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새정부의 출범은 영화계로서도 비상이다. 바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일단 태풍의 눈은 영화진흥위원회다. 영진위 위원 9명의 임기가 두달여 밖에 남지 않은데다가 새대통령 취임을 겨냥한 듯 한국영화감독협회(이사장 정인엽) 등 보수적 영화단체에서는 진작부터 이 영진위를 해체하라는 등 '어거지'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감독협회 등이 원하는 것처럼 영진위가 해체되거나 하는 일은 일단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인물들이 위원회를 채울 것인지는 초미의 관심사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에 설립된 이후 영화진흥위원회를 위원장만큼 실질적으로 운영해 온 그림자 실세가 바로 김혜준 사무국장이다. 한국영화연구소 소장이었던 그가 영화진흥위원회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정책연구실장이라는 직함으로서다. 그러다 2003년부터는 사무국장으로서 영진위의 전 업무를 총괄지휘해 왔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영진위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 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김혜준 사무국장 바로 이 사람이다. 김 국장을 만난 것은 그때문이다.
| |
|
김혜준 영진위 사무국장 |
|
- 영진위가 어떻게 되는가? "뭐가 어떻게 되겠는가. 3기 위원들의 임기가 끝나가고 있고, 그렇다면 4기가 곧 구성될 것이다."
- 안정숙 위원장의 조기사퇴, 위원들의 조기사퇴설이 많았다. "그럴 뻔했다. 그런데 감독협회가 성명을 내고 하면서 그 얘기는 없던 일로 됐다. 그렇게 되면 감독협회의 얘기가 옳다고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
- 안정숙 위원장은 원래 총선 일정 때문에 조기사퇴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안정숙 위원장은 통합민주당 원혜영의원의 부인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다.) "사실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활발하게 선거운동을 하려면 선거일 14일 전에는, 도덕적으로 사퇴하는 것이 관례일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사퇴할 생각이었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지만. 그리고 사실 그보다 안정숙 위원장이 조기사퇴를 생각한 것은 다른 이유가 더 강했다. 안 위원장 생각은, 영진위의 2009년 예산을 지금 위원이 짜느냐, 차기 위원이 짜느냐의 문제에서 4기 위원들이 하는 게 더 맞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정책의지를 실현시키는 게 합리적이라고 봤다. 그래서 먼저 물러나 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쨌든 5월27일 임기 만료일까지를 놓고 봤을 때 역산해서 한달 전쯤에는 자리를 정리하지 않을까 싶다.
- 위원구성은 어떻게 하나? "위원장은 문광부 장관이 임명한다. 나머지 8명은 기획재정부(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에 따라)가 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절차에 해당하고 보통은 위원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위원들을 선임한다. 추천위원회는 일종의 공천심사위원회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현재의 위원회에서 5명이 참여하고 나머지 4명은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식이다. 만약에 추천위원회가 총 7명이면 지금 위원회에서 4명, 외부에서 3명이 오는 식이다. 추천위원회가 구성되면 영화계로부터 후보위원들의 추천을 받게 된다.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추천받을 수가 있다."
- 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여러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안다. 소문은 많지만 모두가 낭설이다. 조금 더 지켜보면 알게 된다. 어쨌든 이 문제 등등 때문에 이달 초에 정권인수위원회와 영화인들 일부가 모여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 그때 참석했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조희문 인하대 교수, 강한섭 서울예대 교수, 유동훈 시나리오작가협회장, 정인엽 영화감독협회 이사장, 신우철 영화인협회 이사장, 박경필 영상투자협의회 회장, 김주성 CJ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이창무 서울시극장협회 회장), 유인택 기획시대 대표, 차승재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장, 안정숙 위원장, 이현승 부위원장, 정병각 종힙촬영소 소장, 박기용 영화아카데미 원장 등이다. 인수위 쪽에서는 김대식 위원과 유인촌 당시 상임자문위원, 그리고 사회문화분과 위원들이 참석했다.
- 무슨 얘기들이 오갔나? "글쎄…시끄럽게 떠드니까 한번 봅시다, 조용히들 좀 하시오, 뭐 그런 감도가 아니었겠나.(웃음). 영화계에 대한 업무보고가 일단 있었고 영화계 현안들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고 보면 된다. 일부 참석자들이 영화진흥위원회의 책임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 책임론이라면? "한국영화산업이 불황 국면에 빠져 든 것이 영화진흥위원회의 진흥 정책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한섭 교수 등이 그렇게 주장을 했는데, 차승재 이사장 등이 반론을 펼치기도 했다."
- 인수위 쪽의 반응은 어땠나? "현안들을 비교적 소상하게 파악했다는 반응이었다."
-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 내정자의 반응은? "유 장관 내정자는…일단 위원회 체제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진흥위원회보다는 문화예술위원회 쪽에 조금 더…글쎄 내정자의 생각, 정책방향은 좀더 두고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감독협회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영화진흥위원회를 영화진흥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던가? "감독협회 혹은 조희문 교수 등이 주장하는 것은 위원들이 권한만 행사하지 책임을 지지 않는 현 영화진흥위원회를 독임제 기구인 영화진흥원(과거 영화진흥공사) 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인데, 유인촌 내정자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까 얘기한 것처럼 내정자는 영진위보다는 문화예술위원회에 대해 여러 생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요지는 문화예술인이 문화예술인들을 평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심의기능에 대해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인데 결국 위원회가 친소관계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5년간 예총이 배제돼 왔다는 것이고. 문화예술위원회가 민예총 출신들만 지원해 왔다는 지적이 있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예총과 민예총이 지금 시대에 구분의 의미가 있는가. 다만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어쨌든 그런 등등을 고려할 때 영화진흥위원회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 결과적으로 새 위원회 구성에 영향을 미친다? "관료 출신이나 평론가, 교수 등 현장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위원회가 구성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장일단이 있다. 어떻든 어느 쪽으로든 편중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쨌든 차기 위원회는 현장인들이 다소 배제되는 쪽이 될 것 같다."
- 지난 10년 가까운 기간동안 영진위 지원자금이 효율적으로 운영됐는가에 대해 스스로는 어떻게 자평하고 있는가? "DJ정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3,500억원 정도의 지원자금이 구성됐다. 그동안 800억원 정도가 날라갔다. 해마다 100억~150억원 정도의 소진성 사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영진위는 28개의 투자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거기에 625억원 대고 출자총액 약 3,000억원을 만들어서 실제 프로젝트에 2,700억원 정도를 투자시켰다. 거기서는 지금까지 총 27억원 정도가 적자가 났다. 수익률이 -5% 정도였던 셈이다. 어쨌든 지금 남아있는 자금은 2,700억원 정도가 되고 이걸 2014년까지 써야 한다. 여유가 없다고 보면 된다. 다수를 만족시킬 수 없을 때에는 다수를 불만족시키는 것이 낫다. 그것이 정책결정을 하는 사람의 태도일 수밖에 없다. 열명한테 줄 것을 한명한테 몰아주는 식은 공적 기구가 자금을 운용하는 방식일 수가 없다.줘서 아홉명이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사무국장 직은 계속 수행하게 되는가? "당연히 아니다. 조직 개편, 인사 개편이 있기 전에 내가 먼저 그만둘 생각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했다. 하지만 적이 많아졌다.(웃음) 영화산업노조와도 불편할 때가 많았다. 지금은..글쎄..재미도 별로 없고 (웃음) 어쨌든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외곽에서 자문 역할 같은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시아영화연구소 같은 걸 만들어서."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