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에 대한 늑장 수사 및 봐주기 의혹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경찰이 이번에는 잇따라 불거진 내부 폭행 사건으로 경찰 안팎의 비난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런 내부 폭행 사건이 알려지자 사이버경찰청 경찰관 전용 자유발언대 등 경찰관들이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불만을 토로하는 하위직 경찰관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고위 간부의 잘못에는 관대하면서도 하위직 직원들에 대해서는 폭력과 무리한 징계를 일삼는 경찰 조직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고위직의 잘못은 침묵, 하위직의 잘못은 무조건 인정"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글 가운데 가장 많은 내용은 경찰 내부 감찰이 고위직과 하위직에 대해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제기됐던 수사지연·외압 의혹에 대한 경찰 고위 간부들은 감찰로부터 제대로 조사받지 않았던 반면, 경찰 조직을 비판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린 하위직 경찰관은 정직 처분을 받는 등의 사례가 이런 주장의 근거다.
또 일부 언론의 보도로 온라인 공간에서 화제가 된 '동작 피곤녀 사건'처럼 아직 사실 관계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단지 여론 무마만을 위해 하위직 경찰관에게 과도한 징계를 내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소위 '동작 피곤녀 사건'은 지난 3월 <노컷뉴스>가 "경찰 늑장 대응 때문에 20대 여성 집단 성폭행"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발행하면서 불거졌다. 경찰의 굼뜬 대응으로 괴한에게 납치된 20대 여성이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 기사를 여러 신문과 방송이 인용보도하면서 사건의 파장이 커졌다. 당시 <노컷뉴스>는 서울 동작경찰서 소속의 한 여성 경찰관이 '늑장 대응'과 관련해 "피곤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도했고, 이를 지켜본 누리꾼들은 이 경찰관을 '동작 피곤녀'라고 부르며 거세게 성토했다.
결국 서울경찰청장과 동작경찰서장이 공식 사과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런데 당시 사건이 발생한 동작경찰서 관내의 한 경찰관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언론의 짜깁기 보도로 사건의 진실이 왜곡됐다는 것.
결국 이 사건은 언론중재위로 넘어갔고,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리고 당시 납치 및 성폭행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도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이 다르다. 납치와 성폭행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본 법원은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연거푸 기각했다.
한동안 잊혀졌던 이 사건이 최근 경찰 상층부의 이중적인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함께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위직의 잘못은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위직의 잘못은 사실 관계에 대한 충분한 조사 없이 무턱대고 인정한다는 비판이다.
게다가 최근 한 지방경찰청이 일선 경찰서에 '관심(문제) 직원 정비'를 지시하는 대외비 문건을 내려보낸 사실이 공개되면서 하위직 경찰관들 사이에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게시판에 댓글 달았다고 징계위 회부…"해명하려 하자 서장이 구타"
이처럼 수면 아래에 쌓여 있던 불만이 터져나오게 된 계기는 잇따른 경찰 내부 폭행 사건이다. 서울 성동경찰서 소속 황모 경사는 최근 경찰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지난달 13일 경찰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 단 댓글 때문이다.
지난 9일 황 경사가 경찰 게시판에 올린 글에 따르면, 그는 지난 달 21일 자신의 댓글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 서장실을 찾았다가 욕설을 들었다.
이어 황 경사는 "다음날 다시 서장실을 찾았지만 성동경찰서장은 물건을 집어던지려는 위협적인 동작을 취하고 사과하기 위해 머리를 숙인 황 경사의 뺨을 때렸다"고 전했다.
황 경사의 이런 주장에 대해 경찰서장은 "재차 찾아와 막무가내로 버티기에 '업무를 봐야 하니 나가달라'고 등을 떠밀었을 뿐 폭행은 없었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감찰계는 해당 경찰서장을 불러 폭행 사실에 대해 조사했으며 곧 황 경사에 대해서도 조사할 예정이다.
"모자 안 썼다고 때렸다"…폭행 사실 알고도 감찰계는 침묵
그리고 황 경사의 폭행 피해 사실을 둘러싼 논란이 번지자 또 다른 폭행을 고발하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한 경찰관이 경찰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에 따르면 서울 모 경찰서장은 지난 3월 초 반대시위 차단근무 중이던 경찰관 2명이 모자를 쓰지 않은 채 버스에서 내리자 욕설을 퍼부으며 구타했다. 이 글을 쓴 경찰관은 "이를 본 다른 직원들은 서장에게 맞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모자를 쓰는 소란이 있었으며 감찰에서도 이 사실을 모두 알았지만 그냥 덮고 넘어갔다"고 전했다.
YTN은 자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 가해자였던 경찰서장이 폭행 사실을 시인했다고 10일 보도했다. 그리고 이날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 경찰청 감찰계는 이 경찰서장의 폭행 사실을 모두 파악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쏟아지는 경찰 내부 폭행 사건, 온라인 들끓다
이밖에도 다양한 경찰 내부 폭행 사건들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퍼지며 경찰 안팎의 비난을 사고 있다. 이 가운데 사실로 확인된 내용은 이렇다.
전남 고흥서장이던 김 모 총경은 지난 4월 술을 마시고 관사로 들어던 중, 의경이 술 취한 사람과 다투는 것을 보고 상황실장을 불러 책임을 추궁하며 얼굴을 때렸다가 직위해제됐다.
올해 초에는 광주 동부경찰서장이 지구대 관리반 인원 축소에 항의하던 정 모 경사에게 "인사권에 도전하느냐"며 5~6차례 폭언을 퍼부었다가 물의를 빚자 공개 사과했다.
이처럼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경찰 내부의 폭행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경찰 조직문화 개혁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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