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한국영화프로그래머 이상용 | |
보기에도 창백한 지식인 모습의 이상용은 실제로도 창백하게 지금의 영화판과 세상사의 고민을 한꺼번에 짊어지고 고민하는 30대의 청장년이다. 부산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남들이라면 넙죽 받았을 것을 이 사람, 꽤나 고민했을 사실에 한 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 그랬을까. 그건 요즘의 그를 만나 가볍게 술을 마셔보면 금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이상용은 그리 술이 세지 않아서 소주 세 잔에 소맥 폭탄 한 잔이면 불쾌해진 얼굴, 심란해진 그의 마음을 잡아 낼 수 있다. 그럴 때 그의 입에서는 평소와는 달리 선배라는 표현보다는 형이란 표현이 나온다. "요즘 고민이요... 그렇죠. 고민이 돼요. 이게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이었던가. 이게 맞는 길인가. 몇 년 전에 학교에서 영화학 석사를 받고 나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카데미는 죽었다. 여기엔 진정한 길이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갈 길은 엄혹한 현장 비평가라구요. 남들이 다 가시밭길이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해도 현장에 두발을 딛고 까칠한 비평가가 되기로 결심했죠. 그리고 정말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된 것이 그러한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건 양립할 수 있는 대목이지 대립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이 안에 들어오고 나서 국내 영화산업의 내밀한 갈등 같은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또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작사와 투자사, 프로듀서와 감독의 입장과 태도들이 예전에 한 묶음으로 보였다면 지금은 각각의 문제가 고스란히 다 들어옵니다. 그런 걸 알게 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몰랐어야 되는 문제,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문제가 아니었던가 하는 거죠."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이게 무슨 흰소린가 하는 느낌이다. 조금 생각해서 듣는다 해도 이 인간 도통 세상이 움직이는 관행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 아닌가 하는 부아가 치민다. 하긴 말은 맞다. 이 사람 저 사람 사정을 다 알게 되고, 그걸 넘어서 이해까지 하게 되고, 그래서 그 사람들 모두의 사정을 다 들어주게 되는 처지가 되면 그 순간부터 현장비평가로서의 정체성은 조금씩 마모되기 십상이다. 세상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 사람들은 대개 정치 쪽으로 간다. 세상과 원칙을 가지고 등지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들 저널리스트의 길을 간다. 어느 것이 더 옳은 것인가. 세상을 속속들이 알면서도 비판의 각을 세울 때는 확실히 세울 수 있는 저널리스트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쉽지 않은 문제다. 술 몇 잔에 할랑할랑 혀 돌아가는 소리로 그가 해대는 소리가 때론 황당하고 짜증이 나긴 해도 그의 고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지식인이라면 끊임없이 해나가야 할 고민이 아닌가 싶다. 깡마른 체구와 얼굴에 비해 약간 큰 입 덕분에 늘 사람 좋은 표정을 짓고 있기에 무색무취의 처세술을 갖고있을 법하지만 그는 이렇게 자신 안에 늘 고민의 소용돌이를 안고 산다. 지금껏 그가 해낸 수많은 비평이, 때론 날선 혹평일지라도, 그 당사자에게조차 신뢰감을 얻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부산영화제 한국영화프로그래머 이상용 | |
프로그래밍을 맡은 지 올해가 첫해인 만큼 그는 이번 작업에 자신만의 색깔을 많이 담지 못할 것이다. 그 역시 "전체 편수를 맞추고 프로그래밍의 예년 기조를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립영화 쪽으로는 조금, 아니 상당히 욕심을 낸 흔적이 다분하다. 곧 출간될 책이 <독립영화의 고고학>일 만큼 이 분야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온 이상용은 윤성호나 안슬기 감독 같은 독립 장편영화 감독을 뉴 커런츠 부문에 입성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가 노력한 만큼 이번 영화제는 지난 한해 진행된 한국 독립영화의 흐름을 비교적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배치했다. 아마도 이번은 이 정도지만 다음 해부터는 부산영화제의 한국영화 부문이 외관으로부터 크게 달라질 공산이 크다. 이 부분에 대해 이상용도 말투를 한번 꺾고 간다. 그래야 할 것이다.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로 이상용이 된 것부터 파격이라면 파격이었으니까 그렇게 겉모습부터라도 확 바뀌어야 할 것이다. 부산영화제가 한국영화 담당자로 30대 중반을 선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1대는 이용관 현 집행위원장이, 2대는 허문영 현 부산시네마테크 원장이 맡았었다. 두 사람은 각각 50대와 40대였다. 그만큼 부산영화제 스스로 앞으로는 영화제가 달라진 영화세대를 대변하겠다는 의지를 선보인 셈이다. 비평가로서 이상용의 멘토는 재미있게도, 기성 비평가들이 아니다. 누구를 모델로 했냐는 질문에 뭐 그런 질문을 하느냐며 투덜투덜. 그래도 이용관, 정성일, 김영진 같은 이름이 거론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로부터는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진정한 멘토는 문학평론가였던 故 김현 씨다. 어릴 적 문학 소년이었던 이상용은 우연히 집어 든 김현 평론집을 보고 나서 "시보다 평론이 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영화평론가가 된 것은 문학평론가 김현의 역할이 컸다. 그리고 그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는데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평론의 세계는 영화와 책을 이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영화가 끊임없이 교류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평론가로서 그가 품고있는 욕심이다. "인문학에 대한 인식과 욕망, 그 지식의 축적이 충분치 않고서는 올바른 영화평론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갑자기 다치바나 다카시가 떠오른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현대 지식인 사회의 진짜 문제는, 모두들 스페셜리스트만 키우는데 급급해 정작 세상의 운행 법칙을 꿰뚫을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는 다 죽고 말았다"고 말했다. 다카시는 그래서 그런 책을 썼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아마도 이상용은 나중에 이런 책을 쓸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평론가들은 다 바보가 되었는가". 과연 그가 그런 글을 쓸지 안 쓸지는 모르겠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와 특히 한국영화 부문을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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