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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범여권에 희망은 있나?

[좌담] 후보단일화, 과연 '묘약'인가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확정됐다. '거함'이나 다름없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주위를 정동영, 이인제, 문국현, 권영길 등 군소주자들이 에워싼 형국. '이명박 대항마'가 나오기까지는 갈 길이 여전히 멀다. 범여권은 후보단일화 등 남은 절차를 순항해 이 후보와 '의미 있는 일전'을 치를 수 있을까?

'좋은정책 포럼'에서 활동 중인 연세대 김호기 교수, 문국현 캠프의 공보팀장을 맡고 있는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한귀영 수석전문위원에게 범여권의 진로와 2007년 대선 전망을 들어봤다.


"정동영, 앞으로 2주가 관건"

신당과 민주당의 경선 자체에 대해선 낙제점에 가까운 평가였다. "급조된 정당에서 치러진 경선에서 예상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그대로 드러났다"(김호기), "가치지향도 부재했을 뿐더러 후보들의 권력의지만 존재한 경선"(한귀영), "조직동원의 노하우가 압축된 선거"(고원) 등이 부정동원과 네거티브, 파행으로 얼룩졌던 신당의 경선을 돌아본 이들의 소회였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한귀영 전문위원은 "경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거의 단정적으로 말하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선출된 정동영 후보의 본선경쟁력에도 의구심이 많았다. 후보단일화 경쟁자인 문국현 후보 측의 고원 팀장이 △정책노선의 부재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실패에 대한 책임 등을 들어 "시대정신에 맞는 인물인가 하는 점에서 회의감이 있다"고 각을 세웠음은 물론이다.

한귀영 전문위원도 "지금까지는 경선이었기 때문에 선거기술, 정치기술, 정치공학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민들을 상대로 해야 하는데 설득이 가능하겠느냐"고 비관적 견해를 밝혔다.
▲ 왼쪽부터 김호기 교수, 한귀영 전문위원, 고원 공보팀장 ⓒ프레시안

다만 김호기 교수는 "정 후보의 본선 경쟁력은 정책적 콘텐츠보다는 정치력에 달려있다"며 "민주당, 문국현 후보, 국민중심당, 민주노동당 등과의 후보단일화나 연립정부 모색 같은 정치적 역량에 따라 이명박 후보와 일대일 구도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봤다.

김 교수는 특히 정 후보가 후보수락연설에서 강조한 '차별없는 성장'에 주목하며 "성장 패러다임을 중시하면서도 스웨덴과 아일랜드 모델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본다"며 "정 후보의 스탠스가 중도우(右)에서 중도중(中)으로 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 교수 역시 "자기의 확실한 비전이나 주장이 있어야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정 후보에게 앞으로 2주 정도는 마이크가 넘어갈 텐데 그 기간 동안 얼마나 자신의 것을 보여주고 이를 바탕으로 지지율을 20%까지 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후보단일화 '동상이몽'

'정동영만으로는 어렵다'는 판단은 자연스럽게 범여권 후보단일화로 모아졌다. 이 대목에선 단일화의 '당위'를 강조한 김호기 교수와 문국현 후보 진영의 고원 팀장의 견해가 크게 엇갈렸다.

물론 김 교수도 단일화 전망에 대한 쉬운 낙관을 하지는 못했다. 그는 "과거 단일화에는 '반한나라당=민주화'라는 등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올해엔 상당히 약화됐다"며 "반한나라당을 위해 꼭 집결해야 하는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신당에는 141명의 의원이, 민주당에는 원외위원장이, 문국현 진영에도 정치진입을 모색하는 새로운 집단이 있다"며 "단일화를 더욱 어렵게 하는 문제는 올해 대선이 내년 총선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후보단일화에는 당대당 통합, 인물연합, 정책연합 등의 방법이 있다"며 "평화경제 패러다임이나 그에 수반되는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정책연합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현실가능한 대안은 한국사회의 대연정이다. 한국식 '무지개 연합'이 나올 수도 있다"며 "출발은 민주신당과 창조한국이 있을 수 있고, 가치연정을 말하는 권영길 후보도 포함될 수 있다"고 범위를 넓게 봤다.

반면 고 팀장은 "일당독주의 정치체제가 구조화된다면 한국의 정치발전 측면에서 대단히 불행한 정치적 재앙"이라고 호응하면서도 "그러나 경제와 균형의 정치적 체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고 팀장은 "국민적 에너지가 밀어 올리는 조건이 없다면 후보단일화를 해도 별로 폭발성이 없을 것"이라며 "정치공학적인 권력투쟁, 세력게임,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비화될 수 있어 위험한 측면이 있다. 후보단일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콘텐츠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전제를 달았다.

고 팀장은 "우리 사회가 처한 여러 절박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가치관과 비전, 노선, 정책이 궁극적으로 중요하다"며 "이를 기준으로 범여권의 다른 세력과도 협력할 수 있는 정도가 결정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적 우열을 가리는 경쟁에서 확실한 쏠림이 일어나면 연합이 부차적일 수도 있다"고 자신감을 표하기도 했다.

고 팀장은 다만 "문 후보가 기성 정치와 단절하고 혼자 갈 수 있느냐에 대한 검증이 아직 안된 것 같다. 그런 전망이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고 단일화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다.

권영길 후보가 강조하는 '가치연정'에 대해 고 팀장은 "포괄적 협력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민노당과 문 후보의 정치적 스펙트럼에 차이가 있고 민노당이 정파중심적 운영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협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검증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부정적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한편 한귀영 전문위원은 "단일화는 정치권의 논리이지 국민의 논리가 아니다"고 험로를 예상했다. 그는 단일화가 충족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으로 △단일화 대상 사이 지향하는 가치의 공유 △지지층의 중첩 △단일화의 분명한 목표 공유 등을 제시하며 "지금은 어느 한 가지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 위원은 "문 후보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는 게 인지도를 높이거나 자신의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보고 그 힘을 지렛대로 후보단일화에서 유리한 지형에 서려고 할 것"이라고 단일화 시기가 대선이 임박한 시점까지 늦어질 가능성도 거론했다.

다음은 15일 오후 프레시안 본사에서 박인규 대표가 진행한 좌담 전문.

"실망스런 경선…경선효과 없을 것"

프레시안 :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에 이어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결정이 됐다. 신당 경선을 지켜본 일감이랄까, 평가를 우선 해보자.
▲ 김호기 교수ⓒ프레시안

김호기 : 급조된 정당에서 치러진 경선에서 예상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그대로 드러난 것 같다. 범여권의 지지그룹은 비전과 정책이 생산적으로 경쟁되기를 바랐는데 결국 실패했다. 경선 룰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불균등한 지역비례에 기반한 선거인단 구성을 비롯해서 도중에 룰을 바꾸기도 했고 지도력의 부재도 나타났다. 선거란 네거티브를 어느 정도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경선 파행 등 한나라당을 능가하는 네거티브의 여러 문제가 동시에 나타났다. 당초 가졌던 일말의 기대가 실망으로 나타난 경선이었다.

더욱이 낮은 투표율이 우울하게 했던 것 같다. 다만 마지막 모바일 투표가 그나마 관심을 좀 모았던 부분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비밀투표, 직접투표의 원칙에서 논란이 될만하지만 새로운 투표절차로 한번 검토해볼만한 부분이다. 새로운 기대가 한편에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실망감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한귀영 : 정당의 경선은 정당의 가치지향이 우선적으로 전제돼야 하고 후보들의 경쟁력이 두 번째 전제가 돼야 한다. 그러나 신당의 경선은 가치지향도 부재했을 뿐더러 후보들의 권력의지만 존재하는, 그래서 과도하게 부딪힌 경선이 아니었나 싶다. 정책이나 이념, 비전 없는 경쟁이 파행까지 갔던 불상사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예상됐던 결과이기도 하지만 암울한 진단밖에 할 수밖에 없다.

고원 : 우리나라 선거는 통상 '콘텐츠 대 조직'이 경쟁하는 선거구도가 전개됐다. 신당의 경선과정은 콘텐츠가 빠지고 조직에 의한 선거가 압도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조직 동원 노하우가 압축된 선거과정이었다. 조직에 대한 노하우나 조직력의 기반이 가장 강한 정동영 후보가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손학규, 이해찬 후보는 그에 대항하는 콘텐츠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특히 콘텐츠뿐만 아니라 본선경쟁력을 두 사람 모두 보여주지 못했고 무기력했다.

프레시안 : 정동영 후보가 왜 승리했지, 그리고 당초 대세론을 구가하던 손학규 후보는 왜 패했는지 짚어보자.

김호기 : 정 후보의 가장 큰 승인은 지난 5년간 준비해 온 조직이다. 동원은 다른 후보들도 다 있었을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동원도 선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집중력이 중요한데, 정동영 캠프의 집중력이 돋보이지 않았나 싶다. 정 후보가 오랜 동안 대선을 준비해왔기 때문에 지지층의 충성도가 높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온 손학규와 이해찬 후보에 비해 동원과 집중력에서 우세했다.

크게 보자면 낮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좁게는 정 후보 지지계층, 넓게는 호남 표심이 집결하지 않았나 싶다. 경선 막판의 파행과 정동영 캠프 압수수색을 둘러싼 공방전이 정 후보 측에는 위기요인이었지만 지지층 결집이라는 면에서는 결과적으로는 득이 된 것 같다.

고원 : 손학규 후보의 패배는 정체성 문제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손 후보가 자만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초기 범여권 후보 가운데 상당히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던 여론조사에 안주하지 않았나 싶다. 경계심이 흐트러진 결과 '광주정신을 털고 가야 한다'는 식의 치명적 실수가 나왔던 것 같다. 또한 몇 번의 고비마다 손 후보가 결정을 하는 과정을 보면 대단히 즉흥적이고 감성적이었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손학규 후보가 내려앉은 것 같다.

정동영 후보가 조직의 노하우에서 월등히 앞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선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에 신당의 경선이 파국으로 흘러가면서 범여권 지지층의 심리상태는 이렇게 가면 끝인데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준비돼 있다고 받아들이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앞서 있는 사람을 택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묘한 현실론과 패배주의적 선거방식이 작동해 정동영 후보에 대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몰린 측면이 있다. 경선 파행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정동영 후보에게 있는데 지지율은 조금씩 오른 반면, 손학규, 이해찬 후보의 지지율은 오히려 내려앉은 현상은 그런 매커니즘으로 설명이 될 수 있다.

한귀영 : 경선 과정과 여론조사는 통상 상호 영향을 미치는 긴장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 신당의 경선에선 여론조사가 경선에 미치는 긴장관계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경선 결과는 여론조사에 영향을 미쳤다. 즉 경선과 일반여론조사의 긴장관계가 그만큼 떨어진 것이다. 긴장관계가 있으려면 본인의 가치와 정책이 드러나고 그것이 결과에 반영돼야 한다. 그러나 조직력의 정동영 후보가 앞서는 경선 과정을 지켜보며 일반 여론조사의 응답자들도 본인들이 선택할만한 다른 준거가 없는 상태에서 '저 사람이 일등하네' 하는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부분들은 경선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게 한 요인이다. 신당의 경선효과가 높아지려면 경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경선 구도에서 예측 불가능한 부분도 없었다. 경선 룰과 과정에서도 후보들의 페어플레이가 매우 약했기 때문에 경선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김호기 : 경선 시작 전에 '반노(反盧)의 손학규, 비노(非盧)의 정동영, 친노(親盧)의 이해찬' 식의 외부적 규정이 있었다. 경선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외부적 규정을 내부적 규정으로 바꿔야 했다. '중도보수의 손학규, 중도의 정동영, 중도진보의 이해찬' 식으로 바뀌었어야 하는데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니 남은 것은 조직밖에 없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87년 체제를 넘어서 2008년 신발전체제 이루어내겠다고 했다. 사실 거시역사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은 진보 내지 개혁세력의 전유적인 담론이었다. 이런 부분에 대항해서 오히려 외부의 문국현 후보는 나름대로 담론을 제시한 것 같은데, 신당의 세 후보는 묵묵부답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 경선이 흥행하기 쉽지 않다고 봤다. 새로운 비전이나 담론이나 정책이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프레시안 : 이해찬 후보가 단일화까지 했는데 3등으로 밀려난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개입력이 약화됐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한귀영 : 돌이켜보면 경선이 시작될 무렵 3강구도가 예상됐다. 일반여론조사에서 강점을 가진 손학규, 조직력이 우월한 정동영, 친노단일화를 이룬 이해찬의 각축 구도였다. 이 예상은 20% 가량으로 보는 친노 기반이 단일화된 것에 주목한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끝까지 가는 20%가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친노가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인물을 구심으로 하면 묶일 수 있었지만 노무현이 빠진 상태에서 정책과 노선으로 엮이기에 역부족이지 않았나 싶다.

김호기 : 친노가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노무현이라고 하는 뚜렷한 정치적 상징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말만 친노지 정치적 상징이 약했다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국정운영 지지도가 50%를 넘는 결과 나오지만, 참여정부와 노무현이라는 개인, 친노그룹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 다르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운영 행위 자체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이 팽팽하게 맞선 것 같다. 그러나 노무현 개인과 친노 그룹에 대해선 그들의 발언양식, 행동양식, 국민들에 대한 태도 등의 측면에서 상당한 반감이 있다. 노무현 개인과 친노 그룹에 대한 무의식적 반발감이 경선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난 것 같다.
▲ 고원 공보팀장 ⓒ프레시안

고원 : 노무현이라는 변수가 대선판에서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해찬 후보가 친노라는 이미지로 활성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는 없었다. 이 후보는 친노의 부정적 이미지만 떠안았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지표에서 인지도 대비 호감도가 가장 낮게 나왔다. 또한 이해찬의 콘텐츠가 참여정부보다 새로운 것도 없다. 국민들에게 감동이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 같다. 이해찬 후보가 본선경쟁력을 내세웠지만 왜 본선경쟁력이 이해찬의 브랜드인지에 대해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프레시안 : 본선경쟁력이란 말이 나온 김에 정동영 후보의 본선경쟁력은 어떻게 평가하나.

김호기 : 이번 대선은 이중적인 특성이 있다. 정치선거인 부분과 정책선거인 중에서 정치선거적인 특성이 두드러진 선거다. 유력 주자로 이명박 후보의 주위에 군소후보들이 있는 형국이지만 이명박 후보와 어느정도 이념적 동질성이 있기 때문에 정책선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따라서 정동영 후보의 본선경쟁력은 정책적 콘텐츠보다는 그의 정치력에 달려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어떻게 민주당, 문국현 후보, 나아가 국민중심당과 통합을 할 것인지가 관건이고 경우에 따라선 민주노동당과 연립정부를 모색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은 정책적 역량이 아니라 정치적 역량이다. 그에 따라 일대일 구도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정동영 후보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정책역량보다는 정치역량이 두드러진 정치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 정치력을 극대화시키는 게 관건이다. 민주당, 문국현, 국중당, 민노당에까지 그가 어떤 역량을 보이느냐가 키포인트다. 선거는 기본적으로 정책대결로 가야하는데 이번 대선은 아마도 세력대결이지 비전이나 정책대결은 비중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고원 : 정동영 후보가 당선된 것은 본선에서 누구도 이명박 후보를 이길 수 없다는 패배감과 함께 본선에서 안 될 바에야 호남사람 내지는 과거부터 당에서 인연이 많았던 사람을 찍어주자는 현실론이 묘하게 뒤섞인 선택이다.

정동영 후보의 본선경쟁력이 결여된 것은 태생적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단일화를 통해 정치적 드라이브로 거느냐가 변수가 남아있지만, 단일화는 양날의 칼이다. 단일화를 통해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효과를 연출할 수도 있지만, 구태로 얼룩진 신당 경선의 재판처럼 얼룩진 단일화판이 나타날 수도 있다. 경선의 나쁜 정치적 행태가 극복되지 않으면 단일화도 충분히 얼룩진 단일화로 갈 수 있다. 그래서 단일화라는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다 같이 봐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반응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인데, 그 점에서 정동영 후보에게서 결함이 보인다. 첫째는 시대정신에 과연 맞는 인물인가 하는 점에서 회의감이 있다. 둘째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와 각을 세울 수 있는 정책노선의 내용이 있는가이다. 셋째는 정동영 후보에게는 참여정부와 여당의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더욱이 최근에는 경선 사태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하는 상황이 됨으로써 본선경쟁력에 상당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한귀영 : 김 교수는 이번 대선은 정치력이 최종적으로 가늠할 것이라고 했는데, 동의를 하면서도 그것 역시 현실론이라는 생각이다. 양자구도 하에서 후보가 되려면 어느 한쪽의 가치를 대표하는 인물이 돼야 한다. 지금까지는 경선이었기 때문에 선거기술, 정치기술, 정치공학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민들을 상대로 해야 하는데 설득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내가 왜 대통령을 하려고 하는지, 대변하려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 바탕 위에 정치력이 고려될 수 있다. 당내의 통합을 위해서도 본인의 것을 포기하는 결단이 나와야 하고 단일화 과정에서도 신당의 기득권이 아니라 왜 단일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이 나와야 한다.

후보단일화, 꼭 해야하나?

프레시안 : 아무래도 이제부터는 후보단일화가 관심인데, '반(反)이명박' 말고 후보단일화를 해야 하는 당위나 이유가 있다면 무언가. 무엇을 위한 후보단일화인가?

김호기 : 정 후보가 오늘 후보수락연설에서 '차별없는 성장'이라는 것을 채택했다. 차별없는 성장은 성장 패러다임을 중시하면서도 스웨덴과 아일랜드 모델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본다. 콘텐츠를 담으려는 노력을 보인 것으로 일단 평가한다. 그동안 정동영 후보가 보여준 가치에서 벗어난 것이다. 미국 모델이 아니라 스웨덴과 아일랜드 모델로 가겠다는 것은 정 후보의 스탠스가 중도우에서 중도중으로 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본인이 나름대로 고민을 한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의 플러스 알파는 비전이다. 대선은 전망투표적인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상대방이 잘못한다고 반사이익으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자기의 확실한 비전이나 주장이 있어야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정 후보가 오늘 제시한 내용이 얼마나 국민들에게 공감대를 안길지는 미지수다. 아마도 정동영 후보에게 2주 정도는 마이크가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자신의 것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단일화 이전의 관건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본인의 지지율을 20%까지 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예상컨대 정동영 후보는 자신의 역량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보다는 먼저 민주당과의 통합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신당의 입장에서 보면 당장의 포인트는 호남의 결집이기 때문이다. 호남세력의 집결을 주도한 다음에 문국현 후보와 단일화를 모색할 것이다. 수도권 30~40대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과의 통합에서는 DJ의 영향력 등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다. 이 후보는 국중당에서 당적을 바꿔 민주당 후보가 된 만큼 민주당의 정통성을 결여하고 있다. 따라서 후보로 결정이 되면 민주당 내적인 긴장과 갈등이 커질 것이다. 신당과 통합하려는 그룹과 이인제 후보를 내세워 정면돌파 하려는 그룹으로 나뉠 것이다. 따라서 신당의 입장에선 이 국면을 잘 수습한 뒤에야 수도권 30~40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단일화가 추진되지 않을까 싶다.

한귀영 : 민주당 지지층의 상당수는 이미 정동영 후보 지지로 넘어왔다. 단일화까지 염두에 두고 '진짜 우리 후보는 이인제나 조순형이 아니라 정동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인제 후보로 확정되면 여러 가지 얽히는 관계가 있을 것이다.

후보단일화와 관련해선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단일화 대상의 지향하는 가치가 비슷하거나, 둘째는 2002년처럼 가치는 다를지라도 지지층이 중첩되거나, 셋째는 단일화의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그 세 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후보단일화나 반한나라당 전선은 정치권의 논리이지 국민의 논리는 아니다.

물론 지향하는 가치의 같고 다름을 확인하는 기간이 탐색기가 아닌가 싶다. 그 속에서 반한나라당이라는 대척점도 분명해질 것 같고, 후보단일화의 힘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단일화 카드를 던진다고 큰 반향이 없을 것 같다. 적어도 향후 한 달 간은 가치를 공유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고원 : 후보단일화의 경험은 과거의 전형적 두 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97년 DJP 연합과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다. DJP 연합은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 두 사람의 결단에 의해 이뤄진 것이었다. 당시 상황에선 밑에서 불만이 있어도 뒤집을 수 없는 구조였다. 2002년의 단일화 구조는 지도자들 사이의 약속이나 거래라기보다는 아래로부터 이뤄진 측면이 강하다. 후보단일화를 하라고 하는 국민적 요청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2002년 단일화는 폭발성을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올해에도 국민적 에너지가 밀어 올리는 조건이 없다면 후보단일화를 해도 별로 폭발성이 없을 것이다. 정치공학적인 권력투쟁, 세력게임,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비화될 수 있어서 위험한 측면이 있다. 물론 국민적 요청과 에너지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후보단일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콘텐츠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김 교수의 지적대로 정동영 후보가 정책노선 상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면 전향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말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얼마 전까지 여러 불미스런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데, 그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지는 자세를 먼저 보이고 정책이나 노선에서 우리사회를 어떻게 끌고나가겠다고 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김호기 : 단일화에 대해선 낙관과 비관적 생각이 공존한다. 과거에 단일화가 관철된 것은 '반한나라당=민주화'라는 등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동영-문국현의 이질성보다 노무현-정몽준의 이질성이 훨씬 컸음에도 불구하고 '반한나라=민주화'였기 때문에 2002년에는 단일화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 등식이 올해엔 상당히 약화됐다. 국민들은 민주화가 여전히 유효한 가치인가를 회의한다. 과거만큼 반한나라당을 위해 민주평화개혁세력들이 꼭 집결해야 하는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한나라당이라는 당위적 측면이 강하게 작용한다면 후보단일화를 낙관할 수 있지만, 민주평화세력이 왜 집권해야 하는지 하는 회의가 앞선다면 비관적인 부분도 적지 않다. 어떻게 풀릴지는 예측이 어렵다.

단일화를 더욱 어렵게 하는 문제는 올해 대선이 내년 총선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대선의 정치적 선택은 내년 총선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 맞물려 있다. 고차방정식이다. 후보단일화가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액터(Actor)는 누가 뭐래도 의원들이다. 신당이 141명 있다. 민주당에는 원외 위원장들이 있다. 문국현 진영에도 징치진입을 모색하는 새로운 집단이 있다. 이들 개별 세력이 조화롭게 공존하기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단일화는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후보단일화가 됐건 연정이 됐건 정책연합이 됐건 반한나라당 진영을 결집시킬만한 복안은 있다고 보나?

고원 : 문국현 후보의 정체성이나 국민적 요구를 고려해도 원칙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처한 여러 절박한 문제, 즉 50%에 이르는 비정규직 문제, 열악해진 중소기업의 문제, 양극화 심화 등의 문제 앞에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가치관과 비전, 노선, 정책이 궁극적으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기준으로 범여권의 다른 세력들도 협력할 수 있는 정도가 결정이 된다고 본다.

범여권 기성 정치인들 상당수는 과거를 정리하고 단절해서 우리사회의 문제를 풀기위한 영역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그런 단계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건 문 후보가 그쪽과 협력할 수 있는 연대나 연합의 수준을 높이는 것을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협력이나 연합을 했을 때 피차 동의 안 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다만 문 후보가 혼자서 갈 수 있느냐. 기성 정치와 단절하고 혼자 갈 수 있느냐에 대한 검증은 아직 안 된 것 같다. 그런 전망이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

"한국식 대연정이 대안" vs "정치연합이 반드시 필요치는 않아"

김호기 : 이번 선거에선 경제 대 평화는 필패라고 본다. 이른바 범여권이 선전할 수 있는 구도는 '경제 대 평화경제'다. 신당의 정동영 후보나 창조한국의 문국현 후보 같은 경우 한 사람은 평화에 대한 우위를 가지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경제에 관한 우위가 있다. 두 사람이 결합된다면 시너지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경제 대 평화경제로 나아갈 수 있지 않나 싶다. 또한 정동영 후보는 다소 중도적이고 문국현 후보는 일반적으로 개혁적인 면모가 있지만 개별적으로 들여다보면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고 본다. 교집합을 넓혀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후보단일화의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당대당 통합, 둘째는 인물연합, 셋째는 정책연합이다. 평화경제 패러다임이나 그에 수반되는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정책연합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고정적인 지지층이 있고 국민들이 염원하는 새로운 정치가 결합할 수 있다고 본다. 남북평화공존에 대해선 정동영 후보가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다. 이정도면 정책연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환기하지만 대선과 내년 총선이 결합돼 있다. 수도권에선 한나라당과 일대일로 붙어도 대부분 패한다. 정책연합이 이뤄지지 못하고 범여권 각 세력이 다들 독자후보로 나오게 되면 수도권에선 이른바 범여권의 완전한 패배로 나타날 것이다. 행정권력도 중요하지만 입법권력도 중요하다. 수도권에서라도 양당체제 비슷한 게 만들어져야 하는데, 일당독주로 가면 한국 정치의 비극이 발생한다. 남은 65일 동안이 중요하다. 서로 승자독식하려고 해선 안된다.

고원 : 일당독주의 정치체제가 지속돼서 구조화된다면 한국의 정치발전의 측면에서 대단히 불행한 정치적 재앙이다. 견제와 균형의 정치적 체제가 만들어지는 것은 절대적 요청이라고 본다. 다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중요하다. 정동영 후보나 신당의 전신이 집권을 하는 과정에서 양극화가 대단히 심화됐었고 비정규직이 50% 이상까지 폭증했다. 이런 상황은 신자유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나라가 뒤집혀질 만한 일이다. 이런 책임에 대해 어떻게 반성하고 어떻게 앞으로 책임질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본다. 그게 과거를 정리하는 과정이고 경선에서 드러났어야 했는데 여전히 과거를 정리하지 못하고 과거에 매몰돼 있음을 국민들에게 재확인시켰다. 이런 상황에선 소위 우리사회의 절박한 문제들의 해결을 주도할 수 있고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기 위한 창조적 융합이 어렵다.
▲ 한귀영 수석전문위원 ⓒ프레시안

한귀영 : 정동영 후보의 수락 연설이 아일랜드, 스웨덴 모델의 지향을 담은 것이라면 문국현 후보와의 경제노선 상에서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문국현 후보가 대선 출마 선언을 할 때 울림이 있었다. 결국은 문제설정과 프레임에 따라 울림이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 정동영 후보도 그런 부분에 대한 울림이 있어야 정책과 가치의 공유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정 후보에게 아쉬움이 있다.

고원 : 선거는 크게 회고적 투표와 전망적 투표로 나뉜다. 큰 판에선 전망적 투표로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해 대선판은 참 특수하다. 여전히 회고적 투표기제가 아직까지 작용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가 50%를 넘는 지지율을 지속하고 있는 것의 본질은 결국 현재의 상황을 바꾸기를 원하면서도 그 변화가 정권교체라고 국민들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이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이 한번 바꿔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정권교체, 바꿀 수 있는 현실적인 사람이 이명박 후보밖에 안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를 심판하고자 하는 욕구를 종식시키고 이를 넘어서서 미래에 대한 전망적 투표 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과거에 대한 정리 과정이 필요한데, 신당이 과거에 대한 정리를 못해주고 있는 것 같다.

김호기 : 현실 가능한 대안은 한국사회의 대연정이라고 본다. 한국식 무지개 연합이 나올 수도 있다. 통합보다 하위가 연합이고 그 하위가 연정이다. 여러 형태가 가능하다. 출발은 대통합민주신당과 창조한국이 있을 수 있고, 가치연정을 말하는 권영길 후보도 포함될 수 있다. 어쩌면 11월 중순이 되면 한국식 대연정이 모색될 가능성이 있다. 중도의 정동영, 중도진보의 문국현, 정통진보의 권영길 사이에서 대연정이 모색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이뤄진다면 일대일 구도가 완벽하게 복원된다.

고원 : 포괄적 의미로서의 정치연합이 있을 수 있고, 후보단일화 형태의 연합이 될 수도 있고, 서구의 일반화된 연정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다양한 가능성을 보고 있다. 지금 현재의 시점에선 어떻게 될 것이라고 정리하기 힘든 상태다. 다만 문 후보는 포괄적 개념으로서의 정치연합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치연합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정치적 우열을 가리는 경쟁에서 확실한 쏠림이 일어나면 연합이 부차적일 수도 있다.

프레시안 : 문 후보 쪽은 그것을 판단하는 시기를 11월 4일 정당 출범 이후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고원 : 결단이 있다면 11월 4일 창당 이후가 될 것이다. 문 후보로서는 단일화 논의를 섣부르게 가져갈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증오와 회고만 남긴 선거 이후가 더 걱정"

프레시안 : 민노당이 문국현 후보에 대해 가치연정을 말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고원 : 세력이나 권력이나 정치적 이익의 거래를 통한 합종연횡의 측면보다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본다. 물론 민노당과 문국현 후보가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는 공식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 다만 비슷하게 공유되는 부분이 있지만 민노당은 좌파적 성격이라 문 후보와 정치적 스펙트럼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지나치게 민노당의 모양이 정파중심적인 운영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점도 있다. 그런 것들이 협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검증을 해봐야 할 것 같다. 그게 확인돼야 분명해질 것 같다. 다만 포괄적인 협력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 후보가 파장을 일으킨 양상을 보면 진보적인 쪽 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쪽으로도 파장이 있다. 문 후보는 한나라당의 보수세력보다 훨씬 글로벌라이제이션에 전향적이고 적극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적인 스탠스를 가지고 있다. 문 후보를 통해 최초로 그런 스팩트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양 측면이 고려됐을 때 민노당에서, 범여권에서, 한나라당까지도 통합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김호기 : 문 후보는 일자리 문제를 중심으로 의제를 제기한 반면 평화이슈 같은 문제에 대해선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 후보는 한미 FTA 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것도 간단치 않고 토론을 요한다는 점이다.

문 후보에게는 장단점이 있다. 문 후보가 내세운 정책들이 참신하고 개혁적이고 일부 계층이나 집단으로부터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사실이지만 국가를 운용하기 위한 정책목록으로는 부족하다. 한미관계나 남북관계를 비롯해서 교육, 노후, 일자리 등 민생대책까지 정책목록이 필요하다. 남은기간 검증을 위해서라도 보다 적극적으로 내세워야 할 부분이 있다.

프레시안 : 문 후보 쪽의 입장에선 세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하기 때문에 단일화나 연합이 신당의 포장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한귀영 : 문 후보는 지금 필요한 게 자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신당과 정동영 후보는 140여 석의 의석을 가진 엄청난 거대 세력이다. 정 후보의 지지도가 10%라고 해도 막강한 조직력과 힘을 가진 정당인데 문 후보가 가진 건 5% 지지율밖에 없다. 문국현 후보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는 게 인지도를 높이거나 자신의 가능성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보고 이를 최대한 살리려고 할 것이다. 그런 힘을 지렛대로 후보단일화에서 유리한 지형에 서려고 할 것으로 본다.

프레시안 : 범여권의 상황과 관련해선 여전히 지리멸렬, 오합지졸 등의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올해 대선은 물론이고 내년 총선까지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선거구도가 어떻게 구축돼야 할지 마무리 발언 삼아 제언을 해달라.

김호기 : 개인적으로 굉장히 서글프다. 민주화 20년을 맞았는데도 여전히 우리의 정당정치는 이 수준밖에 안되는구나 하는 자괴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97년에는 한 사람이 경선 불복을을 해서 이상한 대결구도로 갔다. 2002년에 단일화와 노무현-정몽준 공조파기 등 우리의 정당정치가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줬다. 민주화 20년이 지난 지금도 정당정치의 제도화가 안됐다고 본다. 범여권을 보면, 거칠게 말하자면 정당인지, 결사체인지 모를 정도의 정치조직들이 경쟁하고, 공허함으로 문제를 돌파하려고 하는 게 현실인 것 같다. 무협지 비슷하다. 강호의 무림고수들이 쟁패를 벌이는 무협지적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화 20년 올해가 그래서 더 우울하고 서글프다. 그것도 정당정치를 허약하게 만든 주역이 보수 세력도 아니고 민주화를 주도했다는 민주세력이라는 점에서 우리 정치를 비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산업화 30년과 민주화 20년을 넘어가는 시기다. 이제부터의 과제는 세계화 시대 속에서 민주주의 심화라고 생각한다. 세계화 속에서 민주화를 모색하고 민주화 속에서 인간적인 과제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구자들이 바라는 것은 생산적인 비전과 시대정신과 담론의 경쟁이다. 남은 65일 동안 이것이 이뤄져야 한다. 한나라당이 2008년 신발전체제 말한다면 '사람중심 진짜경제'든 '차별없는 성장'이든 비전과 시대정신, 담론에 입각한 생산적인 경쟁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범여권이 정책연합이 됐건 한국식 대연정이 됐건 한나라당과 제대로 맞설 수 있는 정치구도를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원 :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 추이를 보면 암시적인 요소가 있다. 50% 밑으로 내려가게 하는 힘들이 작용하고 있다. 그 요인으로 첫째는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광범위한 부패 의혹을 받은 것이 누적된 결과라고 본다. 부패한 사람이 국가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회의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이명박 후보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들이 조금씩 퍼지고 있다. 경선과정에서도 경부대운하가 박근혜 전 대표에게 자칫 추월당할 뻔한 위기로 작용한 큰 요인이다. 또한 최근 부시 대통령 면담을 추진하다가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등 등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이명박 후보가 선출된 후 2개월이 다 돼가는 동안 파괴력 있는 무엇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50% 밑으로 내려앉도록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중요한 것은 50% 밑으로 내려앉는 힘이 어렴풋이 감지된다는 점이다. 그 반대를 다 합하면 50%가 넘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선으로 나가갈수록 국민들은 양강구도가 복원 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기대감을 가질 것으로 본다. 대선 막판으로 갈수록 선거의 판세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30%쯤은 있다고 본다.

한귀영 : 나는 그것보다는 좀 비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를 50% 밑으로 끌어당기는 힘은 있을지 몰라도, 그게 의미 있게 작용하려면 경쟁력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선거는 상대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그게 안보이면서 이명박 지지도가 위기를 겪었음에도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이 현실화되지 못한 것이다.

선거는 이길 수도, 질수도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선거를 통해 무엇을 남기느냐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을 준비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번 선거는 투표율이 굉장히 낮을 수 있다. 무엇을 하겠다는 선거가 아니라 누구에 대한 증오나 과거에 대한 회고만 남는 선거 이후가 더 걱정이다.

지금까지 범여권이 보여준 모습을 보며 이제라도 기본으로 돌아가기를 권하고 싶다. 지금까지 정치공학, 선거기술 등의 부정적 모습으로 점철됐다면 이제부터는 무엇으로 설득을 할 것인지 기본에 충실한 시간이 돼야 지지층을 어느 정도라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위기라는 진단이 많은데, 나도 총체적인 위기라고 본다. 능력의 위기이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자기도 모르는 가치와 비전의 위기라고 본다. 남은 건 무엇인가를 버리고 뼈저린 반성을 통해 기득권화된 모습에서 벗어나는 게 좋을 것이다.

프레시안 : 참신함을 자처하던 세력이 어느새 독선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노무현 정부와 범여권을 보면서 지금이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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