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어찌된 일일까. 여름시즌 끝물, 극장가가 새로운 영화를 쏟아붓고 있되 그 양상이 지나치다 못해 처절할 정도다. 이번 주에 개봉되는 영화는 무려 13편. 블록버스터급 영화에 밀려 이리저리 개봉일이 잡지못한 영화들이라 하더라도 그 면면을 보면 결코 그렇게 홀대받을 작품들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개봉영화 13편 가운데 외화는 10편, 한국영화는 3편이다. 외화 가운데서도 할리우드 화제작이 7편에 이른다. 샤이어 라보트 주연의 <디스터비아>를 비롯해 스콧 힉스 감독의 <사랑의 레시피>, 케빈 코스트너가 연쇄살인범으로 나오는 <미스터 브룩스>, 존 트라볼타 등 중년배우들의 한판 코믹 쇼를 벌이는 <거친 녀석들>, 브루스 윌리스, 할 베리 주연의 <퍼펙트 스트레인저>, FBI내 제5열의 실제 사건을 그린 <브리치> 등 극장가가 정상적으로 운행되는 한 한꺼번에 몰릴 영화들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영화들이 8월 마지막주를 시점으로 쏟아져 나온 데는 이들 영화를 수입한 영화사들의 '울며 겨자먹기식' 배급때문. 8월 한달동안은 <화려한 휴가>와 <디워>의 스크린 독점 공세에 기를 못펴다가 9월로 넘어가 봤자 한가위 시즌이 다가와 역시 한국영화들의 대대적인 스크린 확보 경쟁에서 밀릴 공산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극장 개봉을 성사시키지 못하느니 잠깐이라도 간판을 걸어 이후 DVD 등 부가판권시장이라도 기대하겠다는 심정들이다.하지만 불법다운로드 등으로 인해 국내 부가판권시장은 거의 파괴된 현 시점에서 이들 영화가 일정한 수익을 기대하기란 난망한 상황이다.
. 결국 자기 살 깎아먹기로 귀결 외화들의 개봉 출혈 경쟁은 언뜻보면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작품들 중 상당수가 할리우드 직배사 작품이 아닌, 국내 영화사의 수입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이들 영화의 '파산'과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내 영화산업의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데는 한국영화 두편, 곧 <화려한 휴가>와 <디워>의 지나친 스크린독점, 시장독점이 결과한 측면이 강하다. 외형적으로는 두 영화로 인해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80%대까지 치솟았지만 그것이 결코 시장내에서 순기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두편의 영화가 성공한 것이 시장의 분배구조를 악화시킴으로써 산업구조 전체를 다시 한번 크게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영화계 내 많은 전문가들은 국내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작금의 시장독점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소하지 않고서는 영화산업의 위기가 극복될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국내 영화였던 <기담><리턴><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등은 평단과 관객들의 이어진 호평에도 불구하고 제값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흥행으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비운을 맛봤다. <리턴>의 감독인 이규만 감독도 SBS라디오의 한 시사프로와의 인터뷰에서 "소수 영화의 시장 독점은 결국 스크린쿼터를 무의미하게 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