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 ⓒ프레시안무비 | |
하반기 라인업도 그리 나쁘지 않다. 이명세, 허진호, 곽재용, 곽경택 등 나름, 저력있는 감독들의 신작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이들 감독들은 한때 크게 성공했다가 한때 크게 망한 적이 있는, 그래서 단맛보다는 쓴맛을 '좀더 아는' 인물들이다. 이런 감독들은 이제 더 이상 실패하지 않는다. 하반기 영화들에 믿음이 가는 게 그때문이라면 별 희한하고 근거없는 얘기일 뿐이라고 면박만 당하게 될까. 한국영화가 지난 1년간의 고통을 딛고 조금씩 소생하는 듯한 신호는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건 꼭 최근 대박을 터뜨린 <화려한 휴가>나 <디워>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이 두 영화 때문에 정말 많이 받은 질문 가운데 하나가 '이 두편의 영화의 성공으로 한국영화계가 소생하게 되겠느냐'는 말같지도 않은 것이었다. 좀 생각들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한국영화계가 안좋았던 것은 오로지 흥행성적, 흥행타율이 안좋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영화계가 휘청휘청댔던 것은 말 그대로 '휘청휘청' 살았기 때문이다. 버는 돈보다 더 쓰고, 얼마를 쓸지도 모른 채 일단 일을 시작하고 보는, '주먹구구식' 사업운영 탓이었다. 이건 곧 영화 한편한편의 손익 문제가 아니라 영화산업 전체의 구조가 잘못돼 있었다는 의미다. 따라서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한국영화가 좋아질 일은 만무한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화려한 휴가>와 <디워> 두편이 잘된다고 한국영화가 잘될 거냐라니? 이 무슨 무지한 발상들인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프레시안무비 | |
오히려 청신호는 두편의 영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두편의 영화가 성공하는 시기와 맞물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를 중심으로 영화산업 전 분야의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또 합의하는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가협회는 배우협회,촬영감독협회,조명감독협회 등 거의 전 직능단체들과의 협상을 통해 비용 20%씩을 자진 삭감할 것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쉽게 말해서 지금까지 영화 한편 만드는데 평균 제작비가 50억원이 들었다면 앞으로는 40억원으로 낮출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비용구조가 낮아지면 흥행에 대한 부담이 낮아지고 그렇게 되면 작가들은 좀더 자유로운 입장에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창의력을 더 끌어 낼 수 있게 된다. 산업 내부의 구조를 합리화시키는 진정한 목적은 돈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들로 하여금 좀더 마음껏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한다는 데에 있다. 한국영화계가 요즘에서야 그걸 절실하게 깨달은 셈이 된다. 그러니 이제는 영화 한두편의 대박 성공에 벌떼처럼 몰려들어 흥분하지 않았으면 싶다. 이제는 정말 그런 시기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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