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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뚫는 것과 문신, 무엇이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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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귀 뚫는 것과 문신, 무엇이 다를까요?"

[인터뷰] '문신 합법화' 주장 타투이스트 이랑 씨

지난 2월 보건복지부가 의료법 전면개정안을 내놓자 의료계는 한바탕 폭풍에 휩싸였다. 의사협회는 총파업을 벌이며 결사반대했고, 결국 개정안은 일부 수정된 채 지난 4월부터 시행됐다.

당시 의사들이 강력히 반대했던 조항 중 하나가 '유사의료행위'였다. 문신(tattoo, 타투), 안마, 침구, 피어싱, 수지침 등 이미 보편화됐지만 관련 규정이 없어 '불법'으로 간주되는 서비스들을 '유사의료행위'로 묶어 관리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한다"는 의료법 애초 취지와 어긋난다며 반대했고 복지부는 이를 받아들여 조항을 삭제했다.

곧이어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문신 시술을 의료행위로 인정한 법원의 판결이 합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2003년 문신을 새겨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타투이스트(tattooist, 문신 시술사) 김건원 씨가 "문신을 예술행위로 인정해야 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헌재가 사실상 의료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타투이스트 이랑 씨는 그저 허탈했다고 한다. 그가 지난 6월 서울 대학로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타투 시술 퍼포먼스를 벌이고, 이후 아예 짐을 싸 전국 도보 행진을 벌이게 된 계기도 이제 달리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13일, 20여 일간의 도보 행진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한 이랑 씨를 서울 마포구 홍익대 근처에 위치한 그의 타투 숍에서 만났다.

"몸으로 표현하는 직업, 주장도 몸으로 전한다"
▲ 약 20일간 전국 도보 행진을 진행한 타투이스트들 ⓒ이랑

6년 전부터 타투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랑 씨가 문신 합법화 운동(정확히 말하면 의료인이 아니어도 문신 시술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운동)을 결심하게 된 때는 1년 전.

동료들의 가족이 "우리 아들이, 내 남편이 언제 잡혀갈까"라며 불안에 떠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또 일부 손님들은 문신 시술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악용해 수백만 원의 보상금을 뜯어내기도 했다.

"장애인들이 보행권 문제를 해결하려 쇠사슬로 자기 몸을 묶어가며 시위를 하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왜 우리는 신세 한탄만 할까? 불만이 있으면 당당하게 제기하자고 생각했다. 예전에도 몇 번 그런 항의를 했지만 용두사미로 끝났다. 운동하다 잡혀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희생 없이 바뀔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심한 이랑 씨는 혼자 계획을 세우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문화연대에 연락했고 함께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달 22일, 이랑 씨는 대학로에서 '아주 타당한 자유, 나는 문신 할 권리를 갖는다'라는 이름으로 문신 시술 퍼포먼스를 벌였고, 시술 도중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

"나 혼자 잡혀 들어갔으면 그렇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문화연대 활동가들과 인권변호사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경찰도 쉽게 놓아주더라."

제법 '볼 만한 거리'였던 당시 행사는 상당수 언론에서 보도됐다. 그러나 이랑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흘 뒤인 26일, 그는 곧바로 문신의 합법화를 요구하며 전국 행진에 나섰다.

"혹자들은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하냐, 언론을 이용해서 장사하려는 게 아니냐고들 했다. 그러나 장사가 목적이었다면 퍼포먼스로도 충분했을 게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국토 행진을 생각했던 건 우리(타투이스트)가 단체나 후원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업도 몸으로 표현하는 일이지 않나.

지난 4월, 헌재는 문신이 의료 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법원이나 보건복지부, 국회에서 봤을 때 문신은 그야말로 소수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다. 그래서 별 관심이 없다. 우리의 답답함을 아무리 호소를 해도 그들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하게 됐다."


당신이 문신을 하든 안 하든, 싫든 좋든
▲ 지난달 22일 서울 대학로에서 문신 시술 퍼포먼스를 벌이던 이랑 씨는 경찰에 연행됐다. ⓒ이랑

전국 행진에 동참한 이는 총 6명. 이랑 씨를 포함해 '숍'을 운영하는 타투이스트들도 있었고, 타투이스트 지망생도 있었다.

제주도에서 출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들은 부산행 배에서 선상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후 서울까지 걸어 올라오는 20일 동안 이들은 장마도 만났고 사람도 만났다.

"문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좋아해달라고 하는 건 힘들다. 몇 퍼센트도 안 되는 사람들의 문화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적인 현상이라는 것만큼은 인정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당신이 문신을 하든 안 하든, 혐오스럽게 생각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 단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문화 현상의 하나라는 건 인정해달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의사만 문신 시술할 수 있는 나라? 한국 외엔 없다

도보 행진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이들에게 현실을 더욱 직시하게 만들었다. 찜질방에서 퇴짜를 맞거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들이 애들을 데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랑 씨는 그들을 결코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 사람들의 시각이니까. 싸울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시각도 수용해야 된다고 본다. 우리가 바라는 건 정부가 객관적으로 판단을 하되 모순된 점만 바꿔달라는 것이다. 아주 옛날에 만든 법으로 의사만 할 수 있다고 규정해버리니까 문제가 되는 거다. 지금은 2007년인데…."

그의 말마따나 문신을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의사만 할 수 있게' 못 박아 놓은 현행 법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측면이 크다. 타투이스트, 즉 문신 시술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은 현재 어림잡아도 1000여 명이 넘는다. 시술을 받은 이들도 점차 늘어나 최소한 연간 5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의사만 할 수 있다? 10년동안 공부해서 의사가 된 사람들 가운데 문신을 하려는 이가 얼마나 될까? 찾아오는 손님들은 불법인지조차 모른다. 시술하기 전 설명하면 "말도 안 된다, 어이없다"고 한다."

문신 시술에 대한 규제를 주장하는 의사들은 '위생' 문제를 주로 지적한다. 시술 시 사용하는 바늘로 인한 감염의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것. 그러나 문신을 '의료 행위'로 간주하고 비의료인의 문신 행위를 금지하는 국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현대 문신의 본거지로 알려진 영국, 성인의 13%가 문신을 했다는 미국,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문신은 보편적으로 즐기는 문화다.

문신 규제에 반대하는 이들은 위생 교육 체계만 마련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한다.

▲ 타투이스트 이랑 ⓒ프레시안

"문신하면 조폭이다?"


미국의 경우 민간단체에서 위생 교육을 실시한 뒤 이 과정을 이수한 이들에게 자격증을 부여하고, 시술도구 판매도 엄격하게 제한하는 시스템을 통해 이런 문제를 보완하고 있다.

한국에서 문신에 대한 규제를 존속시키는 실질적인 이유는 문신을 금기시 하는 사회적 분위기다.

외국의 경우 문신은 오랜 역사를 지닌 장식, 즉 귀를 뚫고 하는 '귀걸이'처럼 장신구나 예술행위로 인식한다. 이랑 씨의 표현에 따르면 '밥을 먹고 이발하는 것'과 같이 외국에서는 법으로 문신을 규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신체발부 수지부모'(母),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신의 몸을 훼손하는 것은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유교 전통적인 인식이 강하다. 또 문신을 한 이들을 '폭력적인 사람'으로 인식하고 문신이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이들을 단속하는 것도 사회적 분위기 형성에 한몫하고 있다.

"유신 시절에 문신에 대한 규제가 심했다. 문신이 있으면 삼청교육대로 잡혀갔고, 사회적으로 '문신 깡패'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경찰들은 마치 범인들의 무기를 사진으로 찍어 증거로 남기는 것처럼 문신도 사진으로 찍는다. 인식이 박힌 거다.

그러다보니 헌법소원을 내도 기각되고, 판결은 변함이 없다. 의사나 판사들도 아무런 사전조사나 지식 없이, '바늘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문신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예전 사람들은 문신을 혐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다르다. 인식이 바뀌면 법도 따라가야 되지 않나. 법만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바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타투이스트들은 불안하고, 소비자들은 피해를 본다

'불법'의 탈을 쓰고 영업을 하는 타투이스트들. 그들의 고충은 앞서 언급했듯 손님이든, 동종업자이든 간에 언제 누가 신고할지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참 우습다. 포털 사이트에서 '타투'나 '문신'이라고 검색하면 수십 개의 업체가 뜬다. 그렇지만 경찰도 '집중단속기간에 걸리지만 않고 하라'며 이들을 단속하지 않는다. 물론 비위생적인 행위는 처벌받아야 한다. 그런데 법의 맹점을 악용해 수백만 원의 보상금을 요구하는 손님이 있다. 심지어 그렇게 돈을 받고도 신고하는 경우가 있다. 검사에게 가서 얘기하면 우리가 협박을 받은 사실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애초부터 불법인 문신을 안했으면 이런 일 없을 거라고 얘기한다. 정말 할 말이 없다."
▲ ⓒ프레시안

이랑 씨는 이 같은 문신의 음성화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라고 강조했다. 타투이스트들이 간판을 못 달고, 단독주택, 원룸 등에서 음성적으로 시술을 하기 때문에 홍보만 잘 하면 실력이 없는 '야메'여도 모른 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여러모로 불합리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나선 이랑 씨는 당분간 시술은 중단한 채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합법화 운동에만 주력할 생각이다. 운동을 이용해서 장사를 한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합법화 운동 계획은 다채로웠다.

"우선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그 와중에 게릴라 퍼포먼스 식으로 중간 중간 행사를 벌일 예정이다. 촛불집회도 한번 하고 싶다. 몰랐었는데 촛불의 상징성이 대단한 것이더라. 최소한 몇 백 명만 모여도 좋을 것 같다. 지금 봐서는 그다지 나올 것 같진 않지만.

외국처럼 '타투 컨벤션'도 한 번 해보고 싶다. 수백 명이 모여서 문신을 집단으로 하는 거다. 하나의 축제처럼. 지금까지 문신은 작은 가게에서 일대일로 해 왔다. 하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보여주자는 거다. 그렇게 계속 보여주고 싶다."

타투이스트들끼리의 연대도 구상 중이다. 이랑 씨에 따르면 음성적으로 영업을 하다 보니 서로 견제하는 관계가 돼 버린다고 한다. 수강생들도 독립해 나가면 선생님과 연락이 두절되는 현실. 그래서 정식으로 협회도 발족하고 싶은 것이 이랑 씨의 생각이다.

"'예술 행위'인 문신, 한국에선 인권 문제가 됐다"

지난 13일, 이랑 씨는 문화연대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진정서에는 현행법이 행복 추구권과 직업 선택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법원과 국회에서 모두 외면 받은 '예술 행위'로서의 문신은 이제 인권의 문제가 돼 버렸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다시 말하지만 분명 문신을 하는 사람보다 안 하는 사람이 많다. 인정만 해달라는 거다. 누군가에겐 직업이고 누군가에겐 하고 싶은 예술행위니까. 문신쟁이라 욕을 해도 좋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문화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지고 있지 않나.

퍼포먼스를 하고 도보행진을 했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이 '난 문신 싫어하지만 저 사람들도 참 억울하긴 억울한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제발' 봐달라고 하는 거다. 서류를 만지는 공무원들, 최소한 논의라도 해달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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