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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간 내 아들, 왜 죽었나?"…20여년 만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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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간 내 아들, 왜 죽었나?"…20여년 만의 대답

'단순 사망' 처리된 군 의문사 2건, '구타사망'으로 확인

군 복무 중 상습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로 사망한 두 젊은이의 억울한 사연이 뒤늦게 밝혀졌다.

대통령 직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1982년 강원도 모 사단 직할중대에서 복무 중 사망한 김 모 하사와 1996년 강원도 모 교도대에서 자살한 박 모 이교(이등병에 해당)가 군내 폭력에 의해 사망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김 하사와 박 이교는 군 내에서 각각 단순사망, 자살로 처리됐었다.

군의문사위는 12일 서울 중구 군의문사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들 두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 이해동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군 당국이 김 하사의 죽음에 대해 취해 온 입장은 1982년 사망 당시 사병 식당에서 열린 중대원 회식에 참석해 막걸리를 마신 후 잠을 자다 구토로 인해 기도가 막혀 질식사했다는 것.

하지만 24년이 지나서 조사한 결과는 달랐다. 군의문사위는 김 하사가 회식을 마친 후 동료들과 함께 내무반 근처 석탄창고에 불려가 선임인 A하사로부터 주먹으로 가슴을 3∼4차례 맞은 뒤 쓰러져 사망했다고 밝혔다. 폭행 이유는 "군기가 빠졌다"는 것.

군의문사위는 당시 김 하사를 폭행한 A하사가 "20여 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당시의 정황을 뒤늦게 인정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함께 복무하던 동료들도 같은 내용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김 하사가 사망한 직후, 부대 인사계 B상사가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자"며 "타살이면 국립묘지에 못 가니까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 함구하고 있으라"고 말하며 구타에 의한 사망 사실을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군의문사위는 "당시 중대 지휘관을 비롯한 부대 관계자들이 김 하사가 구타로 인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침묵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 지휘관은 현재 전역한 상태며 가해자에 대한 공소시효는 이미 만료됐다.

군의문사위는 "당시 군 수사기관이 김 하사의 사망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면서 이미 순직처리된 김 하사의 사망원인에 대한 재심의를 국방부 장관에게 요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하사 사건에 관한 진정은 당시 함께 복무하던 C하사가 냈다. 군의문사위에 따르면 C하사는 김 하사와 함께 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C하사는 사건을 은폐하려는 부대 인사계 B상사에게 항의했으나 묵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입 교도대원을 자살로 내몬 구타, 가혹행위, 성추행

그리고 1996년 10월22일 강원도 모 교도소에서 전입 나흘 만에 투신자살한 박 모 이교의 경우도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졌다.

교도 당국은 당시 내성적인 성격의 박 이교가 얼굴 피부병을 비관해 자살했다며 '우울증에 의한 사망'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군의문사위는 박 이교가 선임대원들로부터 '원산폭격'과 암기강요 등 각종 가혹행위 및 성추행을 당해 극도의 고통과 수치심에 시달린 끝에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군의문사위는 "군내 사망 사건이 자살로 판명되면, 국가유공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가혹행위 등을 견디지 못해 자살에 이른 경우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가혹행위에 의한 자살에 대해서는 국가가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군 의문사위는 "박 이교의 사망을 재심사하여 '공무상 사망'으로 인정할 것을 법무부 장관에게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박 이교의 아버지 박 모 씨가 "아들이 부대 배치 나흘만에 우울증으로 사망했다는 교도소 당국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며 올해 6월 낸 진정에 따라 조사한 것이다. 10년 전 박 이교와 함께 근무하던 교도대원들이 뒤늦게 양심 선언을 하면서 군의문사위의 조사가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박 씨 "자원입대한 아들이 자살했다니…. 여전히 믿을 수 없다"

박 이교 아버지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붉은 눈시울로 회견을 지켜보던 박 씨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이나마라도 풀려 다행스럽다"라면서도 자살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혹을 제기했다.

박 씨는 "아들의 시신 머리 부분에 가벼운 멍자국만 있었다"며 "5층 높이에서 투신한 시신의 머리에 이렇게 가벼운 상처만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구타 등으로 타살당한 아들을 자살로 처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군의문사위는 "법의학자들에 따르면 5층 높이에서 투신한 시신도 박 씨처럼 머리 부분에 큰 상처가 없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박 씨는 "아들은 대학을 휴학한 뒤 육군에 자원입대했으며 훈련병 생활도 무사히 마쳤다"며 "(군 당국의 발표와 달리) 평소 우울증 증세가 없었던 아들이 교도소에 교도대원으로 배치된 직후, 집에 전화를 걸어 정말 힘들고 무서워서 근무지를 바꾸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아들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박 씨와 박 씨의 가정은 심한 방황과 곤경을 겪었다. 박 씨는 현재 생활보호대상자로 지내고 있다.
"1번, 축구하다 다쳤다. 2번, 감시대에서 굴렀다. 3번, 뛰다가 넘어졌다. 이 중 몇 번이냐?"

군의문사위는 12일 박 이교와 김 하사가 겪었던 가혹행위의 내용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이 내용을 통해 과거 경비교도대와 군대 내의 인권 실태를 엿볼 수 있다.

박 이교는 강원도 모 교도소 경비교도대에 배치받은 첫날부터 선임대원들로부터 가혹행위와 구타에 시달렸다.

전입 첫날 신고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취침점호 후 불이 꺼진 내무반에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선임대원들로부터 욕설과 함께 머리 등을 구타당했다.

이튿날 오전에는 구보(驅步) 시 목소리가 거북하다고 지적받았고 이날 밤에는 선임대원들의 이름과 계급 등이 적힌 메모지를 전달받고 그것을 암기하도록 강요받았다. 하지만 이 메모지는 박 이교를 비롯한 후임대원을 구타하기 위한 빌미에 불과했다.

박 이교는 그날 밤 취침점호가 끝난 뒤, 암기를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욕설과 함께, 머리와 발만 땅에 대고 두 손을 뒤로 한 채 버티는 '원산폭격' 등 가혹행위를 겪고, 이어서 침상에 누운 채 가슴을 구타당했다.

'먹기 사역'도 있었다. 끼니 때마다 세 명이 먹어야 할 분량의 식사를 억지로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 치워야 했던 것. 이런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 할 경우 역시 구타와 가혹행위가 뒤따랐다.

내무반에서 겪은 성추행도 심각했다. 군의문사위는 "일부 선임대원들이 후임대원들의 상의를 벗기고 애무행위를 하거나 성기를 만지는 등 성추행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거부하는 후임대원들은 어김없이 구타를 당해야 했다.

박 이교는 이런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교도대 전입 나흘만인 1996년 10월22일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교도대 측은 박 이교가 내성적 성격에 얼굴 피부병에 의한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으로 처리했다.

해당 교도대 중.소대장은 이런 가혹행위와 구타가 빈번히 발생되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부대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군의문사위는 지적했다.

단지 부대관리를 소홀히 한 것을 넘어 구타나 가혹행위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교도소 관계자가 대원들의 내무반에 들어와 후임 대원들의 몸에 난 상처를 보고도 "1번, 축구하다 다쳤다. 2번, 감시대에서 굴렀다. 3번, 뛰다가 넘어졌다. 이 중에서 몇 번이냐"고만 물어 사실상 구타와 가혹행위를 묵인했다는 지적이다.

강원도 제1야전군사령부 소속 야전부대에서 복무중 사망한 김 하사도 부대 회식 후 창고에 불려가 선임인 A하사로부터 주먹으로 가슴을 가격당해 쓰러져 사망했다.

그러나 당시 군 당국은 김 하사가 부대 회식 후 잠을 자던 중 구토로 인해 기도가 막혀 질식사했다고 발표했다. 12일 발표에서 드러난 것처럼 동료 병사가 이에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상급자는 이를 묵살했고 더 이상의 문제제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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