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집회는 바뀌는데 경찰은 그대로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집회는 바뀌는데 경찰은 그대로네"

[87년 20년, 집회와 시위④]2007년에 '집회의 자유'란?

인터넷 검색창에서 '집회의 자유'를 치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언론·출판·결사의 자유와 함께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자유의 하나. 여러 사람이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한곳에 모이는 자유."

이렇게 놓고 보자면, 집회의 자유처럼 명쾌한 권리가 따로 없다. 아마 누구도 그 의의를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민주사회가 허용하는 여러 가지 자유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유'로 집회의 자유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문제가 다소 복잡해진다. 집회에 대한 이런 사전적 설명과는 별도로 집회의 자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합법이냐 불법이냐 그것이 문제'라고요?
▲ 집회를 둘러싼 사람들의 생각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것이 적어도 합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모든 집회를 불법으로 만드는 것은 누구일까?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한미FTA에 반대하는 거의 모든 집회는 경찰에 의해 '금지'돼 '불법'이 됐다. 사진은 지난해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총궐기대회 당시의 모습. ⓒ프레시안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생각은 집회의 자유를 얘기하더라도 그것이 적어도 법의 테두리 내에서 주장되고 행사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합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불법집회와 같은 일탈이 한국의 집회문화와 관련해 가장 문제가 된다는 주장이다. 집회의 자유가 갖는 정당성을 준법성을 기준삼아 판단하는 방식이다.

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원칙적인 입장이라면야, 구태여 긴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악법 중의 악법으로 국제사회의 지탄까지 받고 있는 현행 집시법을 내세우며 합법의 영역을 강조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닌가?

2004년 개악된 집시법은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경찰에게 과도하게 부여함으로써 사실상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제도로 기능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21조에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규정하면서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헌법은 집회의 개최와 참여는 주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달린 것이며, 다만 집회로 인한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찰이 교통정리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신고만 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집시법에 있는 여러 독소조항들을 사용해 사실상 집회를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FTA에 반대하는 거의 모든 집회가 금지되고, 톨게이트를 막고 비행기까지 연착륙시키면서 집회에 참여하려는 사람까지 연행해갔던 사례를 떠올려 보라.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한국의 집시법이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전한 것도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다. 집시법이 강제하는 현실이 이러할진대, 집회의 자유를 누리더라도 합법의 테두리에서 누려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얘기 아닐까?

집회문화는 바뀌는데 경찰만 그대로

또 한가지. 집회문화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 가운데는 폭력시위에 대한 말들도 많다. 이제는 '평화시위 문화'가 정착될 때가 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물론 자유롭고 평화로운 집회가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누구도 그 정당성에 대해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로 경찰과 정부가 주장하는 '평화시위 문화론'은 한국의 집회문화에 대해 왜곡된 정보를 심어주며, 집회에서 발생하곤 하는 여러 물리적 충돌의 책임이 대부분 경찰에게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그 실상이다.

평화시위 문화론이 정보의 왜곡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찰의 자체 발표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경찰발표에 따르면, 1997년 진행된 집회는 총 6179건이었는데, 이 중 664건이 불법 폭력집회였다고 한다. 그런데 2006년에는 진행된 집회는 총 7758건으로 추산되고 이중 불법폭력집회는 38건으로 전체의 0.5%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경찰의 발표만 보더라도 이미 불법폭력시위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 경찰 자체 발표에 따르더라도 이미 '불법폭력시위'는 현저하게 줄고 있다. 오히려 문제는 경찰의 폭력적인 대응이나 집회를 잠재적인 범죄로 보는 경찰의 인식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사진은 한미 FTA 반대 범국민운동본부의 기자회견을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아예 봉쇄하고 있는 모습. ⓒ프레시안

오히려 문제는 집회시위문화는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데 경찰의 폭력적인 대응이나 집회를 잠재적인 범죄로 보는 경찰의 인식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경찰은 지난 몇 년간 매 집회 때마다 집회참가자의 1.5배를 상회하는 대규모 경찰병력을 집회 장소에 배치해 왔다. 즉, 대규모 경력을 동원해 위력을 과시함으로써 집회시위를 관리하는 방식이 관행처럼 굳어진 것이다. 경찰의 이러한 대규모 병력 관여형 집회관리는 매우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집회참가자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대규모 경력배치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소한 충돌이 커다란 충돌로 발전하기 일쑤다.

많은 인권 이론가들은 집회와 시위가 폭력화되는 경우는 외부적인 도발이 없이는 거의 있기 어려운 일이며, 그 사회에서 집회의 자유가 존중되고 그것이 여론이나 국가정책에 반영될 가능성과 보장이 있다면 본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민중-소수자의 권리와 주장이 국가정책의 형성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직접 민주주의적 방도와 같이 소수자의 권리를 표현할 직접적인 수단이 없는 상황에다가, 민중-소수자가 자신의 견해를 표현할 유력한 수단인 집회의 자유마저 경찰권력에 의해 무지막지하게 봉쇄되는 억압적 상황이라면, 오히려 문제의 근원을 공론형성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여러 법제도의 문제와 경찰행정력의 작용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반문해본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 그로 인한 불편 수용하는 공동체가 되야

최근에 들어서는 집회의 자유를 제한해야 하는 근거로 '시민들의 행복추구권'도 거론되고 있다. 집회로 인한 교통체증이 시민들의 불편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자유와 행복추구권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집회의 자유라는 권리가 민주사회에서 갖는 가치와 의미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쉽사리 이야기를 전개하기 힘들다. 조금은 원론적이지만 집회의 자유가 현대사회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헌법 제 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다.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는 근대 국가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권리다. 교황과 군주의 절대적인 권력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를 강조하게 되면서, 이를 발현할 수단으로서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가 중요하게 대두된 것이다.

여기서 모든 주의와 주장이 언어의 형식을 빌려 표출되는 것이 언론출판의 자유라고 한다면, 그것을 집단적 행동을 통해 표출하는 것이 집회결사의 자유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는 체제에 항의할 수 있는 권리로서, 자유롭게 말하고 비판하며 그것을 문자로든 언어로든 아니면 집회와 시위의 방법으로 외부에 표명하고 공론을 형성시킬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공동체의 민주적 질서를 끊임없이 재구축하고, 인간이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다.

이처럼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는 동일한 터전에서 발생한 권리들이다. 그러나 각각의 권리들이 역사적으로 전개된 양상은 사뭇 달랐다. 언론출판의 자유는 처음부터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들, 즉 유산대중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성격이 강했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언론출판의 수단들인 매스미디어를 재산을 가진 소수가 독점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직접 누릴 수 있는 권리로서의 성격이 약화됐다.

반면 집회의 자유는 근대국가 성립 이후, 지배체제에 대한 무산대중의 항변으로서 의미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언론출판의 수단을 쉽사리 얻기 힘든 무산대중에게 집회·시위·행진과 같은 집단적 행동 형태는 이들이 갖고 있는 공동의 의사를 결집시키고 표명할 수 있는 수단으로 그 중요성이 강조돼 왔다.

집회 시위의 자유에 대해 헌법이 다른 기본권이나 사회적 이익에 대하여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집회의 자유는 국가라는 공동체로부터 배제당하기 쉬운 많은 대중에게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대의과정에서 누락되거나 간과되는 민중의 이해관계를 표출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회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는 것은, 집회의 자유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에 대해서도 그 사회공동체가 어느 정도 용인하고 감수해야 한다는 것 또한 의미할 수 밖에 없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