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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운명으로 알던 내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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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운명으로 알던 내가 어떻게…"

조선일보 배달 사고…"터질 게 터진 것"

15일 서울 종로 일대에는 조선일보 3200부가 배달되지 않는 이례적인 배달 사고가 일어났다. 본사와 지국장 간의 갈등 때문이었다.
  
  조선일보 종로지국 조의식 지국장은 지난 7일 본사로부터 지국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최근 그가 본사 직원과 지국장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본사 '불복종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본사의 계약 해지가 부당하다며 지난 13일 해약통지 무효소송를 법원에 냈다. 그러나 15일 새벽 작업 도중 조선일보 본사 직원 및 인근 지국장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지국 사원들의 작업을 인수인계 해줄 것을 요구했고 결국 실랑이 끝에 신문은 배달되지 못했다.
  
  이번 사건이 보도되자 일부 누리꾼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 지국장은 누구보다도 조선일보에 대한 끈끈한 애정을 보여 왔던 이들 중 한 사람이기 때문. 1979년 주간조선의 영업으로 조선일보와 인연을 맺은 그는 1989년부터 조선일보 지국장을 맡아 왔다. 그는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안티 조선' 운동에 맞서기로도 누리꾼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런 그가 왜 그랬을까?
  
  "이제 서러운 종살이에 종지부를 찍고자 한다"
  
  "터질 일이 터졌다."
  
  이번 배달 사고에 대한 신문업체와 언론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조영수 간사는 "오랫동안 지국 일을 하셨던 분 같은데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한 듯 하다"고 말했다.
  
  조 지국장은 지난 4~5일 본사 직원들과 다른 지국장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불복종 선언'을 했다. 그는 "조선일보를 운명으로 알 만큼 누구보다도 끈끈한 애착으로 살아 온 사람이지만, 이제 서러운 종살이에 종지부를 찍고자 한다"고 토로했다.
  
  조 지국장은 또 지난 7일 이와 관련해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 기사가 나가자 조선일보는 당일 조 지국장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해지 사유는 △지난 2일 종로지국을 방문해 파악했을 때 80여 부의 잔지가 남아 있던 것 △지국장들에게 '본사 불복종' 메일을 보내 회사를 비방한 것 △타 매체와 인터뷰해 본사의 명예를 훼손한 것 등이었다.
  
  이는 지난 4일 조 지국장이 불복종 운동을 제안하는 메일에서 "해약통지서 한 장으로 나가 떨어져야하는 우리지국장들은 찍히면 쪽박"이라고 주장한 것과 맞아 떨어졌다.
  
  "부당한 일 항의하면 돌아오는 건 계약 해지뿐"
  
  실제로 조선일보 본사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해 조선일보는 서울 가좌·북가좌지국과 공덕지국에 대해 각각 7월과 8월 거래를 중단했다.
  
  가좌·북가좌 지국의 지국장은 "발송부수가 줄었는데도 조선일보 본사는 더 많은 신문지대를 청구하는가 하면, 본지와 섹션을 따로 발송해 주면서 속지 삽지비용을 지국에 부담시키는 것도 모자라 독자들에게 무료로 보내준다고 일방적으로 광고한 판촉물의 제작비도 청구해 왔다"며 "본사에 부당이득 반환 등 원만한 해결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건 지국 계약 해지뿐이었다"고 말했다.
  
  공덕지국 전 지국장도 "불공정 거래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본사로 보냈지만 아무 답변이 없었다"며 "이로 인해 합의가 될 때까지 지대 입금을 유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더니 본사는 지국 계약 해지 통보를 해 왔다"고 말했다.
  
  "본사와의 계약서는 한마디로 노비 문서"
  
  전국신문판매연대 김동조 위원장은 "신문사들은 엄연한 개인 사업자인 지국장들과의 불공정한 계약을 이용해 돈벌이를 해 왔다"며 "계약서는 한마디로 노비 문서"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 대다수의 신문사들이 지국과 맺는 계약에서 본사의 의무조항은 거의 없다.
  
  중앙일보의 경우 '계약해지' 조건에 "을(지국)이 본 약정을 을의 책임으로 위반하거나 다음과 같은 사유로 을이 계약업무 수행에 부적당하다고 인정될 때는 갑(본사)은 상당 기간을 최고 후 본 계약을 해약할 수 있다"면서 △갑이 업무상 기밀로 분류한 사항을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나 그 구성원에게 제공한 경우 △기타 민·형사상의 문제를 발생시켜 갑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만을 언급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역시 '해약' 항목에서 갑(본사)의 권리만 명시했을 뿐, 을(지국)이 이에 대항할 수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국장의 의무만 명시된 계약서는 누가 봐도 일방적인 약정이지만 처음에 지국장들은 사업을 하기 위해 그 계약서에 도장을 안 찍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도장 찍었으니 할 말 없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이같은 본사-지국 간의 계약 관행은 지국장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판촉 행위 등에 대해 부분적인 제재조치를 취할 뿐이다.
  
  김동조 위원장은 "이 문제를 공정위에 가지고 가면 법의 판단에 따르라고 하지만 사법부는 '너희들이 도장을 찍었으니까 할 말 없는 것 아니냐'고 한다"며 "이러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해법은 표준계약서"라며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신들이 규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표준약정서를 만들어 대대적으로 공개하고 신문사에 권고한다면 아무리 잘 나가는 메이저 신문사라도 따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밝혔다.
  
  문제는 계약서뿐만이 아니다. 경품과 판촉물에 대한 비용을 지국이 부담하고, 할당된 확장부수를 채우지 못할 때 패널티가 부과되는 등 계약서 이외의 본사-지국 간 불공정 거래는 끝없이 지적되고 있는 문제다.
  
  민언련 조영수 간사는 "본사는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사실"이라며 "실질적인 불공정 거래를 철저히 조사해야 신문시장 전반이 정상화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의식 지국장은 이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본사의 계약해지 통보는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장 다음날인 16일부터 지국으로 신문이 안 올 확률이 높다. <조선일보> 판매국은 서소문지국으로 대신 신문을 보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것이 우리의 본모습"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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