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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밤> 나간 시장님, 우리 만날 시간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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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밤> 나간 시장님, 우리 만날 시간은 없습니까"

[현장] 그들이 사다리를 메고 시청에 모인 까닭

27일 오후 서울시청 앞. 지나가던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청사를 올려다봤다. 시선이 모아진 곳에서는 '오세훈은 성람비리재단 철원시설 시립화 즉각 이행하라!'고 적힌 15m 가량의 플랭카드가 휘날리고 있었다.

이날 '성람재단비리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 전면개정을 위한 공동투쟁단'을 비롯해 전국에서 모인 장애인인권활동가 70여 명은 '사회복지시설 비리척결의 날'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도중 한 활동가는 플랭카드를 몸에 걸고 20m 가량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퍼포먼스의 내용은 적힌 그대로, 오세훈 시장의 사태해결을 요구하는 것.

"시간 없다던 시장 얼굴을 오락 프로에서 보니…"

"지금 여러분들은 불법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허가 없이 공공시설에 현수막을 거는 것은 엄연한 불법입니다. 위험합니다. 어서 내려오세요!"

대기 중이던 경찰병력이 순식간에 이들을 에워쌌다. 스피커를 통해 강제 해산을 하겠다는 경고가 울려퍼졌다. 한때 퍼포먼스를 저지하려던 경찰이 무리한 진압을 시도해 사다리를 받치고 있던 활동가들이 연행될 뻔하는 위험스러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 ⓒ프레시안

그러나 주변에 모인 장애인, 비장애인 활동가들은 꿈쩍 하지 않았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라는 구호가 반복됐다. 한 활동가가 마이크를 잡고 담담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이번 행동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얼마 전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에 나온 걸 봤다. 그동안 우리는 오세훈 시장에게 시설비리 문제 해결을 요구하기 위해 수도 없이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며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던 오 시장이 방송 쇼프로에 출연해 TV에서 태연하게 얼굴을 우리 앞에 보이더라……."

"서울시가 책임질 것 책임지라는 것뿐"

이들이 시청 앞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매년 정부와 서울시로부터 1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받는 국내 최대의 복지법인인 성람재단은 지난 2006년 1개 시설에서만 27억 원의 횡령혐의가 밝혀져 당시 조태영 이사장이 구속됐다. 추운 겨울에 방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10~20분 가량 보일러를 가동하는 등 장애인시설 내 인권유린 실태도 속속 밝혀졌다. 실제 근무도 하지 않았던 이사장의 부인은 직원으로 허위 등재해 수년 동안 1억4000만 원을 착복하기도 했다.

조 전 이사장은 법원에서 강원도 철원 지역 세 개 시설을 기부채납하겠다고 약속한 뒤 2심 재판에서 감형을 받았다. 그러나 감형 결정이 나자 정작 재단 측은 고용승계 등을 핑계로 채납을 미루고 있다. 서울시는 시설을 새로 운영할 위탁법인까지 선정했으면서도 법리상 시설이 '사유재산'에 속한다는 이유로 아무런 제재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런 와중에 2007년 한 해 동안 성람재단이 운영하는 복지시설에 지불된 국고지원금은 114억 원에 달했다.

장애인단체들은 "서울시가 사기를 친 성람재단에게 계속 시설운영비를 쥐어주며 나가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지원을 중단하고 법인승인을 취소하는 등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이들은 이 같은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시청 앞 기자회견은 물론, 집회, 삼보일배 행진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시장 면담은 신청 6개월이 지나도록 잡히지 않았다.

결국 지난 4일에는 오세훈 시장 공관 앞까지 갔다. 밤샘농성을 벌이며 퇴근하는 오세훈 시장이라도 만나보려 했지만 미리 정보를 입수한 경찰은 100m 앞에서부터 이들을 막았다. 이때 오 시장은 이미 '시장 공관 최초 공개'라는 제목으로 공관에서 MBC 오락 프로그램 촬영을 마친 뒤 유럽 순방을 위해 출국한 뒤였다. 이날 확답을 받았던 부시장과의 면담은 아직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끊임없이 싸워도 정말 바뀌지 않는다"
▲ ⓒ프레시안

"장애인은 인간 역사에서 배제돼 왔다. 사람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 관계 속에서 계속 배제됐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인권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 성적 소수자가 차별받는 문제와 다르다. 배제를 뚫고 사회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과거 편의시설이 전무할 때와 달리 이제 장애인들은 조금씩 접근을 해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기존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의 벽이 굉장히 높고, 충돌은 생길 수밖에 없다."


이승헌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장애인단체들이 이번 퍼포먼스와 같이 어렵고 힘든 싸움을 벌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시설 내에서 보이지 않는 비리는 계속되고 있다"며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이들은 장애인들이고, 끊임없이 싸워도 정말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100% 국고보조로 운영되는 복지시설 관리를 책임지는 행정당국조차 시설 내 비리를 외면하는 현실 속에서 복지시설의 공공성 자체가 확보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금을 지원하면서도 지출 및 운영 감시를 소홀히 하는 졸속행정,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시민들의 무관심이 결국 복지시설의 족벌운영, 인권유린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성람재단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김정하 활동가는 "목사 부부가 운영하는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이 매일 유통기한이 지나 벌레가 나오는 라면을 점심으로 먹으며 노동을 강요당하는 등 전국에서 벌어지는 사회복지시설의 문제가 하루이틀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마 서울시 모 학교 아이들 급식에서 벌레가 나왔다고 하면 교육감은 물론 장관까지 처벌받을 것"이라며 "그런데 이 땅의 사회복지시설의 비리는 30년이 넘게 사람이 죽고, 구타 당하고, 성폭행을 당하고, 비리가 나오는데도 바뀌지 않는다"라고 한탄했다.

30여 분간 내걸렸던 플랭카드는 결국 자발적으로 철수됐다. 장애인들은 무사히 끝났다며 환영의 박수를 쳤다. 그러나 이날도 끝내 서울시는 면담 약속 하나 잡지 않았다.

"우리가 대체 뭘 해야 세상이 바뀌나요." 퍼포먼스가 무사히 끝난 것에 안도하면서도 깊이 내쉬는 한 활동가의 한숨이 이날 시청 앞에 모인 장애인들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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