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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구경도 못 하고 갇혀 지낸 평생, 상상이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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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구경도 못 하고 갇혀 지낸 평생, 상상이 되십니까?"

[현장] 강변북로 점거 농성 벌인 장애인권 활동가들

지난 5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KINTEX)에서 열린 제7회 세계 장애인 대회의 첫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참여정부는 지난 4년간 장애인 복지예산을 두 배 이상 늘렸으며 장애수당과 수급 대상을 크게 확대했다"고 축사를 했다. 한 총리는 "앞으로도 장애인 인권보장과 사회참여 확대를 위해 더욱 힘써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날 경남 김해에서는 여섯살 난 정신지체 장애인 아들의 병원비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렸던 한 남성이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전세계 71개국에서 2230여 명의 장애인이 참석해 8일까지 나흘간 개최되는 세계 장애인 대회. 정부는 "장애인의 인권향상을 위한 국제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 장애인들에게는 '국제협력'은 커녕 '정부와의 협력'조차도 너무 먼 얘기로 보인다. 장애인단체들은 지난 7월부터 매주 수요일 광화문 횡단보도에서 시위를 하며 변재진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어떤 회신도 받지 못했다.

지난 7일 오후 50여 명의 장애인과 장애인 학부모가 서울 강변북로 차로를 점거하고 3시간 가량 농성을 벌인 이유는 이처럼 차마 그냥 보고 넘길 수 없는 정부의 '기만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이들은 세계장애인대회 기간에 맞춰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97개 전국 장애·인권단체 및 300여 명의 개인이 참여해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민중행동대회 참석자들이었다.

"차라리 비난이 무관심보다 낫다"
▲ 7일 강변북로 마포대교 하단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들 ⓒ프레시안

"당신들이 하루 겪는 고통을 우리는 평생동안 겪고 있다고들 얘기한다. 나는 차라리 비난이 무관심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욕하고 있는 저 사람들도 오늘 이 일로 인해 이 나라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을 한번쯤 알거다. 불법적인 일이라고 해도 이렇게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인천장애인교육권연대 회원 김태완 씨는 점거 농성으로 꽉 막혀버린 도로에서 운전자들이 울려대는 경적으로 귀가 먹먹한 가운데 이렇게 말했다.

금요일 오후 5시. 그렇지 않아도 정체가 심할 일산행 강변북로였다. 몇몇 운전자들은 차에서 내려 시위대를 향해 삿대질과 함께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쌍둥이를 둔 엄마다. 둘 다 정신지체 장애인이다. 정부에서는 명목상 장애인복지 정책을 편다고 하지만 그 정책은 저소득층을 상대로 한 것이지 장애인에게 돌아오는 정책이 아니다.

또 이 나라 장애인은 언제나 법과 예산 대상에서 우선적으로 제외된다. 비장애인들은 의무교육을 받지만 장애인들은 의무교육도 유예된다. 이런 한국의 현실에서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나이를 먹으면 시설(복지원 등 장애인 사회복지시설)에 가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비참한 현실이다."

이번 민중대회에서 장애인들이 내건 '생존권 보장 요구안'은 일곱 가지다. △장애인연금 도입 △활동보조권리 보장 △탈시설권리 보장 △장애인주거권 보장 △지적장애인,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 △시설비리 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 제정 △장애인복지예산 확충 등이 그것이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사안들이지만 하나하나 해마다 장애인들이 단식으로, 점거농성으로, 행진으로 요구해왔던 것들이었다.

김태완 씨는 "언제나 법에서 제외되고 평범하게 살아갈 권리가 없는 장애인에게 이런 요구들은 말그대로 '생존권'적인 차원"이라며 "우리에게 '잘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가만 있으면 누가 해줍니까?"

"우리 아이들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 놓고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가만히 있으면 누가 해줍니까?"

농성장에 투입된 경찰병력이 점차 포위망을 좁히자 구복순 씨는 절절하게 외쳤다. 민중대회 참석을 위해 대구에서 왔다는 그는 3박4일간 아들을 혼자 두거나 누구에게 맡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아들과 함께 왔다고 했다.

그는 "중증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아예 오지 못했다"며 발달장애를 가진 그의 아들은 그나마 함께 올 수 있는 편이었다고 전했다. 값비싼 교육, 의료비 부담을 개선할 수 있는 '지적장애, 발달장애인지원법'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주장하는 것도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물론 죄송하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런 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장애아인 우리 자식들과 24시간을 지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런 현실을 부모가 나서기 이전에 정부가 파악해서 제도를 만들어야 선진국 아닌가?"

"휴대폰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채 평생을 보내는 장애인, 생각해 봤나"

"시설 안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는 것이 이해됐다. 그렇지만 세상 밖으로 나와보니 그 생활이 얼마나 '개 같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 개보다도 못한 삶이었다. 시설에서는 장애인 한 사람당 정부에서 지급되는 보조금이 상당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시설을 나오는 것을 애써 막는다. 장애인들은 심지어 자기로 인해 시설에 지급되는 보조금이 얼마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 ⓒ프레시안


오후 7시가 지나 어둑어둑해진 도로 위에서 농성을 벌이던 30여 명의 장애인들은 돌아가면서 발언을 시작했다.

이미 학부모들은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먼저 경찰에 연행된 뒤였다.

활동보조인마저 연행된 뒤 이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도로 위에 앉아 각자 발언을 했다.

장애인들의 입학을 거부한 학교, 그래서 들어간 장애인 사회복지시설.

흔히 '시설'이라 줄여 부르는 그곳에서의 생활에 관한 대목에서 구호를 외치던 이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심지어 어떤 시설은 휴대폰의 반입조차 통제된다. 시설에서의 삶은 답답하고 힘들지만, 시설은 그들을 잘 놓아주지 않는다.

"당신들이 쓰는 휴대폰, 그 휴대폰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채 평생 시설에 갇혀 사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알고나 있습니까? 정부는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세계 장애인들을 한국으로 실어와서 장애인대회를 치르고 있습니다. 며칠 전 어떤 부모는 장애인으로 태어난 당신 자식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몰라서 죽이고 있습니다. 그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보셨습니까?"

한 총리의 축사와 장애인들의 절규 사이

방송차량을 통해 "도로를 점거하고 교통을 방해하고 있는 시위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고 경고했던 경찰은 비장애인인 학부모, 활동보조인, 휠체어를 타지 않아 '비장애인처럼 보였던' 시각장애인까지 연행했지만 나머지 시위 참가자들은 가만히 놔뒀다.

'불법시위자'들에 대해 평소같지 않게 온화한 경찰의 태도는 같은 시간 고양시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장애인 대회'와도 무관치 않아 보였다.

오후 8시, 장애인들은 연행자들의 전원 석방을 약속받고 3시간 가량의 농성을 풀었다. 인도까지 '폴리스라인'을 만들고 휠체어를 손수 밀어주는 경찰의 모습은 바로 몇 시간전 구호를 외치며 포위망을 좁히며 '기자들은 다칠지 모르니 시위대열에서 나가라'고 경고하던 모습과 극적인 대비를 이뤘다. 그건 마치 고양 킨텍스의 축사와 장애인들의 외침간의 격차와도 비슷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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