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특검이 29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의 피고발인들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건희·이재용·홍석현 등, 소환될까
에버랜드 사건의 피고발인은 33명이며, 이 중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인 허태학·박노빈 2명만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나머지 31명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이학수 삼성 부회장 등이 포함돼 있다. 특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들에 대한 소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만약 특검이 이들을 소환할 경우, 삼성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여부가 관심사다.
에버랜드 사건은 이건희 삼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씨가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이재용 씨는 지난 1996년 12월, 삼성에버랜드의 최대 주주가 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 에버랜드 경영진은 최소 1만 4825원(세법 상 평가액은 12만 7750원)의 가치가 있는 에버랜드CB를 이재용 씨에게 7700원에 넘겼다. (☞CB 용어 해설)
이에 대해 법원은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인 허태학, 박노빈 씨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죄를 저질렀다"고 판결했다. 경영진이 고의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뜻이다. 허 씨와 박 씨는 현재 수감된 상태다.
에버랜드 사건, 삼성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 과정의 핵심 고리
그런데 1996년 에버랜드 사건은 이건희 부자(父子)가 미미한 지분율로 삼성 계열사 전체의 지배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됐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 사건을 통해 '이재용 →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완성됐다.
이를 통해 삼성에버랜드는 사실상 삼성의 지주회사가 됐고, 삼성에버랜드 최대 주주인 이재용 씨는 삼성 계열사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됐다.
이처럼 삼성 지배구조 변경과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한 에버랜드 사건에 단지 허태학, 박노빈 씨만 연루됐을 리는 없다는 게 삼성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삼성 그룹 차원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으리라는 것.
김용철 "에버랜드 재판, 증거 및 증인 조작됐다"
그리고 이런 정황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많았다. 하지만 이런 근거가 나타날 때마다, 삼성 측은 전면 부인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는 에버랜드 사건 재판 당시 증인과 증거까지 조작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불거진 의혹보다 더 충격적인 증언인 셈이다.
이런 증언이 공개됨에 따라, 에버랜드 사건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날 특검이 이 사건의 피고발인들을 조사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래서다.
특검, 의지가 있어도 시간이 없다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핵심 고리인 이 사건에 대해 특검이 어느 정도로 충실한 조사를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설령 특검이 충분한 수사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해도, 문제는 시간이다. 특검에게 부여된 시간은 최대 105일에 불과하다. 특검 출범 후 20일이 지난 지금, 85일이 남은 셈이다.
남은 85일 동안, 삼성 측이 '버티기'와 '증거 인멸'로 일관하며 시간을 끈다면 수사는 생색내기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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