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죽음은 산 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기지만 어떤 죽음은 산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이런 죽음은 죽은 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긴다. 생물학적 죽음을 수반하지는 않더라도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회적 죽음도 있다. 죽음마다 다양한 사연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을 부르는 한국사회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죽음이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이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3년부터 최근까지의 죽음 가운데 점점 잊히고 있지만 산 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죽음을 기록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이번 기획의 네 번째 글을 <프레시안>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
2004년 2월 전남 목포에서 장애인 부부가 단전 조치로 인해 촛불을 켜놓고 잠을 자다 불이 나 죽음을 맞이했다. 2005년 7월에는 경기도 광주에서 역시 단전으로 인해 촛불을 켜고 공부하다 잠들었던 15세의 여자 중학생이 사망하고 말았다. 지금도 영등포, 용산, 남대문, 동대문 등 쪽방촌에는 오로지 전기장판 하나의 온기에 의존해 살아가는 무수한 빈곤층이 존재한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에서 2006년 초 발표한 인권 상황 실태 조사를 보면, 단전 단수 등을 경험한 세대가 2004년 기준, 약 48만여 가구 156만 명에 이르고 있다.
형광등 2개, 텔레비전 1대, 냉장고 1대
2005년 단전 조치로 인한 사망 이후 산업자원부(아래 산자부)와 한국전력(아래 한전)에서는 혹서 혹한기 3개월 단전 조치 금지를 발표했고, 3개월 이상 전기 요금 체납 가구에 대해서는 110와트(W) 전기 사용(순간 전력 사용을 기준으로)을 가능하게 하는 소전류제한기를 보급한 바 있다. 그러나 소전류제한기는 단지 형광등 3개와 14인치 텔레비전 1대를 사용할 수 있을 용량일 뿐이다. 최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가전제품에는 상식적으로 전기밥솥과 냉장고 등이 존재한다. 세탁기와 컴퓨터도 필요하다. 냉장고와 전기밥솥이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에서 방에는 형광등을 켜야 하고 아이들은 숙제를 위해 컴퓨터를 켜야 하며 세탁기도 돌려야 한다. 이렇듯 산자부가 발표한 소전류제한기의 공급량은 최소 생활에 필요한 전력에 턱없이 못 미친다. 더욱이 이 조차도 주거용 가구에만 부착해주기 때문에 상가, 빈집, 가건물 등에 거주하는 빈곤층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05년 상반기 단전에 의해 소전류제한기를 부착한 경험이 있는 전국의 265가구 중에서 163가구가 일주일 이내에 전류제한기를 철거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올 8월 1일부터 산자부는 '전기공급약관 개정안'을 발표했다. 전기요금 체납가구에 대해 단전이 아니라 제한공급을 실시하며(앞으로는 단전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제한공급이라고 표현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기 제한공급은 체납가정에 220와트 전류제한기를 부설한다는 것이다. 220와트는 형광등 2개, 25인치 텔레비전 1대, 150리터(L) 냉장고 1대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양으로 110와트 소전류제한기에 비해 두 배나(?) 커진 용량이다. 그러나 역시 최소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용량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이번 산자부의 개정안에는 장애인에 대한 지원제도도 포함되어 있다. 산소발생기, 인공호흡기 등 생명유지 장치를 사용해야하는 장애인에 대한 누진요금제도 완화를 그 내용으로 한다. 현재 장애인 가구에는 전기요금 20%를 감면해주고 있으나, 생명유지 장치를 사용해야 할 경우 주택용 전기와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누진요금이 높게 적용되어 전기요금 부담이 높은 상황이다. 발표에서 산자부는 장애인 가구에 기존 전기요금 할인제도를 유지하되 생명유지 장치를 사용하는 가구에 대해서는 누진요금 단가가 높은 300킬로와트시(kWh) 초과 600킬로와트시 이하 사용량에 대해 한 단계씩 낮은 구간요금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 정책으로 인해 평균 사용량이 호당 550킬로와트시라고 가정한다면 연간 7852호가 약 29억 원의 감면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에너지 기본권의 현실
최근에는 빈곤계층 및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난방 연료인 프로판 가스와 등유에 대한 특소세 인하 조치가 발표되어 2008년 초부터 실시된다. 2000년 이후 등유와 프로판에 부과되는 특소세는 급속히 상승해 지역난방이나 도시가스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등유는 전체 소비자가격의 31.7%가 특별소비세 등 특별부과금이다. 그런데 등유와 프로판을 사용하는 가구는 빈곤계층이거나 도시 외곽 지역, 농어촌 지역 및 산간 도서 지역이다. 도시가스나 지역난방을 공급받지 못하는 소외된 지역에 거주하면서도 이들 서민들은 오히려 두 배 이상의 높은 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이러한 실태는 사회적 형평성의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이자,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요한 원인이라 할 것이다. 전력의 경우 99%의 보급, 전국 단일 요금제도 및 누진세 적용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형평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비해(물론 빈곤층에 대한 단전 조치 금지 및 에너지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등유와 프로판 가스를 사용하는 서민층에 대한 고려는 아직까지 미흡할 따름이다.
현재 도시가스의 경우 보급률이 90%에 이른다고 하지만 소도시, 농어촌, 군 면단위에 대한 보급은 미미하다. 또한 90% 공급의 의미는 메인관의 공급이라는 점에서 실제 가정, 일반 주택, 오래된 아파트, 빈곤층 밀집 지역의 공급 비율은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도시가스 메인관 공급은 33개로 나뉘어 있는 도시가스사(도매 도시가스가 가스공사를 통해 독점적으로 공급되는 것과 달리 도시가스사는 33개 사기업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지역 독점이 보장되는 사기업 형태이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도시가스 관로 건설에서 100m 당 20가구 미만이 거주할 경우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메인관 건설이 쉽지 않기도 하며, 일반 가정에 들어가는 관은 메인관에서 떨어진 거리에 따라 설치비를 수요자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설치비 부담으로 인해 인근에 도시가스 관이 들어와도 도시가스 공급을 받지 못하는 가정이 많은 상황이다.
최근 지자체 등에서 도시가스 관 설치비 지원 등을 발표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대다수 서민층은 난방 공급에 있어 소외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대다수 빈곤층이 밀집한 거주 지역은 등유나 프로판 가스를 구입할 돈이 없어 전기장판 하나에 의존해 겨울철 난방을 해결하거나 그 조차도 단전조치가 시행될 경우 대책이 전무했던 상황이다.
유류세 인하, 찬성할 수 있나?
물론 등유와 프로판 특소세 인하에 대해 다른 목소리도 존재한다. 유류세 인하에 대해서는 가시적인 세금감면 효과를 노리는 정치권 내부의 선심성 정책으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주제이며, 주요 정유사의 입장에서도 민감한 주제였다. 이 때문에 금번의 산자부 발표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라는 빌미로 슬그머니 유류세의 일부(등유세와 프로판에 대한 특소세)를 인하하다가 결국 유류세 전반의 인하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한국은 자동차 보급 세계 13위, 에너지 소비량 7위, 석유 수입량 4위, 이산화탄소 배출량 9위에다가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97%나 되는 상황이므로 휘발유 등 에너지에 대한 저소비 정책을 추진해야 하지만 자동차와 정유사를 장악한 자본의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공급 확대 정책으로 일관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점에서 지속가능한 미래, 친환경적 에너지 체제 전환을 위한 에너지 저소비 정책에서 유류세 인하 문제는 중요한 쟁점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당장 서민 부담으로 다가오는 등유와 프로판에 대한 특소세 인하 문제는 중장기적 측면에서 유류세의 일부 부문을 인하하는 문제로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저소득층과 서민가정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의 에너지 지원 문제로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민해야 할 주제이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가 걸어온 길
98년부터 시작된 에너지 산업 사유화 정책에 맞서 발전, 전력, 가스 등 주요 공기업 노동자들은 투쟁을 시작했고 <에너지 사회공공성→에너지 기본권→친환경적·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 전환→에너지 저소비·효율화 정책> 등으로 고민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이 전 과정이 우리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가 노동조합 운동 영역을 넘어 인권운동, 환경운동과 조우하고 고민을 나누는 과정이기도 했다. 공급위주 에너지 산업 정책에 대해 노동조합에서도 반성하면서 에너지 체제 전환의 구체적 과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에너지 사유화 및 상업화 정책이 결과적으로 친환경적 에너지 전환의 과제를 가로막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환경운동 진영이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2005년에는 단전으로 인한 여자 중학생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에너지 기본권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우리는 비록 제한적 조치였지만 한전과 산자부의 당시 정책을 이끌어내는데 일조하기도 했고, 이후 민주노동당과 함께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졸속적 설립 반대 및 에너지기본법 제정을 위해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에너지 기본권과 관련한 노동조합의 노력은 부재한 상황이다.
정책의 실효성 여부를 떠나 110와트의 소전류제한기가 220와트로 (물론 형식적이고 제한적이다) 확장되는 정책의 제반 수립 과정에서 에너지 공급의 주체(단전 혹은 중단 조치의 주체이기도 하다)이자 에너지 공공성을 위해 사유화 정책은 절대 아니라고 주장하는 노동조합의 선도적인 역할은 부재했으며 여전히 에너지 기본권 등 에너지 공공성을 외치는 투쟁에서 에너지 기본권과 관련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 수립에 대해서는 많은 노력을 투여하지 못했다.
지난해와 올해 초 대구지역 인권, 빈곤단체들이 우리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에 등유에 대한 특소세 폐지 투쟁을 함께 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물론 현재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에 소속한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에너지 공공성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주요 단위에 석유 관련 노동조합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대응하며 개입할 힘과 내용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변명도 해본다. 정보도 잘 모르고 현황도 잘 모른다고 변명도 해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공공성, 에너지 기본권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 발언을 이미 시작했고 이를 주요한 과제로 설정했다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과제에 개입하고 투쟁했어야 한다. 이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 사회공공성에는 많은 주제가 포함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에너지 위기 정세에 대한 장기적 재편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며, 이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 전환을 위한 산업적·사회적 재편, 에너지 저소비와 효율화 정책 등의 문제를 포함한다. 또한 중단기적으로는 에너지의 평화적 자립 문제 등이 결합된다. 당장 우리 눈앞에는 대북에너지 지원 문제도 존재한다. 북측의 주민들이 남측과 같이 에너지를 공급받고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일은 단지 민족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는 인권과 기본권이라는 더욱 근본적인 차원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에너지를 어떻게 그리고 시급하게 공급할 것인가는 바로 우리의 몫이자 과제인 것이다.
에너지 기본권과 지속가능한 미래
다시 에너지 기본권 문제로 돌아가 보자.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고 이에 따른 주체적 의지를 다져 본다면, 우리는 빈곤층과 차상위 계층에 대한 에너지 무상공급에 대해 충분히 그리고 설득력 있는 방안을 제기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전력과 난방 공급에 있어 최근 투자가 시작되고 있는 CES(집단구역에너지 등으로 전력 생산과 열 공급을 함께 할 수 있는 형태) 등의 형태를 지역 주민 친화적이고 공동체적 방식으로 충분히 지원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물론 현재 CES는 전력과 열 생산에 있어 공적 중심 체계를 시장화하고 개방하는 형태를 부추기는 식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간 경쟁의 고리로 작동한다는 점 역시 지적해야 한다. 이러한 제반의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에너지 생산과 공급, 에너지 기본권과 지속가능한 미래 사이의 현실적 간극에 대해 노동자적·민중적 대안을 수립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나아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문제도 상층의 정책 수립 문제(고유가 시대, 에너지 위기 정세 심화 속에서 산자부는 끊임없이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그 의지와 실효성은 상당히 의심스럽다)로 접근하거나 혹은 시장 논리에 맡기면 자연발생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대하는 태도는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오히려 지역 공동체와 삶의 문제 속에서, 사회적 인식을 충분히 제고해나가는 방향에서라면 충분히 에너지 기본권 문제를 해결하고 포함하는 양상에서 에너지 전환의 과제와 결합할 수 있다. 농어촌 지역에 재생 가능한 에너지 단지를 조성하고, CES 형태의 집단 에너지 단지를 조성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재생 가능한 에너지 확장, 지역 친화적인 분산형 전원 형성은 가능할 것이며 이는 결국 에너지 기본권 보장 등과 맞물리게 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공적인 투자와 지원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사회적 통제가 병행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제반의 정책, 에너지 기본권 확장을 위한 투쟁은 역시 에너지 산업이 무한 시장의 상품논리로 해체되지 않았을 때 가능하며, 나아가 에너지 산업에 대해 노동자와 민중 진영 안팎에서의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한 점에서 미약하지만 에너지 산업 사유화 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현재의 투쟁이 여전히 출발의 계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에너지 기본권 확장,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 전환을 위한 노력을 이제야 현장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이해를 구하는 바이다. 우리의 이 투쟁이 현실화되고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환경운동과 인권운동 등 제반의 진보적 운동 진영이 때로는 밖에서 질책하고 요구하며 때로는 안에서 함께 연대하고 정책을 주도하면서 가능하리라 본다. 적어도 에너지에서는 더 이상의 빈곤과 소외, 그리고 죽음이 없기를 바라며 다시금 에너지 사회공공성 쟁취 투쟁, 에너지 기본권 쟁취 투쟁을 시작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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