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군이 들끓는다고 한다. 외국 무장단체가 한국인을 잇따라 살해했는데, 한국 군이 언제까지 참아야 하느냐는 자괴감 때문이라고 한다. "속 끓는 한국군 '특전사 2000명 + 해병 1개 연대면…'"이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1일자 기사 내용이다.
<중앙일보>, 익명 관계자 인용해 "국군은 '탈레반 소탕 작전' 원한다"고 보도
김민석 <중앙일보> 군사전문기자는 이 기사에서 '군 일각', '군사 전문가', '군 관계자' 등의 발언을 인용해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주 지역 탈레반 소탕 작전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소개했다.
이어 김 기자는 같은 기사에서 "전문가들은 특전사 2개 여단(2000명)과 해병 1개 연대, 보병 및 지원 병력 등으로 구성된 작은 사단급(1만 명 이하)이면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적었다.
그리고 "한국 군은 전 세계에서 각개(개별)전투를 가장 잘하는 군대"라는 군 고위 관계자의 자평(自評)을 소개한 뒤, "(한국군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빨치산. 공비 토벌에다 베트남전 참전 경험 등을 갖췄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또 "군에 대한 평시작전통제권을 가진 김관진 합참의장은 요즘 '(사태 해결에 역할을 할 수 없어) 속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는 내용도 곁들였다.
이런 심경 토로 역시 김민석 기자가 직접 들은 것은 아니다. 김관진 합참의장은 익명의 참모들에게 이렇게 말했고, 그걸 다시 익명의 군 관계자가 김 기자에게 전했다.
국방부 공식 입장 "평화적 해결이 원칙"…"국군 해외 파병은 국회 동의 얻어야"
하지만 합참의장의 참모에서 '군 관계자'를 거쳐 군사전문기자에게 전해진 군 수뇌부의 답답한 심경은 적어도 국방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르다.
국방부 김형기 홍보관리관은 이날 '한국군 특수부대를 동원한 인질구출 작전 주장'에 대해 "그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며 "정부는 사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조기에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입장"이라고 못박았다.
이어 그는 "국군은 헌법에 명시한 대로 부여받은 사명을 다하고 있다"며 국군의 해외 파병 때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헌법 제60조의 정신을 상기해 달라고 말했다.
"군사적 보복은 더 큰 피를 부른다"
이처럼 군의 공식 입장과도 다른 군 수뇌부의 '심경'을 전한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이 기사는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은 독자들이 읽은 '소나기 클릭 기사'로 분류돼 있다. 그리고 순식간에 15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
독자 이원희 씨는 이 기사에 단 댓글에서 "황당한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어 그는 "인질은 인질대로 죽이고, 멀쩡한 젊은 군인들조차 호구로 집어넣자는 말인가"라며 "동서도 분별 못하는 곳에서 아무리 용맹한 군인들이라도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그리고 그는 "말도 서로 통하지 않는 아프간 정부군과의 합동작전이 가능하겠느냐"고 되물으며, "세상의 웃음거리 되는 짓 하지 말고 협상이나 성의껏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독자 박시연 씨는 "탈레반은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포함한 초강대국 최정예부대의 공격을 30년 넘도록 물리쳐 왔다"며 파병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했다.
이밖에도 한국군에게 낯선 아프간 지형과 문화, 기후 등을 이유로 군사 행동은 성공할 수 없다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아프간에 대한 섣부른 군사 행동이 더 큰 보복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을 한 경우도 많았다. "피로 피를 씻는 악순환만 강화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독자 김준수 씨는 "일부 군인들이 감정적으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섣부른 군사 행동은 국제 테러 세력이 한국을 표적으로 삼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TV에서나 본 차량자살테러가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다면 그건 어떻게 감당하려고"라고 되물었다.
"<조선>도 '군사작전은 파국 부른다'고 했는데…"
다른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번 아프간 인질 사태에 대해 현실적인 해법을 도출하기보다, 대중의 감정에 영합하면서 군사적 폭력을 선동하는 기사라는 비판도 잇따랐다.
한편 이 기사는 또 다른 보수 언론인 <조선일보>의 이날 사설과도 대조를 이뤄 눈길을 끌었다. <조선일보>는 1일자 사설에서 "지푸라기만한 희망의 끈이 남아 있더라도 파국을 부를 수 있는 군사작전은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김민석 기자의 기사가 실린 포털 사이트에는 "<조선일보>보다 더 심한 우익 선동 기사"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인질들이 여러 곳에 분산 수용돼 있고, 현지 지형이 험준한 산악이란 사실은 기습적인 군사작전의 성공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들고 있다.…군사작전은 피해야 한다"는 <조선일보> 1일자 사설을 인용한 의견이다.
보수 언론의 "군사작전 '군불 때기'"
그러나 누리꾼들의 이런 반응은 온전히 사실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는 1일자 사설에서 "협상은 계속해야 한다"며 "군사행동은 피해야 한다.….유례가 드문 대량 인질 사태를 당한 지금은 인도적 관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사회가 보다 유연한 입장을 보여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사설 후반부의 "협상을 계속하더라도 이제 그 기조는 바꿔나갈 때가 됐다"는 문장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앞서와 다르다. 이 대목에서 사설은 "이 집단(탈레반)에 최소한의 이성이나 관용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해졌다"며 "이제 탈레반을 상대로 우리 정부와 언론, 국민이 어떤 자세를 보여야 하는지를 재검토해야 할 단계에 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사설은 "탈레반이 다시 우리 국민을 살해하면 대한민국이란 국가 자체가 피할 수 없는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그때에는 정부와 국민 모두가 비상한 각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그런데 "협상은 계속해야 한다"인 입장과 "(협상 상대방에 대해) 최소한의 이성이나 관용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해졌다"는 판단은 같은 글에서 양립하기에 어색하다. 또 탈레반에 대해 어떤 자세를 보일지를 재검토하자거나 정부와 국민이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협상은 계속해야한다는 전제와 함께 실리면서 뜻이 모호해졌다.
같은 날, 이 사설을 소개한 <미디어 오늘> 기사 제목은 이런 모호함에 대한 간결한 해석을 담고 있다. "조선·중앙일보, 군사작전 '군불때기'"라는 제목이다.
<조선일보> 역시 <중앙일보> 기사와 수위만 다를 뿐, 군사행동을 용인하는 결론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