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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스타는 아직도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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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스타는 아직도 당신입니다"

[별을 쏘다⑦] 박치기왕 김일 선생님께

제가 어릴 적이었습니다. '테레비'를 켜고 화상이 한 장씩 서서히 위로 말려 오르는 것을 실내 안테나로 조정해 잡고나면 이내 형들과 함께 긴장 섞인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때론 이웃집 아저씨와 동네친구들과 같이 수상기 앞에 쪼그려 앉아 똘망한 눈을 부릅뜨고 굵은 침을 꼴깍 넘기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자제들만큼 흥미가 없으셨나 봅니다.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죠.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모여 앉아 선생님을 기다리던 그때가 새삼 기억납니다

그때 정말 아무 것 없이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놀이가 레슬링이었습니다. 형과 함께 이불 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동안 어머니께서는 저녁을 준비하셨지요. 제 특기는 헤드락이었고 형과의 한판에서는 자주 사용하는 기술이기도 했습니다. 박치기는 쉽지 않은 기술이여서 동네 어떤 녀석들도 흉내가 쉽지 않았거든요. '오늘은 어떻게 경기가 진행될까. 일본선수라는데…. 이길꺼야. 박치기로….' 그런데 '언젠가는 나오겠지' 하는 기대는 '왜 지금쯤 나오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과 함께 한판으로 끝날 수 있는 경기가 지연되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감히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부디 이 글이 내려가는 동안만은 그렇게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선생님께서는 1929년 전남 고흥군의 작은 섬마을 거금도에서 김해김씨 자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부친께서는 기골이 장대했으며, 아마도 집안 내력으로 선생님께서도 힘깨나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네에서는 씨름장사이셨네요. 스물여덟의 나이로 일본으로 밀항하셨죠. 오로지 레슬링을 하기 위해, 그리고 역도산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말이죠. 선생님께서 회고하신 바로는 그때부터 적지 않은 시간동안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셨습니다.

1957년 역도산의 문하생이 된 후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스승의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 오직 레슬링에 온 젊은 시절과 평생을 보내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박치기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박치기가 얼마나 많은 통쾌함을 저에게 선사하셨는지 아마 저뿐 아니라 제 또래, 그리고 1960~70년대를 함께 살아 온 한국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건 스승에 대한 맹목적 사랑이었습니다
▲ ⓒ프레시안

선생님께서는 무지하다 싶을 정도로 스승 역도산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늘 스승에 대한 연민을 품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스승의 문하생으로 입문하여 스승이 일본인들에 의해 의문을 피살당할 때까지 선생님은 그 사랑과 믿음을 버리지 않으셨죠.

스승의 모진 매질에 하루가 가고, 그래서 하루도 맞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날이 없었던 시절에도 스승에 대한 존경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직 스승이 선생님을 자신의 제자로 불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고통을 감내하신 것입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풍족하지 않았죠. 연습에 있어서 스승으로부터 최대한의 관심을 끈 것도 아닙니다. 단지 스승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선생님을 버티게 한 것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이 왜 이리도 빠르게 진행되는지요. 자고 일어나면 어제의 것은 너무도 오랜 것으로 취급받고 맙니다. 가게의 면적보다도 커 보이는 간판을 내걸고 장사하던 밥집은 오늘 다시 그 주인이 바뀌어 있군요. 도시를 걷고 있노라면 이제는 그 지긋한 연배의 하얀 턱수염과도 같은 60-70년대의 건물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재개발과 뉴타운의 열풍이 온 세상을 휘감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제 더 이상 맹목은 통하지 않는 시절이 됐습니다

바뀌어야 산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맹목이 통하지 않는 시절이니까요. 맹목은 뒤떨어진 것이고 살아남기 위해서 과감히 버려야 하는 덕목으로 취급받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그러한 맹목에 대한 가치하락이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담 안까지 넘어오고야 말았습니다. 돈을 좆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성공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변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세상이니까요.

지금의 많은 운동선수들은 최고의 운동선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선생님께서도 그러셨겠죠. 어느 누가 꼴찌를 위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힘든 과정을 선택하겠습니까. 그러나 선생님은 지금의 젊은이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맹목을 뒷전으로 감춥니다.

오늘의 씨름 선수는 내일의 K-1에 등장하며, 자신이 사랑했던 운동이 이제는 자신의 밥벌이가 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아쉬움 속에 등을 돌립니다. 그리고 에이전시의 지시에 따른 본격적인 사회활동에 들어갑니다. 잡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더 친근한 웃음을 선사하려 합니다. TV 연예프로그램 출연과 광고계약이 결국 프로선수들의 성공의 정도로 판단되기도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면 코치를 바꾸는 것 쯤에는 심리적 갈등을 겪지도 않는 듯합니다. 그렇겠죠. 이들에게 코치는 스승이 아닐 테니까요. 비록 맹목적인 사랑과 존경이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올 수 있을지라도 선생님께서는 그 가치를 최우선시 하셨나 봅니다.

"레슬링이여 영원하라"…당신이 선사했던 기쁨
▲ 지난 2006년 6월 독일월드컵 거리응원을 펼치는 박치기왕 김일 ⓒ 연합뉴스

선생님은 레슬링의 모든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경기에서 그 생각이 배어나왔다면 제가 너무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일까요. 링에서는 이겨야 할 상대였던 이노끼. 어쩌면 일본사람이라는 이유가 저의 어린 마음으로도 꼭 이겨야 할 상대였던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링 밖에서는 토닥여주고 챙겨줬어야 하는 후배였던 것도 사실이었지요.

선생님은 레슬링뿐 아니라 레슬링으로 호흡하는 모든 인간들을 소중히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명예를 중요시 여겼으며, 사람을 중히 여기셨지요. 정정당당함과 시합에서의 경우를 지키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전국으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에 대한 이미지 관리이셨나요. 이유가 어찌됐든 제 기억으로 선생님께서 심판에 거세게 항의하거나 손을 대신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더욱 더 선생님이 우리 모두의 우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정의의 사도와도 같았죠.

선생님께서는 한반도의 사람으로서, 레슬링의 거장으로서 박치기 왕으로서,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많은 시청자들을 위해 최고로 재미있는 레슬링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린 우리들에게는 자신감과 꿈을, 아마도 나이 지긋하신 분들께는 후련함과 통쾌함을 선사하셨습니다. 어쩌면 그 당시에도 하나의 스포츠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이었을지도 모르죠. 일본인을 상대로, 배고프고 없을 때 그나마 우리를 위무하고 분통 터지는 작금의 역사적 사실들을 날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이제는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운동이 최근에는 비인기종목이라는 굴욕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비단 프로 레슬링만에 국한된 것은 아니겠지요. 과연 누가 그 단어의 탄생과 연명을 보장하고 있을까요. 갑자기 슬퍼집니다. 메달을 따면 부와 명예가 따라오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다양한 종목의 좋은 어린 선수들이 잘만하면 스타가 될 수 있는 유망 종목으로 빠져나가서일까요. 그도 잠시에 불과한데 말이죠. 아마추어와 프로를 막론하고 스포츠 현장에서는 적지 않은 판정시비와 잡음, 그리고 각 경기단체의 집안싸움도 끊이지 않습니다. 한 번의 승패가 자신의 이권과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우리 시대 스포츠 스타는 어떤 모델이어야 할까요

이제 운동선수라는 말보다는 '스포츠맨'이라는 단어가 그 자리로 슬금슬금 기어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스포츠맨, 그리고 스포츠스타들은 과연 무엇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을까요. 자신의 청춘을 바쳐 몸담고 있는 운동에 대한 사랑? 아니면 그 운동을 통해 이룰 수 있는 부와 명예? 아니면 유명인으로서의 성공 여부 판단? 연봉과 팬과 기자와 행사와 전속모델과 결혼…? 우리 시대의 스포츠스타는 어떤 모델이어야 할까요.

이제 선생님은 아니 계십니다. 누구나 사랑했던 분이셨죠. 저의 어린 눈에만 그랬었나요. 그때 선생님을 광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았을지언정 선생님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말로 저를 비롯한 동네 꼬마 녀석들의 우상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안 계셔도 선생님을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바로 레슬링에 대한 선생님의 사랑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선생님을 잊어서는 안되는 가장 큰 이유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지금 우리는 선생님처럼 자신의 운동을 신념하는 진정한 스포츠스타를 만나길 꿈꿀지도 모릅니다.

스포츠 현장에는 스타가 존재하고, 그럼으로써 그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사실 그 운동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점점 적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우리에게 과연 스타는 무슨 의미로 남아야 합니까. 조용하든 시끄럽든 묵묵히 자신의 운동을, 스승을, 동료를, 경쟁자를, 그리고 자신의 운동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자신의 운동에 무슨 일이 생기면 먼저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치 선생님처럼 말이죠. 자신을 위해 자신의 운동을 발판 삼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운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선생님 제가 너무 두서없이 주절거린 것 같습니다. 부디 지금 계신 곳에서 선생님께서 생전에 존경하고 흠모해 마지않았던 스승님과 미처 다하지 못한 많은 얘기 나누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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