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쁜 짓'의 경중을 따지는 것 자체가 참 경솔한 짓이긴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화이트칼라 범죄'를 제일 싫어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 가지고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 등쳐먹는 사기꾼들 말이다. 주가조작 같은 게 대표적이다. 수백, 수천 명을 피눈물 나게 하고 수많은 가정을 파탄내며 이를 감당치 못하는 이들은 결국 뛰어 내리게 하는.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사람이 힘들어도 차마 하지 못할 짓이 있는 법이다. 살인(殺人)을 하다니. 그래도 한때 좋아했던가본데 그런 사람을 죽이다니. 여자를 죽이고 그 어린 딸들까지 죽이다니. 그것도 셋이나 죽이다니. 손가락으로 못을 박을 정도의 '아저씨'가 열세 살짜리를 때려서 죽이다니. 그래 놓고 밖에 있는 스무 살짜리 여자아이를 불러내 또 죽이다니.
그는 일을 저지르고 그들을 가방에 담아 나르고 땅에 묻어버렸다. 준비를 치밀하게 했다하니 네 사람을 죽이고도 자기는 살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땅에서 솟았나, 하늘에서 떨어졌나
그렇다면 이호성은 천성이 원래 그랬을까. 그는 본투킬(born to kill), 즉 죽이기 위해 태어났던 것일까. 네사람을 죽이고 한강물에 뛰어들어 두 주먹 불끈 쥐고 죽는 것이 그의 운명이었을까. 팔자였을까.
태어날 때부터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돈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한 무시무시한 행위는 동기도 동기지만 수많은 상황적 요인과 개인의 역사적 경험이 동시에 작동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내가 여러 차례 지적해온 스포츠계의 폭력적 환경일 것이다. 외국에서는 특히 학생으로서 운동을 할 경우 윤리적 인성교육이 엄격하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학생에게도 지도자에게도 엄중한 책임의식이 뒤따른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환경은 어떠한가. 물론 스포츠계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인성교육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기관의 책임의식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스포츠계도, 한국 교육계도 이번 사건을 대하며 최소한의 반성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호성을 보라. 광주일고, 연세대 등 최고의 명문만 골라 다닌 그를 도대체 그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때리면서 컸고 맞으며 자랐다
초등학생, 대학생 빼고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중·고등학교 선수만 약 6만 명. 매 학년마다 1만 명이라 보면 된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생활하고 있나. 서로 때리면서 크고 맞으며 자란다. 감독, 코치도 '열받으면' 팬다.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애들 팬다는 소식을 듣고 교장선생님이 (한 번 패면 어떻게 패는지 알기 때문에) 기겁을 해 달려오면 문 잠궈 놓고 팬다. 교장이 문 열라고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도 그냥 팬다.
작년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 고려대 아이스하키부가 '실업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지자 감독은 땅바닥에 과자 뿌려놓고 선수들에게 뒷짐 지고 무릎 꿇고 먹으라고 했단다. '너희는 사람이 아니라 개다'라고 욕하면서. 그렇다. 고대는 사람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개 가르치는 사육장이었다.
입학청탁과 함께 5000만 원을 받아 불구속 기소 되는 등 평소에도 이런 저런 문제가 있어왔던 그 감독은 그러나 그 사건 이후 학교로부터 해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대한체육회 자정운동본부는 해당 학교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빼고 고려대는 사실이 아니라면서 정작 학생과 학부모 상대로 한 진상조사는 하는 둥 마는 둥이다. 이거 도대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나.
어제 본 뉴스 하나 더. 신입생 대상 체력훈련에 참가했다가 입학도 하기 전 머리를 다쳐 결국 사망한 용인대 입학생 강모(19) 군의 아버지는 용인대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단다. 학교에서 훈련받다가 애가 죽었는데 총장이 빈소에 조문은커녕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아버지는 총장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에 나섰단다. 스포츠계가 다 문제지만 학교라는 곳조차도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호성이를 제대로 가르쳤더라면
광주일고와 연세대는 그 학교 자체가 명문이기도 하지만 야구에서도 명문이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였다. 그런데 이제까지 자신의 제자들, 학생들을 도대체 어떻게 가르쳤는가. 그들은 '명문'이라는 간판을 즐기기만 했다. 어린 아이들 데려다 놓고 운동기계로 만들었지 이 아이들의 교육은 뒷전이었다. 어떻게 열 몇 살짜리, 채 스무 살도 안 되는 아이들을 스카우트해 놓고는 '그따위'로 가르쳐 내보내나. 교육기관 맞나. 스승 맞나. 이호성이 빚어낸 참극은 결국 광주일고와 연세대에서 싹튼 것 아닌가.
광주일고 교장과 연세대 총장은 제자로 인해 빚어진 비극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학교'라면 그래야 한다. 스승이라면 '잘못 키운 죄'를 뼈아프게 생각해야 한다. 외국이 모든 것의 기준은 아니지만 외국의 학교들은 그렇게 한다. 아울러 일말의 책임을 통감한다면 광주일고와 연세대 운동부는 자숙하는 의미에서 올해 모든 대회 출전을 삼가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자숙을 위해 대회출전도 삼가야
좀 너무한가? 아니다. 전혀 지나치지 않다. 미국의 농구 강호 UNLV(네바다대 라스베가스캠퍼스)는 1990년 명문 듀크대를 누르고 NCAA 농구챔피언에 올랐다. 그러나 체육부 비리가 폭로되면서 다음해 모든 대회출전이 금지됐다. 전년도 챔피언이 대회출전도 못 한 것이다. 또다른 스포츠명문 조지아대는 선수스카우트 비리가 폭로되자 다음 해 조지아대의 모든 운동부의 대회출전이 1년간 금지됐다. 운동부 숫자만 20개가 넘는 대학이다.
또 이 학교의 잔 캠프라는 교수는 학교가 학생선수들을 착취한다고 비난했다가 해고당했는데 그는 학교를 고소해 결국 승소했다. 그 결과 학교 측이 취한 조치는 이렇다. 조지아대의 학업발전 부총장보 해임, 교무부총장 해임, 그리고 총장 해임.
일본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학교와 선생님들이 스스로를 징계하고 철저하게 반성한다. 2005년 전 일본 고시엔 야구대회에 코우치현 대표로 출전한 메이도쿠 기주쿠 고교는 대회 개막 전날 출전을 포기했다. 야구부 내 구타와 흡연이 문제가 되자 학교측은 그 책임을 지고 스스로 출전을 포기하고 대회 전날 짐을 싼 것이다. 감독과 야구부장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임했다.
그 해 고시엔대회는 논란거리가 많은 대회였다. 대회가 끝난 후 우승팀의 야구부장이 대회참가 전 선수를 구타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우승을 인정하긴 했지만 협회는 우승을 인정할 것이냐를 놓고 심각한 고민을 한 끝에 결국 우승을 인정하긴 했지만 팀을 우승으로 이끈 야구부장은 야구계에서 퇴출됐다. 또 잘못한 것도 없는 감독은 팀을 우승시켜 놓고도 그 사건 때문에 청소년대표팀 감독 자리를 포기해야 했다.
지난 2006년 일본의 검도부 감독은 검도부 학생들 간 다툼 끝에 한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책임을 지고 스스로 사임했다. 그 감독은 원래 일본 국가대표 감독으로 내정되어 있던 사람이었는데 결국 그 자리도 포기해야했다. 그 덕에 작년 우리 대표팀은 역사상 최초로 세계검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한 검도인은 만약 그가 감독으로 왔더라면 당연히 일본이 우승했을 거라고 전한다.)
이렇듯 일본은 선수가 담배만 피워도 징계 대상이고 교복이나 유니폼 입고 피우면 그건 영구퇴출감이다. 우리처럼 수업을 빼먹게 하면 그 팀 전체가 징계 대상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아이들만 징계하고 어른들은 무사한 그런 식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감독, 교장도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다. 선수들이라 해도 선수이기 이전에 학생이기 때문에 스승으로서의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와는 다르게 일본에서 '운동'을 했다는 것은 취직 등 사회 진출시에 도움이 된다.
무시무시한 괴물양성 시스템…떠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몇 년 전 뉴스가 생각난다. 이호성이 몸담았던 팀(해태의 후신인 기아 타이거스)의 전 감독은 말을 안 듣는다고 선수의 헬멧 쓴 머리를 야구배트로 내리쳐 선수가 뇌진탕과 과다출혈로 병원에 실려가 여섯 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고 한 달간 입원하기도 했다.
그 감독은 이렇게 해명했다. "사랑의 매였다." 사랑해서 때렸다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스포츠계는 언어의 파괴(?)가 참 빈번하게 일어난다. 선수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여 성폭행 해놓고는 '아이들과 저와의 스킨십,'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쳐 입원시켜 놓고는 '사랑의 매.'
광주일고와 연세대는 앞에서 언급했고 이제 해태, 아니 지금의 기아를 이야기해야겠다. 이달 말에 있을 개막전 때 우리가 떠나보낸 소중한 이들을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갖기 바란다. 세 자녀와 함께 열심히 살아보려던 한 여성과 그 딸들이 열아홉, 스무살 꽃다운 나이, 열세살 호기심 많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그렇게, 참 힘들게 떠났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80년대 광주의 한을 풀어준 타이거스. 이제 이 네 식구의 한을 조금이나마 달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고인의 명복을 빌 때 우리는 이호성의 가는 길도 챙겨줘야 하지 않을까. 그는 가해자이지만 그 역시 피해자일 수 있다. 이 무시무시한 괴물양성 시스템의 피해자.
참 슬프다.
떠나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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