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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세요? 반품은 없습니다"

[정희준의 어퍼컷] 당신들의 대통령

이미 2006년 미국 방문 때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공언하신 바 있는 대통령께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내각을 뽑으셨다 했다. 남들은 잃어버렸다는 10년 동안 경제적으로 차곡차곡 챙긴 사람들을 잘도 고르셨다. 복부인 장관후보를 필두로 한 '부동산 내각,' '재테크 내각'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1% 정부'

그러나 '평균 39억 내각'에게도 '상대적 박탈감'이 존재하는 것인가. 맞벌이 하는데도 30억 밖에 없어 양반(?)이라는 장관 후보, 싸구려 골프 회원권을 가져서 불만인 장관 후보, 한국에 살면 스트레스를 받는 자식을 둔 장관 후보 같은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도 있다. 하긴 참여정부 기간 아파트 가격이 세 배나 뛰는 바람에 세금이 늘어 불만인 장관 후보도 있으니….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새 정부에 대한 실망은 커져만 가던 중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라면값이 100원 오른 것을 언급하며 서민경제를 걱정했단다. 국무회의에선 공공요금 인상을 자제하라고 했단다. 혹시 지난 주말 6억 원 이상 아파트에 수천만 원의 양도세 감면'폭탄'을 주려니 쑥스러워 그런 건 아니었는지.

사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선정한 43개 핵심 과제에서 서민 관련 정책을 찾아보기 힘들다. 생활비 절감,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지원,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보호, 신혼부부 주택 12만 가구 공급, 보육비와 교육비의 국가부담 등이 모조리 핵심 과제에서 밀려났다. 사교육비 절반 공약이 없어지고 오히려 극심한 사교육을 부추길 게 뻔한 '영어 공교육'이 핵심 과제로 진입했다. 이래서 '1%를 위한 정부'라는 건가.

당신들이 고른 '경제 대통령'의 실상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금 국민들이 이들 장관 후보자들을 매섭게 질타하는 것과는 영 딴판으로 두세 달 전엔 허깨비에 홀렸는지,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이명박은 '그냥' 뽑아줬다는 점이다. 이른바 '경제 대통령'의 탄생이다. 그럼 우리 국민이 선출한 이 '경제 대통령'을 한번 들여다 보자.

현대건설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일등공신이다. 그런데 막상 이명박은 최고경영자 재직 당시(1979~1992) 이라크에서 무리하게 공사를 수주했다가 미수채권을 회수하지 못했고 결국 수천억 원의 빚을 떠안긴 채 회사를 떠났다. 건설업계 1위였던 현대건설은 그 여파로 인해 2000년 부도로 무너졌고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까지 쏟아 부어야 했다. 자신을 키워준 회사가 폭삭 망하는 데 기여한 사람, 이 사람이 바로 당신들의 대통령이다.

이후 경제계에서 그가 보여준 '업적'의 처참함은 발군이다. 그가 정말 김경준과 '동업'을 했는지 아니면 특검 발표대로 '홍보'해 준 것인지 참으로 헷갈리지만 어쨌든 특검은 이 사건을 '검은 머리 외국인이 대한민국을 우롱한 것'이라 표현했다. 과연 그럴까. 이 사건의 본질은 'CEO형 대통령'이 사기꾼한테 농락당했다는 것이다. 관록의 경제 대통령이 실상은 한국말도 잘 못하는 30대 주가 조작범에게 사기를 당했단 말이다. 그것도 혼자 당한 게 아니라, 강연과 방송으로 그 사기꾼을 홍보까지 해주면서 무려 5000명이 넘는 국민들로 하여금 수백억 원을 잃게 한 사람, 이 사람이 바로 당신들의 대통령이다.

그러면 서울시장이 된 다음엔 서울의 경제라도 살렸는가? 전혀 아니었다. 그의 시장 재직 기간 서울시는 지역내총생산 성장률에서 전국 최하위권이었다. 이 기간 다른 지자체들은 평균 5.02% 성장했는데 서울은 고작 2.68%을 기록했다. 또 지난 1월 2일 서울시정개발원이 정책리포트에서 밝혔듯 2001년 이후 6년간 서울의 고통지수를 7.9%의 전국 최고로 만든 사람, 이 사람이 바로 당신들의 대통령이다.

'현대'와 '건설'을 알면 이명박이 보인다

그를 좀 더 이해하려면 과거 개발주의시대의 '현대'와 '건설'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 건설업은 군사문화를 가장 빠르고 완벽하게 접목시킨 분야다. 일단 공사가 시작되면 '쪼인트'가 빈번하게 날아다니는 곳이다. 옛날에 현장소장을 모시던 한 운전기사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소장님을 뒤에 태우고는 '빽'을 못 했단다. 뒤를 쳐다보기도 너무 무서워서.

발전소, 댐, 다리, 항만, 터널 등의 대규모 공사조차 공기를 최대한 짧게 잡는다. 공기 단축이 돈이기 때문이다. 현장소장들은 공기 단축 경쟁을 벌인다. 이게 그들에겐 무용담이다. 당연히 안전은 뒷전으로 밀린다. 대규모 현장마다 사망사고 없는 곳이 드물 정도였다. 사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는 공수부대보다는 건설회사에 더 어울린다. 공수부대도 당시 건설회사처럼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그러다 결국 삼풍백화점이 무너졌고 성수대교가 끊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건설회사 중에서도 현대건설은? 어느 월간지 기사가 현대와 삼성을 적절하게 잘 비교했다. 삼성은 모든 설계도면과 공사계획을 완성한 후 공사에 들어가는 반면 현대는 일단 삽질을 한 후 공사를 하면서 설계도를 만든다는 것이다. 또 광고에서 보듯 '해봤어' 한마디로 직원의 이의제기를 막아버리는 게 현대의 분위기였다.

결국 대운하
▲ 지난해 6월 후보시절 부산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구상에 대한 현장 설명 장소인 낙동강하구 강변에서 직접 삽으로 강바닥의 뻘을 파고 있다. ⓒ뉴시스

이삼십 년 전 토목공사를 전문으로 하던 대통령은 최근 경제계의 화두인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모른다. 알 수가 있나. 태어나고 그런 걸 해 본 적이 없는데. 대신 단기부양엔 도사다. 단기부양엔 역시 토목이다. 결국 대운하.

대선 기간 그는 눈 딱 감고 경제성장 7%를 공약으로 내세우긴 했지만 4%대인 올해 예상치를 어떻게 7%로 끌어올릴 것인가. 못 올린다. 경제전문가 아니라 경제도사라도 못 올린다.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명색이 경제규모 세계 12위 국가가 대통령 때문에 성장률 2~3%가 오르락내리락 하겠나.

그래서 그런지 당선되자마자 한발 뺐다. 노력하면 6%까지는 가능하지 않겠냐면서. 그런데 6%도 쉽지가 않다. 한국 경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경기침체와 유가상승 등으로 인해 전망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올해 OECD국가 평균성장률도 2.3% 아닌가. 결국 경부운하는 실용정부의 마지노선이다. 이 공사를 일으켜 나라를 토건국가로 몰고 가야만 6% 성장과 연간 60만 일자리 창출의 근처에라도 가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자기가 평소 폄하해 마지않던 '현장 모르는 교수들'이 그러한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은 현실과 상충돼 불가능하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경부운하는 이제 대통령 이명박의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처가 돼버렸다.

문화재 파괴? 그거 옛날 건설 현장에서는 이골이 나도록 다뤄본 거다. 지방에서 큰 공사 하면 땅에서 나오는 유적 꽤 본다. 무덤 같은 건 부지기수다. 물론 원래는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 신고하면 공사는 '올스톱'이다. 멈칫거리다간 풍납토성처럼 아예 공사가 중단될 수 있다. 그래서 그냥 밀어버린다. 무덤은 뼈를 추려 야산에 묻고 고사 지내면 된다. 출토된 물건 중 모양이 예쁘고 온전한 건 집으로 가져간다.

그런데 문화재 측면에서 경부운하는 청계천보다는 쉬울 수도 있다. 청계천 땐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일부 시민단체'가 청계천 3㎞ 구간을 따라다니며 귀찮게 했지만 이건 '경.부.운.하.'다. 제아무리 시민단체, 환경단체라도 산간오지 500㎞를 어찌 따라붙겠나. 그리고 현존 문화재들은 널려 있는 장비에 실어 옮기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친환경·친문화적 한반도 대운하 건설'이라고 자신 있게 핵심공약에 포함시켰나보다. 왜, 청계천도 생태하천이라 우기지. 친환경 골프장이라 우기지. 사랑해서 때렸다 그러지. 아름다운 살인이라고 해보지.

대한민국이 자신의 기업인가

도덕적으로도 문제지만 경제적으로도 고속승진 외엔 아무런 업적이 없는 사람이 이 나라의 영도자가 돼 버렸다. 남한 사람들은 어쩌다 하고 많은 CEO 중에서도 칠팔십년대의, 그것도 건설회사 출신을 대통령으로 선택했을까. 도덕적 정치가, 고졸대통령, 386 보다는 대학 나온 '회장님'에 더 이끌렸던 것 아닐까. 혹시 나라가 잘 되려면 미국엔 잘 보여야 하고 친일파도 공개하면 안 된다는 확신 때문 아닌가. 그래도 아래위가 있어야 세상답고 또 누군가 훌륭한 분(?)이 우릴 다스려야 세상이 돌아간다는 우리 안의 '머슴 의식' 때문은 아닐까.

노동자가 노동자정당 안 찍고 못 사는 사람들이 귀족정당 찍는 이유가 이런 거 아닐까. 그래서 아직까지 우리 안에 '개발독재,' '병영사회'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민주화가 자리 잡기도 전에 지겨워졌나보다. 뭔가 불안한가보다. 그래서 행정수도를 막으려 '군대라도 동원해' 막고 싶다던 그를 뽑았나.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대한그룹'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해봤어 정신'으로 국가를, 우리 국토를 대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해봤어'의 다음은 '아님 말고' 아니겠는가?

자, 당신들의 대통령 써보시니 어떠신가. 마음에 드시는가? 혹 마음에 안 드시더라도 그냥 쓰시라. 반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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