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불감증' 낳은 교수 사회의 관행을 고치겠다"
서울대가 연구 윤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지침)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이런 움직임은 총장의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인 고려대가 같은 작업에 착수한 직후 나온 것이어서 다른 대학으로 확산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지난해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 이후 서울대는 연구진실성위원회를 구성하며 연구 윤리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해 왔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논문 조작이나 표절뿐 아니라 중복 게제 여부까지 판정할 수 있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 더구나 지난해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와 이필상 고려대 총장의 논문 표절 논란이 이어지면서 이런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서울대 국양 연구처장은 9일 "'관행적으로 잘못 이해돼 왔던 교수 사회의 연구 윤리를 바로잡기 위해 논문 표절 및 중복게재 등에 관한 기준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며 "학교 내에서 진행되는 모든 연구에 적용될 지침은 늦어도 올해 상반기 안에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서울대는 태스크포스팀을 꾸리고 국내 학회와 외국의 대학 등으로부터 관련 사례와 규정을 수집하고 있다. 서울대는 이번 달 안에 모든 학문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지침을 마련한 뒤, 개별 학문의 특성을 고려하는 세부 지침을 작성할 예정이다. 학문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연구 윤리가 적용돼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자연과학, 공학, 임상 심리학 등의 분야에서는 지도교수의 이름이 제자 논문에 오르는 게 외국에서도 간혹 용인되는 경우가 있다. 교수의 실험 지도, 아이디어 제공 등이 논문 작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도움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적인 기준은 없다. 그래서 장비나 연구비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논문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학문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세부 지침을 마련하는 작업이 까다로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다른 학문 분야에서 제자 논문에 지도교수의 이름을 붙여 학회지에 게재하는 것은 국제 기준으로 용인될 수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행정학 전공인 김 전 부총리, 경영학 전공인 이 총장 등은 논문 표절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제자 논문에 지도교수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 대부분의 학문 분야에서 종종 '관행'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서울대가 마련할 지침이 이런 '관행'을 얼마나 허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개별 학문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서울대 측은 연구윤리의 세부지침 초안이 마련되면 각 학과장 및 학부장들이 검토하도록 할 방침이다. 하지만 각 학과 교수들이 '연구윤리 강화'라는 취지에 얼마나 동참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편 국 처장은 이번 지침이 마련되면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논문 중복 게재에 관한 조사 권한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실성위원회는 현재 논문 표절에 대한 조사 권한만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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