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새벽, 열흘 간의 감치를 마치고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난 황두완 노인의 말이다. 올해 86세인 그가 유치장에 갇히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19일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항소심 심리 공판이 열린 법정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것.
한 시간 동안 진행된 당시 공판에서 강 교수 측은 "검사의 기소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항변했다. 이들은 또 5월 3일로 예정된 구형 재판의 일정을 연기해달라고 요구했다.
지난 2월 배석판사가 교체된 까닭에 30편 이상의 논문, 5권의 단행본 저서, 200자 원고지 420매의 항소이유서 등을 법률적으로 꼼꼼히 검토할 여유가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강 교수가 언론에 기고한 글이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지를 다루는 이번 사건에서는 강 교수의 저술에 대한 학문적 검토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재판부는 이런 요구를 무시하고 공판을 끝냈다. 방청석 곳곳에서 볼멘 소리가 나왔다. 재판부가 퇴정하려는 순간,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황 노인이 "공안검사, 공안판사 물러가라"고 외쳤다.
"86세 노인을 유치장에 보내는 것으로 재판부 권위 세우려 해서야"
이에 재판부는 다시 법대로 돌아와 황 노인에게 '감치를 위한 유치 명령'을 내렸다. 이어 다음날 재판을 통해 열흘 간의 감치 결정을 내렸다.
"법원이 직권으로 법정 내외에서 재판장의 법정 질서유지 명령을 위배하거나 폭언·소란 등의 행위로 심리를 방해하거나 재판의 위신을 현저하게 훼손한 자에 대해 결정으로 20일 이내의 감치 또는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한 법원조직법 61조 1항에 따른 결정이었다.
재판부의 이런 결정에 대해 강정구교수사법처리저지및학문의자유쟁취공대위(강정구공대위) 측은 "재판정의 권위는 86세 고령의 노인을 유치장에 보내는 것을 통해 세워지는 게 아니라 진실에 바탕을 둔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결을 통해 세워지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황 노인은 어떤 생각으로 법정에서 고함을 질렀을까. 29일 유치장에서 나온 황두완 노인을 만났다. 다음은 황 노인과의 일문일답.
"외국에서 강정구 연구 인정하면 한국 법원은 조롱거리 될 것"
- 당시 재판정에서 고함을 질렀다는 이유로 열흘씩이나 감치 처분을 당했는데….
"유치장 생활이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한국이 민주화됐다고 하지만 군, 법조계, 경찰 등은 여전히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나 역시 지난 1968년부터 1996년까지 법무부 검찰1과에서 근무했었다. 그래서 법조계의 실상을 잘 아는 편이다. 이번 일은 여전히 권위적인 법조계의 면모를 보여준 작은 사례라고 본다."
- 강정구 교수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열린평화포럼 활동을 하며 강 교수를 알게 됐다. 나는 법무부 검찰1과에서 근무하며, 주로 외신 번역, 미국인 범죄 등을 담당했다. 그래서 한미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한 강연을 통해 강 교수를 알게 됐는데, 미국에 대해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자료를 놓고 설명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때부터 강 교수의 책을 꼼꼼히 읽었다."
- 미국인 범죄 등을 담당하는 과정에서 종속적인 한미 관계 등에 대해 남들보다 먼저 관심을 갖게 됐을 것 같다.
"일제 강점기인 1944년부터 해방 직전까지, 학병으로 징집될 예정이었던 대학생을 집에 숨겨준 적이 있다. 그 학생의 전공이 영문학이어서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해방을 맞았는데, 한국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무척 드물었다. 영어 통역, 강사 등으로 일했고, 1959년에는 미국 군사 고문단의 통역으로 일하기도 했다. 또 그 무렵부터 꾸준히 외신을 접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국에 대해서는 잘 아는 편이다. 나는 "미국을 반대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는다. 미국에도 평화애호세력이 있지 않는가. '부시 정권을 반대한다', '침략전쟁, 패권주의를 반대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런데 강 교수의 강연과 책을 통해 강 교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강 교수의 재판에 꼬박꼬박 출석하고 있다. 한국의 사법부가 합리적인 학문적 주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기 위해서다.
나는 강 교수가 '한국의 오르한 파묵'이라고 생각한다. 강 교수에 대한 한국 사회의 태도가 언론의 자유를 누르고 있는 터키 정부에 의해 탄압받고 있는 오르한 파묵의 경우와 닮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을 통해 세계의 지식인들이 오르한 파묵의 문학적 성취를 인정하는 순간, 터키 정부가 부끄럽게 됐다. 마찬가지로 세계 곳곳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강 교수의 연구 성과를 인정하는 순간, 그를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족쇄로 가두려 했던 한국 사법부 역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막는 게 법무부 공무원으로 28년 세월을 보낸 늙은이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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