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대학 졸업을 앞둔 최모 씨는 한 건축분야 대기업 신입사원 공채에 합격했다. 하지만 치열한 취업 경쟁에서 벗어난 기쁨은 잠깐이었다.
한달 뒤, 최 씨는 회사 측으로부터 '활동성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이기 때문에 채용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최 씨의 여자친구 문모 씨가 받은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몸 안에 있는 B형 간염 바이러스가 활동성이건 아니건 일상 생활에 별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의학적인 자문을 통해 확인했던 문 씨는 그저 낙담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최 씨가 회사 측의 통보를 받은 직후, 문 씨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문 씨의 진정을 받아들인 인권위는 24일 "B형 간염에 대한 잘못된 통념 때문에 의학적 소견을 배제한 채 병력을 이유로 한 불합리한 차별행위를 했다"며 최 씨를 탈락시킨 회사에 불합격 처분을 취소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이 회사는 '활동성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고, 업무 강도가 센 건설업체의 특성을 고려할 때 B형 간염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서 최 씨를 탈락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조사결과 이 회사의 주장을 의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없다고 확인했다.
대한간학회가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과로 및 스트레스와 간 질환 사이의 인과관계는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밝혔던 것. 그리고 대한간학회는 단지 바이러스가 활발히 증식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건축분야 업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의견을 인권위에 전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1996년 2월 발표한 '위생분야 종사자 등의 건강진단(보건증)시 B형 간염 진단해석 지침'등을 통해 '간염 바이러스' 보유 여부와 주변인에 대한 간염 전염 가능성 사이에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인권위는 이날 "그동안 보건복지부, 노동부 등 관련 부처의 적극적인 홍보가 있었으나 인권위에 접수된 '병력을 이유로 한 차별 진정' 사건 중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에 대한 진정이 59.1%로 가장 높다"며 "이번 권고로 B형 간염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변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 2003년에도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에 대한 취업 차별이 존재한다며 대책을 마련할 것을 관계기관에 권고했었다. 하지만 해당 기업에 직접 불합격 처분 취소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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