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무역촉진권한(TPA) 시한인 6월 30일에 맞추느라 '벼락치기'로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는 시작부터 벼락같았다.
순서상으로 가장 나중이 될 것이라던, 그래서 전문가와 대중의 시야 바깥에 있던 미국과의 FTA가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는 지난해 1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연설.
하지만 당시 언론은 큰 관심이 없었다. 주요 언론이 관심을 보인 것은 올해 4월 초, 한국과 미국의 협상이 일단락된 뒤였다.
그러나 언론이 뒤늦게 쏟아내는 말과 글은 대중의 삶에 스며들지 못 하고 겉돌았다. 특히 한미FTA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가난하고 못 배운 이웃들에게 더욱 그랬다.
갑작스레 다가온 FTA라는 말부터 낯설었고, 협상을 중계하는 보도 곳곳에서 튀어 나오는 어색한 영어 낱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17개월 동안 언론이 쏟아낸 한미FTA 관련 보도에 빠지지 않고 담겨 있던 낱말들을 뽑아 관련 기사와 함께 정리했다.
김현종
- '강남 엄마'들의 꿈
"우리 아이도 김현종처럼 키웠으면"하는 바람이 서울 강남 학부모들을 휩쓸고 지나간 적이 있다. 올해 4월 초 한미FTA 협상 타결이 낳을 결과를 장밋빛으로 묘사한 보도가 쏟아질 무렵이다.
당시 많은 언론은 한미FTA 협상을 주도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살아온 내력을 '조기 유학의 성공 사례'로 보도했다.
"미국에서 보낸 고교 시절, 책상에서 못 일어나도록 마룻바닥에 신발을 고정해 놓고 공부했어요"라는 종류의 이야기도 곁들여졌다. 역경과 차별을 노력으로 극복했다는 종류의 이야기는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호소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이렇게 인기가 높은 미국 변호사 김현종 씨를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발탁한 것은 하필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노 대통령이 발탁한 인사가 강남에서 이렇게 인기를 끈 것은 드문 일이다.
'역경과 차별을 노력으로 극복한 변호사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노 대통령과 김 본부장은 삶의 출발점부터 다르다.
농촌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한 노 대통령과 달리 김 본부장은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사립고교를 거쳐 콜럼비아 대학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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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브리핑
- 노무현 대통령은 '마음의 편집장', '오보'의 쓴 맛도
"왜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를 강행할까?" 지난 1년 반 동안, 많은 이들을 고민에 빠뜨린 질문이다. 여기에는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언론도 포함된다. 자신들이 격렬하게 비난했던 노 대통령이 자신들과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으리라는 점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
그래서 "'사진이나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라던 노 대통령이 진심으로 한미FTA를 원할 리는 없다. 한미FTA는 노 대통령 '코드'가 아니다. 아마도 한미FTA를 추진하는 듯하다가, 막판에 어깃장을 놓아서 지지 세력의 환심을 살 것이다."라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그리고 일부 신문은 칼럼 등을 통해 이런 음모론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친노세력 가운데 일부도 내심 사실이길 바랐던 이런 음모론은 결국 허구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런 음모론에 빠진 이들은 아마도 <국정브리핑>을 제대로 챙겨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국정홍보처가 온라인으로 발행하는 <국정브리핑>에서 한미FTA에 관한 글은 빠진 적이 드물었다. 그리고 이런 글에서 한미FTA를 성사시키고야 말겠다는 정부의 열정이 뚝뚝 묻어났다. 애당초 <국정브리핑>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 자체가 한미FTA였다. 그래서 한미FTA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국정브리핑>을 빗대 <걱정브리핑>이라는 온라인 매체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국정브리핑>을 노 대통령은 끔찍이 아꼈다. 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에 고무된 까닭인지, 한미FTA의 정당성을 알리려는 <국정브리핑>의 열정이 지나쳐 '오보'를 낸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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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선결 조건
- 농업과 영화가 '자신감'만으로 살아날 수 있다면야
흙 먼지를 뒤집어 쓴 농민과 미모의 여배우. 꽤 낯선 조합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만남을 성사시킨 게 한미FTA였다.
한미FTA를 체결하자는 한국 정부에 미국 측은 '4대 선결 조건'을 내세웠다. 협상이 시작되기 전, 미리 해결돼야 할 조건이라는 뜻이다. △스크린 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해제,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 △의약품 가격 재조정 금지 등이 포함됐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이런 조건을 모두 수용했다.
이런 '통 큰 양보'에 대해 영화인, 농민, 환경운동가, 만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 등이 모두 깜짝 놀랐다. 결국 영화 '왕의 남자'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이준기 씨가 이들을 대표해 청와대를 찾아갔다.
이 씨를 만난 노 대통령은 "영화에서만 봤는데, 실제로 보니 더 잘 생겼다"며 추켜세우더니, 잠시 후 "영화인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잘 생긴 외모만 있으면, 헐리우드의 거대 자본 앞에서도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일까.
노 대통령은 이후에도 줄곧 자신감을 강조했다. 한미FTA 협정문에 서명한 직후인 1일, 미국 시애틀에서 교포들을 만난 노 대통령의 첫 마디 역시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해병대 유격훈련장이 아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턱대고 뛰어오르다간,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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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촉진권한(TPA)
- 미국은 교수, 한국은 학생?
'당일치기' 시험 공부를 해 본 사람은 안다. 시험장을 나오는 순간, 공부한 내용이 모두 머릿속에서 날아간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렇게 공부해서는 제대로 된 실력을 쌓을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각종 고시를 통과하여 행정부에 입성한 관료들은 좀 다른가 보다. 아무리 빠듯한 일정도 척척 소화해 냈다. 그러면서도 불만이 없다. 오히려 "실익이 많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미국 정부가 한미FTA 재협상 의제를 제시한 것은 지난 달 16일. 처음에는 "미국 측의 요구를 차분하고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며 우선 협정문에 서명부터하고 나머지 협상은 천천히 진행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취하던 한국 정부는 결국 채 2주일도 안 된 기간 안에 협상을 끝내 버렸다.
"시험 범위가 너무 많다"며 엄살을 부리다가도, 시험 하루 전날 벼락치기 공부로 해치워버리던 학창 시절의 버릇이 나온 모양이다.
안타까운 것은 교수처럼 시험 날짜를 정하는 쪽은 미국, 학생처럼 벼락치기 공부를 해야하는 것은 한국이라는 점이다. 한국 정부가 서둘러 협상을 마무리지은 이유는 미국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무역촉진권한(Trade Promotion Authority, TPA)이 만료되는 게 지난 6월 30일이었기 때문이다.
TPA는 외국과의 원활한 협상 진행을 위해 미국 의회가 행정부에 협상 전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행정부에 TPA가 부여되면, 의회는 협상 내용에는 일일이 관여할 수 없으며 나중에 합의문에 대해 찬반 투표만 할 수 있다.
"TPA 만료 이후에 협상을 진행할 경우, 미국 의회의 간섭으로 협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판단으로 한국 정부는 협상을 서둘렀다. 하지만 이런 판단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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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 브레이커, 뼈 있는 쇠고기와 광우병
- '위험한 고기' 먹어가며 FTA 해야 하나
1997년 IMF 사태가 낯선 금융 용어를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면, 지난해 시작된 한미 FTA 협상은 낯선 통상 협상 용어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딜 브레이커(deal breaker, 협상 결렬 요인)'도 그 중 하나다.
한국 정부가 전력을 다해 추진한 한미 FTA 협상의 대표적인 '딜 브레이커'는 '뼈 있는 쇠고기' 문제였다. '뼈 있는 쇠고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광우병 때문이다. 이 병의 공식 명칭은 '우해면양뇌증(BSE)'. 소의 뇌에 생기는 신경성 질환의 일종이다.
이 병에 걸린 소는 성격이 미친 듯이 난폭해진다. 그래서 미칠 광(狂)자와 소 우(牛)자를 써서 광우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광우병에 걸린 소는 침을 흘리고 비틀거리는 등 증상을 보이다가 뇌에 스펀지처럼 작은 구멍이 생겨 곧 죽는다.
그런데 사람이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을 경우, '인간광우병(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 vCJD)'이 발병할 수 있다.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을 유발하는 물질은 현재로서는 '프리온(Prion)'이라는 단백질의 변형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변형 프리온 단백질이 많이 들어있는 부위를 '특정위험물질(SRM, Specified Risk Material)'이라 한다. 소의 뇌, 척수를 포함한 척추, 내장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뼈가 섞이지 않은 살코기'는 특정위험물질이 아니다. 수입 쇠고기가 '뼈 없는 쇠고기'인지, '뼈 있는 쇠고기'인지 논란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지난 2006년 3월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정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발표하면서 30개월 미만의 소에서 유래한 '뼈 없는 살코기'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수입하는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발견되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은 계속 무산됐다.
이른바 '4대 선결 조건'으로 쇠고기 무역을 재개했지만 또 다른 암초를 만난 미국은 한미 FTA 협상을 방해하는 '딜 브레이커'로 뼛조각을 걸러내는 한국의 검역을 지목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4월 '뼈 있는 쇠고기' 수입을 약속하면서 한미 FTA 협상을 타결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보수언론은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을 '결정적 기준'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일본 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혀 한국 정부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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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역외가공지역
- 모호한 성과, 그나마도 '뻥튀기'….
지난 4월초, 한미FTA가 타결되자 "잃은 것은 분명한데, 얻은 것은 애매하다"는 비판이 종종 나왔다. 한미FTA 체결로 인해 추가적으로 발생하게 될 비용은 누가 봐도 명백한데, 얻게 될 이익은 보는 이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비판이다. 이익의 전망치가 대부분 지나치게 나관적인 가정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애매한 가운데, 그나마 분명해 보이는 이익이 "개성공단을 역외가공지역(Outward Processing Zone : OPZ)으로 지정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한의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도 한국산과 동일한 관세가 적용된다.
북한은 이번 협정으로 한국과 미국이 속하게 되는 자유무역지역 바깥에 있다. 즉 역내(內)지역이 아니다. 하지만 협상 당사자인 양국의 합의를 통해 역외(外)가공지역으로 정한 곳에 대해서는 한미FTA가 적용되는 역내(內)지역과 마찬가지의 관세를 적용할 수 있다.
이처럼 개성공단이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된다면, 경제적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북한과 한국이 같은 경제권에 묶이는 효과가 있고,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그런데 정부가 홍보하는 내용은 "개성공단이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됐다"는 게 아니다. "역외가공지역을 지정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정부가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 '뻥튀기' 홍보를 하고 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자칫 개성공단이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성공단이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되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우선 개성공단이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른 환경·노동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한국은 ILO 가입국가임에도 ILO 기준을 다 충족하지 못 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ILO 가입국가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성공단이 ILO 기준을 제대로 따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밖에도 5단계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개성공단이 역외가공지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역외가공지역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 의회 분위기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미국 하원은 "한미FTA 재협상을 통해 개성공단을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만약 미국 의회의 반대로 개성공단이 역외가공지역 지정을 못 받게될 경우, 한국 정부는 그동안 배포한 한미FTA 홍보 자료를 모조리 뜯어고쳐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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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국가 소송제(ISD), 간접수용
- 이제 '웰빙'은 끝났다.
한미FTA 홍보 자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 "세계적 추세"다. 한미FTA를 통해 더욱 가속화될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뜻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대세'가 꼭 FTA만은 아니다. 소위 웰빙(Well-being), "잘 먹고 잘 살자"는 흐름도 대세다.
그리고 이런 대세의 선봉에 서 있는 게 '금연운동'이다. 니코틴과 타르에 찌든 몸으로 "잘 먹고 잘 살자"는 흐름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데 한미FTA가 체결되면, 우선 '금연운동'부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먼저 수입 담배값이 떨어진다. 수입 담배에 붙은 40%의 관세가 폐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다. 정부가 모처럼 국민 건강을 위해 애써보겠다고 '금연운동'을 벌이는 것도 쉽지 않아진다.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ISD)때문이다. 국가의 정책으로 해외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 당했을 때, 투자자가 해당 국가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중재심판소(ICSID)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다. 정부의 금연운동이나 보건정책이 미국 담배회사의 제소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제도의 악명은 높다. 미국이 맺은 또 다른 FTA인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에서도 포함돼 있다. NAFTA 발효 이후, 멕시코 과달카사르 지역 주민들이 겪은 고통은 이 제도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평소 건강하던 주민들에게 갑자기 암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이 찾아 왔다. 그리고 기형아가 태어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근처에 들어선 다국적기업 메탈클래드가 버린 산업 폐기물 때문이다.
주민들은 항의했고, 주정부와 지방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매탈클래드의 매립지 설치 허가 신청을 거부했다. 적어도 더 이상의 피해는 막을 수 있겠구나하는 안도감이 감돌 무렵, 끼어든 게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였다.
메탈클래드는 이 제도를 이용해 멕시코 정부를 제소했고, 국제투자분쟁중재심판소는 멕시코 정부에 16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본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환경 보호 조치와 같은 동기라든가 의도 등은 고려하거나 결정할 필요가 없다. 고려해야 할 문제는 오로지 투자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가 하는 것뿐이다." 당시 판결문의 일부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이나 규제가 투자자의 권리를 직접 침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부의 정책은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아닌 공공을 대상으로 마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가 직접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이 제도에는 '간접 수용'이라는 개념이 따라다닌다. '공적 규제로 투자자 재산권을 간접적으로 침해하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는 항상 간접수용을 인정한다.
따라서 굳이 특정 기업이나 투자자를 불리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공공성을 위해 마련한 정책도 제소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한미FTA 협상에서 부동산이나 조세 정책 등은 예외로 인정받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협정문 부속서의 해당 대목을 살펴보면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때와 같은 드문 상황을 제외하고는…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과 같은 당사국의 비차별적인 규제행위는 간접수용을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뒤집어 말하면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때'와 같은 상황에서는 부동산 정책도 간접수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 여기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한국 정부나 법원이 아니다.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중재심판소의 몫이다.
메탈클래드 사건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는 오로지 투자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가 하는 것뿐"이라고 판시했던 국제투자분쟁중재심판소가 한국 국민의 건강까지 챙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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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욕망 앞에 고개 숙이십시오"(간접수용과 토지규제)
'꿈'은 꾸되 '세금'은 꿈도 꾸지 마십시오 (간접수용과 조세)
그 후 과달카사르는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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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 역사는 허세욱과 김현종, 노무현을 각각 어떻게 기록할까.
'글'이나 '말'을 팔아 '밥'을 버는 이라면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이름이다. 주요 언론과 정부가 한미FTA 체결이 낳을 미래를 장밋빛으로 묘사하기 급급하던 무렵, 택시 노동자 허세욱은 한미FTA 협상장 앞에서 스스로를 불살랐다.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FTA는 가난하고 못 배운 그의 이웃들에게 재앙이 되리라는 점, 그런데 언론과 정부의 장밋빛 묘사 탓에 한미FTA로 더 힘들어질 이웃들은 정작 한미FTA의 문제점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 그를 괴롭게 했다.
힘든 삶을 앞둔 이웃들에게 한미FTA를 반대하자고 외쳤지만, 귀를 기울이는 이는 드물었다. 가난한 그의 외침에 귀기울이게 하려면 무엇인가를 버려야 했다. 그런데 그는 버릴 게 없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빈민가에서 살았던 그였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버렸다. 그리고 유서에 "나는 나를 버린 적이 없다"고 적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공개된 그의 유품 가운데 한미FTA에 관한 자료가 가득 담긴 상자가 있었다. 허 씨가 모은 신문 기사와 자료에는 온통 빨간색 밑줄이 쳐저 있다.
이런 그를 많이 배웠다는 자들은 조롱했다. 한 정치인은 좌파 지식인을 장교에, 그를 사병에 비유하기도 했다.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 한 허세욱 씨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판단력이 없었으리라는 비아냥이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를 내던져 피워 올린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춥고 배고픈 이들을 항상 걱정하던 그의 마음은 가난한 이웃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훗날 역사가 허세욱과 김현종, 노무현을 각각 어떻게 평가할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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