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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의 <연금술사>, 우리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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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코엘료의 <연금술사>, 우리가 만든다

[핫피플] 보람영화사 이주익 대표의 원대한 꿈

파올로 코엘료의 인기소설 <연금술사>가 영화로 만들어진다. 재밌고 놀라운 것은 이 영화 제작이 우리 영화계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것. 보람영화사의 이주익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대표는 최근 이 영화의 제작을 위한 국제적 파이낸싱을 위해 뉴질랜드와 두바이를 다녀왔다. 아직 완전하게 영화제작 계획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연금술사>의 영화화가 기정사실화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연금술사>를 비롯, 한국영화의 해외합작 및 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주익 대표를 만나, 그의 근황을 정리했다. 한국영화의 현 위기는 해외시장의 개척에 있으며 그 첫 발자욱은 합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람영화사의 이주익 대표를 처음 만난 사람은 대체로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도무지 이 사람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겠다고들 한다. 그리고 이렇게 묻곤 한다. "이 사람 말 진짜야?"
이주익 대표

영화판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려진 것과는 달리 '오바밸류'된 인물들이 적지 않다. '센 척' 하지만 알고 보면 전혀 세지 않은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주익 대표는 완전히 그 반대의 경우다. 아닌 것 같은데 이 사람 알고 보면 상당히 '센'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앞으로, 그것도 향후 1~2년 사이의 빠른 시간 안에 위기의 한국영화를 구할 구원투수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주익 사장에 대해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하면 좋을까. 우리가 처음 술을 먹었을 때의 얘기 같은 것? 거나하게 취한 그가 술상을 거둬 치우고 한시를 한수 써준 적이 있다. 그는 한자쓰기가 엄청 달필인데 품안에서 굴러다니던 얇은 사이펜으로 한달음에 이렇게 휘갈겼다. "주봉지기천배소 화불투기반구다(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과는 천배의 잔이 모자라고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반배의 잔이 넘친다. 캬. 나는 아직도 술잔 자국이 덕지덕지 남아있는 이 한시 작품아닌 작품을 사무실 책상 유리 밑에 깔아놓고 산다. 날자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수년전 그날, 이주익 사장과의 술자리를 천배의 잔이 모자랐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 그는 뉴질랜드를 거쳐 菅牡肩?떠나기 전전날 만나 술을 마셨을 때도 한시 한자락을 휘리릭 써주고 떠났다. "명리유시종수유 명리무시막강구 命里有時終須有 命里無時莫强求) 운명속에 그렇게 있다고 할 때는 끝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지만 운명에 없다고 할 때는 억지로 구하지 말라)" 그가 이번에 뉴질랜드와 두바이를 가는 이유는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다. 미국의 유명 프로듀서인 배리 오스본과 손을 잡고 만들 이 영화에 그는 숀 코넬리를 주연으로 캐스팅할 예정이다. 특히 두바이에 가는 이유는 이주익 사장으로서도 처음으로 중동 자본을 투자받기 위해서다. <연금술사>의 배경 중 하나가 이쪽 지역이라는 것이 꽤나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자,자, 잠깐만. 얘기가 너무 앞서 나갔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맨 앞에 얘기했듯이 또 그런 얘기가 나오기 십상이다. 아니 뭐라고? 중동 자본을 어쩌고 해서, 숀 코넬리가 어쩌고, 배리 오스본과 손을 잡네 마네, 코엘료 작품을 영화로 만든다고? 당신 사기치는 거 아냐? 그런 말들이 나올 만한 것은 이 사람 하는 일, 하는 얘기가 너무 커서 쉽게 믿어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정, 우리 수준으로 되지 않는 일, 황당한 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주익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조금 멀리에서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일단 그의 전직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백그라운드는 과연 무엇일까. 때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당시 한국사회는 사회민주화가 완성되지 않아 여전히 아수라장의 상태였는데 갑자기 터진 황당한 사건이 '한겨레 신문-이영희 교수의 방북취재계획 사건'이었다. 단지 방북취재를 계획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모두들 국가보안법의 동앗줄에 묶여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또 구속됐는데 이때 관련 한겨레 기자가 바로 이주익 기자였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기자를 그만두게 된다. 이후 미국을 거쳐 일본과 대만에서의 그의 활동은 상세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만 이 기간동안 그는 대만국립대학을 다녔고 일본에서는 좌파 학자로 유명한 와다 하루키에게 사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실제로 무려 최소한 3개 국어가 매우 능통해서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가 완벽한 네이티브 수준이다. 혹여나 부산영화제 파라다이스 호텔 가든 파티 같은 곳에서 이리저리 손을 잡아 끌고 다니며 외국 영화관계자들을 소개해 줄 때는 진땀을 빼게 된다. 그는 중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미국인이든 유럽인이든 전혀 지장이 없지만 막상 마주서서 인사 몇마디 이상을 해내야 하는 사람들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외국어 솜씨(아마도 영화판에서 3~4개 국어를 우리말처럼 하는 사람은 딱 두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주익 사장이 그 한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쇼박스 상무였다가 최근 인하우스 제작사인 모션스101 대표로 자리를 옮긴 정태성 사장이 또 한사람일 것이다)를 가진 만큼 이주익 사장에게는 세계 영화계 내에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매트릭스>와 <반지의 제왕> 등을 제작한 미국의 프로듀서 배리 오스본이 그 한사람이고, 서극 감독의 부인으로 <영웅본색>에서부터 <동방불패> 그리고 최근의 <무간도>까지를 만든, 홍콩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제작자자인 스난성이 또 한사람이요, <스모크><크라잉 게임><중앙역> 등을 만든 일본의 전설의 제작자 이세키 사토루가 또 다른 한 사람이다. 자, 어떤가. 이제 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2~3년 전부터 기획돼 만들어진 한국-중국(홍콩,대만)-일본을 잇는 합작영화들, 그러니까 <칠검>과 <묵공>의 제작은 이런 인물들의 배경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비록 이들 영화가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제작자본을 동북아권 전체에서 펀딩하고 시장을 넓힌 만큼 새로운 아시아형 영화제작의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았다. 이들 영화를 계기로 한중일 삼국은 각각의 영화산업을 좀더 큰 파이로 키워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 됐다. 이주익 사장이 당초, 박중훈-현빈을 잇는 매니지먼트 사업을 계기로 이 두 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워 제작한 <투 가이즈>나 <백만장자의 첫사랑> 등은 비록 크게 히트를 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영화계에서 서서히 세력을 확장하고 파워를 넓혀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렇게 국내에서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해외의 막강한 인맥때문이다. 물론 <인정사정볼 것 없다>가 너무 좋은 영화였기 때문이기는 했지만, 박중훈이 결국 조너던 드미 감독과 연결돼 <찰리의 진실>을 찍고 미국에 진출할 수 있었던 데는, 그리고 최근에 뉴욕에서 자신의 개인 회고전까지 열 수 있었던 데는, 이주익 사장의 막전막후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주익 사장은 다시 조너던 드미-박중훈과 함께 <비빔밥>이란 영화를 준비중이다.
A3펀드

얼마 전 이주익 사장은 또 한번 '대형 사고'에 배후 역할을 했는데, 바로 1억 달러(1,000억원) 규모의 아시아영화펀드를 조성한 것이다. 이름하여 'A3펀드'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5월 칸영화제 현장에서 '엔토리노'라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강태우 대표와 아시아 3국의 프로듀서가 만나 이에 관한 공동사업 추진계약(MOU)을 체결했는데 이때 참여한 3인의 감독이 이주익-스난성-이세키 사토루다. 앞으로 이 3인의 관계는 아시아영화가 뭔가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내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 축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미 그렇게 돼있는 상태다. 이런저런 상황을 알고나서부터 이주익 사장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진행될 때가 많다. "<만추> 어떻게 생각하냐?" "<만추>요? 옛날 이만희 감독이 만든 그 <만추>말에요?" "그렇지 그 영화. 그거 좋잖아. 근데 그거를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배경으로 해서 찍는 거야?" "호오 그거 나쁘지 않네요? 배우는 한국배우로 하구요?" "적어도 여배우는 다른 나라 배우를 쓰려고 애기중이야. 장만옥이 어때? 어울리지 않아?" 그런데 이런 얘기, 옆에서 이주익 사장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듣고 있으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놀구들 있네 증말." 그러면 한술 더 떠볼까? "근데 그거 미국 쪽에서는 누가 맡나요?" "배리 오스본이 얘기를 듣더니 너무 좋아해." "배리 오스본이 하재요?" "너무 좋아해. 곧 하게 될거야. <만추>같은 작품도 괜찮지만 황석영 선생의 <심청>같은 것도 얘기가 돼. 이것도 합작으로 만들어야 해. 얘기가 말야, 우리는 늘 들어온 얘기지만 얼마나 판타스틱한 장르의 영화로 받아들이겠어. 해저왕국에서의 얘기 같은 것, 용왕이 어쩌구 하는 얘기 같은 거, 바다에 빠져 죽었던 심청이 다시 환생하고, 장님이었던 심 봉사가 눈을 활짝 뜨고 서양권에서 이런 얘기 들으면 다들 끝내준다고 한다고. 이런 얘기를 만들어야 해. 이런 얘기를 만들어서 바깥에 팔아야 돼. 신상옥 감독 일대기 같은 것도 얼마나 드라마틱해. 전설의 감독이었던 분이고 북한에 납치돼서 한동안 거거기서 살면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가 나중에는 미국에서 영화제작을 하고말야. 이런 얘기가 된다니까." 이주익 사장의 얘기에 점점 더 귀가 솔깃해지게 되는데는 작금의 한국영화 상황때문이다. 한국영화는 올들어 최악에,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영화산업의 위기를 극복하는데는 몇가지의 선행 요건이 풀려야 하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해외시장의 안정적인 구축이다. 그런데 이 해외시장을 구축하기까지는 다국적 합작영화의 제작이라는, 단계적 방법론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해외시장에 나가기 위해서는, 특히 상업영화의 경우, 아무래도 규모가 조금 되는 작품이 보다 쉬울 것이고 또 이렇게 저렇게 제작비가 크게 들어가는 영화일 경우가 다반사일텐데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몇몇 나라가 힘을 합치고 그 리스크를 시장을 공동소유함으로써 줄여나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주익 사장을 축으로 스난성-이세키 사토루, 더 나아가 저어쪽 미국시장에 있는 배리 오스본까지 연결되는 인맥구조, 합자 및 합작구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 4인의 연결망에 한국 영화계가 조금씩 살을 붙여나가고, 얽혀 나가면서 해외시장을 개척해 나간다면 현재의 위기국면을 벗어나는 통로를 만드는 셈이 된다. 이주익 사장의 역할, 행보가 사람들의 주요 관심영역에 자꾸 들어오는 것은 그때문이다. 조금 살아 본 사람들은 안다. 모든 건 다 휴먼 비즈니스다. 사람이 나가야, 시스템이 나가고, 산업이 나간다. 사람이 움직이고 엮여져야 사업이라는 것이 굴러간다. 세상은 종종 소수의 앞선 사람들이 변화시킨다. 영화판은 더욱더 그렇다. 이주익 사장은 현재 소수의 앞선 사람들이다. 그가 일으킬 변화들이 제발, 수렁에 빠진 한국영화계를 구해주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다. (*이 글은 영화 격주간지 '프리미어' 23호 '오동진이 만난 사람'에 실린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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