만적인 주장을 추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왔다"라는 것.

"핵심 피의자인 이건희를 구속 기소하라"

하지만 특검이 삼성의 설득력 없는 주장에 공신력을 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후유증은 크다.

경제개혁연대는 "4일 이건희 회장의 소환조사 이후 삼성측의 주장을 수용해 이미 고인이 된 이병철 선대회장 및 전직 임원과 함께 모든 진실을 땅에 묻으려 한다면, 삼성특검은 국민의 세금을 국내 최고기업인 삼성그룹의 불법행위에 대한 변호비용으로 충당하고 이 나라의 경제정의와 사법질서를 생매장했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사법질서의 공정성을 국민들이 믿지 않게되리라는 지적이다.

또 재벌이 비자금을 조성ㆍ관리ㆍ사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번 기회에 밝혀내지 못하면, 한국 경제의 건강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특검이 지금 할 일은 뭘까? 경제개혁연대는 "삼성그룹에 대해 제기된 모든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건희 회장을 구속 기소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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