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만의 짜고 친다?
이날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우리 환경과 관련, 직접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중요한 시책을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산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2년까지 2005년 수준(5억9100만 톤)으로 유지한다는 것이 그 하나요, 광역상수원 상류 공장 입지 규제를 현행 20㎞(지방 상수원 10㎞) 이하·취수장 15㎞ 이내에서 취수장 7㎞ 이내로 축소키로 한 것이 그 둘이다.
한편 이 대통령은 "1년에 2조 원가량의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도 수질을 위한 영구 대책을 못 만들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이날도 적절치 못한 영어를 연신 구사하면서 환경부의 정부 내 야당 역할을 성토했다. 그는 "환경부가 관련 부서에 늘 '어게인스트(against·반대적)'가 아니라 '페이버러블'(favorable·호의적)'한 관계가 돼 모두가 발전할 수 있도록 긍정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환경부의 인식 전환을 당부했다.
이날 오간 내용 중 온실가스 배출량 자율 규제에 대한 환경부의 안일한 계획도 큰 문제이지만, 그 보다 당장 심각한 것은 광역상수원 공장 입지 규제 완화 방침과 이 대통령의 '어게인스트, 페이버러블' 발언이다. 광역상수원 규제 완화는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 제1호인 '한반도 대운하' 추진 강행 의지에 환경부가 예비적 화답을 한 것이고, 그럼에도 이 대통령이 어게인스트를 언급한 것은 "앞으로 대통령의 공약 실천에 환경부가 '태클(어게인스트)' 걸지 말고 앞장서라(페이버러블)"는 뜻일 터다.
이만의, 추부길 뺨치는 '대운하 전도사'
사실 이와 관련해서 이 대통령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이만의 씨의 생각은 확고하니까. '자연의 일부인 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땅 투기를 일상적으로 해온' 전임 후보자가 낙마한 후 지역 안배(이 씨는 전남 담양 출신) 케이스로 장관 지명을 받은 이만의 씨는 3월 10일 청문회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경제나 환경 차원에서 흑백논리로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해 그가 앉으려는 자리가 어느 자리인지나 제대로 알고 답변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이 씨는 대선 기간 때부터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의 당위성을 설파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작년 10월 22일 한나라당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자가 참석한 자리에서 이 씨는 "대운하가 단순한 운하, 환경, 경제 또는 하드웨어 차원이 아니라 그 물길을 통해서 국민이 하나로 화합이 되고, 국민이 호흡을 함께 통합하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상찬한 바 있다. 이어 "지역 주민은 실용 정치, 실용 통합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한 대국민 설득을 지속적으로 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아 운하 사업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민심'을 전했다고도 한다.
하기는 김대중 정권에서 환경부 차관, 노무현 정권에서 환경관리공단 이사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정반대 성향의 정권에서 생존하려면, '이비어천가(李飛御天歌)' 소리 높여 부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가 다른 부처도 아닌 환경부의 수장이라는 점이다.
이만의 씨의 '오버'는 장관이 되고 나서 더 두드러진다. 그는 지난 12일 장관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에서 "최근 서울대 일부 교수들이 운하 사업에 반대 의견을 밝히고, 어떤 종교단체는 도보 행진을 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의미가 있는 행동이기는 하지만 국민을 설득할 만한 전문 지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반드시 4계절을 거치도록 되어 있는 현행 환경영향평가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두 발언 역시 대운하 추진의 당위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선행 발언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모두 사리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우선 앞의 발언부터 살펴보자. 이 장관의 발언은 환경단체들이 언급한 것처럼 목사 출신의 운하 비전문가인 추부길 청와대 비서관이 경제학, 환경학을 전공한 서울대 교수들에게 '비전문가'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누가 진짜 '비전문가'인가?
따지고 보면 '비전문가'는 이만의 씨 자신이다. 그는 행정고시 출신 관료로 성장해 줄곤 내무부(현 행정안전부)에 있다가 환경부 차관과 환경관리공단 이사장을 지낸 비전문가다.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경제성을 언급한 것을, 또 환경대학원에서 석·박사를 교육하는 교수가 환경 문제를 지적한 것을 전문 지식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요 어불성설(語不成說)인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학교 교수 모임이 이튿날 정면 반박하고 나설 것은 당연한 이치. 이들 교수의 반박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이만의 씨는 대통령 듣기 좋은 말만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다.
환경영향평가의 4계절 측정 불필요성 주장도 그렇다. 새 정권은 한반도 대운하를 서둘러 착공하고 적어도 이 대통령 임기 안에 끝내겠다고 노골적으로 압박해 왔다. 그런 계제에 환경영향평가를 곧이곧대로 한다는 것은 프로젝트를 지연시키거나 무산시킬 수 있는 '위험 요소'다.
특별법을 만들어 영향평가 자체를 무시할 수도 있지만 법규에 따랐다는 전시효과를 내면서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면 환경영향평가를 약식으로 처리해 면죄부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4계절을 다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일 게다. 아무튼 이 논리 역시 궤변이라는 점, 특히 관련법규를 누구보다 강조하고 엄격히 지켜야 할 환경부 장관이 나서서 법규를 파행화하려는 발상이 어느 면 부럽기만 하다. 국토해양부 장관을 해야 할 분이 환경부에 왔다고나 할까?
환경청 시절, 그때를 기억하라
이 씨의 태도를 보면서 20여 년 전 환경 분야를 취재했을 때가 떠오른다. 1985~88년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가족부)의 외청인 환경청을 출입했던 나는 환경청 공무원들의 야성(野性)에 감탄했다. 당시 힘없는 청급(廳級) 관청으로 정부 시책과는 어긋나는 제동 역할을 해야 했던 대부분의 환경청 공무원은, 악조건 속에서도 환경의 중요성과 대기, 물, 토양, 생태 등을 개선하기 위해서 골리앗 같은 정부 타 부처와 힘겨운 싸움을 하곤 했다.
출입기자들 역시 대표적 공해산업인 이산화티타늄 공장의 한국 상륙을 막는데 앞장섰는가 하면, 환경청의 입지 확보를 위해 환경청 관리들과 공동 전선을 구축하기도 했다. 나는 그 중 몇몇과는 지금도 호형호제(呼兄呼弟) 하며 지내고 있다.
더욱이 단순무식형 지도자였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환경에 대해선 상당한 관심을 가져 5개 지방환경청을 신설하는 등 힘을 실어주었다. 이후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을 거치면서 환경청은 환경처와 환경부로 승격된다.
환경부, 절차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환경부는, 스스로를 환경주의자로 착각하는 지도자의 대운하 프로젝트 추진 논리를 꿰맞추는 데 골몰해야 하고 그 수장은 앞장서서 환경 절차를 무시하려 하고 있다.
환경부는 매사에 페이버러블보다 어게인스트해야 한다. 개발논리에 경도되기 쉬운 타부처와 끊임없이 접전하려면 그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 우리나라를 우리 국토를 쾌적하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하다.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선 절차를 지키도록 조언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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