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4일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 기조를 대폭 수정한 '한반도 평화비전'을 발표했다. 한나라당의 새로운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평화비전'에는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경제협력 활성화, 남북 자유왕래, 북한 방송·신문 전면 수용, 북한 극빈층에 대한 무상 지원 등 기존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기조와 상치되는 파격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어 당 안팎 보수파의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된다.
"탈냉전 흐름에 현실적 대응력 부족"
정형근 최고위원은 이날 오후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국회의원 및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이를 보고하며 "한나라당은 대북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동북아시아의 탈냉전 흐름을 일부 간과하는 등 현실적 대응력이 부족했다"며 "한반도 평화비전은 우리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전향적이고 유연한 대북 소통정책"이라고 밝혔다.
우선 '한반도 평화비전'에 따르면 비핵평화체제 정착에 필요할 경우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를 재가동하며, 남·북·미·중 3자간 종전선언 수용을 적극 검토키로 했다. 또한 △한반도 긴장 완화 시 평화협정 체결 추진 △비핵화 진전 여부에 따른 북미-북일 간 관계정상화 지원 △남북총리급 회담의 정례화 △군축 논의를 위한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마련 △21세기 한미 신안보동맹 선언 등을 추진키로 했다.
이어 경제공동체 추진을 위한 '북한종합 부흥계획'에 따르면 △서울과 평양에 경제협력관이 상주하는 경제대표부 설치 △연 3만 명 규모의 북한 산업연수생 도입 △서울~신의주 간 신(新)경의고속도로 건설 지원 △김포~순안 남북정기항공로 개설 △한강~예성강·임진강 뱃길 개설 △남북한 FTA 등을 추진키로 했다.
그동안 북한에 현금유입을 우려해 이들 사업 중단을 요구해 온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해서도 "남북한 공동 번영을 위해 계속 유지, 발전돼야 할 사업으로 입장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북한의 노후화된 발전설비 현대화 △대북송전의 제한적 추진 △경제특구(철원, 파주), 대북특구(속초, 거진항), 관광특구(금강산~설악산 연계) 등을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또한 △인적교류와 협력을 통한 남북자유왕래를 단계적으로 실현 △신문과 방송 등 언론시장 개방을 위한 북한 신문과 방송의 전면적 선(先) 수용 △개성공단, 금강산 일대의 인터넷 개통을 시작으로 남북간 유무선 통신 개통 등도 적극 고려하기로 했다.
인도적 협력지원 방안과 관련해선 3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북한 극빈계층에 대해 연간 15만 톤의 쌀을 무상지원하고, 임산부와 영유아, 어린이, 노인 등 취약계층에 대해선 분유, 식량, 영양제 등을 무상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인권공동체 실현방안에는 △분단 1세대 상호 고향방문 추진 △국군포로, 납북자 송환 시 현금 또는 현물을 제공하거나 비전향 장기수와 맞교환 △대북 지원과 연계한 정치범 수용소 해제 등을 제안했다.
대선 겨냥한 전략적 선택…실현 여부는 미지수
한나라당의 새 대북정책은 2.13 북핵 합의 이후 해빙무드로 돌아선 한반도 상황과 12월 대선을 전략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 대북정책 기조의 골간이던 상호주의의 대폭적인 폐기인 셈이다.
이는 강경일변도의 한나라당 대북정책이 전방위적으로 포위된 상황에서 한반도 상황에 조응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 기조가 변화하지 않으면 대선에서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특히 8월이나 9월 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한나라당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보자는 취지도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을 상생공영의 대상으로 규정해 북한 정권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한 대목 등은 북한에 대한 국가 인정을 거부해 온 당 보수진영과 마찰이 불가피한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정 최고위원은 "북한은 체제보장과 수교보장 등 두 가지를 원한다"며 "북한의 실체와 체제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대선주자들과의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아 실질적인 대선 공약에 반영될지도 미지수다. 정 최고위원은 "당의 정책을 보고 대선주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선택하도록 자유에 맡기되 당의 정책은 이렇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대선 후보가 배치된 주장을 해도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보수진영의 반발을 의식한 듯 정 최고위원은 "무원칙하고 유화적 대응으로 남북교류의 양적 확대만 됐고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위한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범여권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한나라당의 정책은 적극적인 대북개방 소통정책"이라고 차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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