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사교육에 매년 15조 원을 쏟아 붓는 곳, 그러나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면 한참 헤매야 하는 곳."
연간 15조원, 일인당 1만5548시간 쏟아붓는 영어 학습
15일 삼성경제연구소(삼성연)가 발표한 '영어의 경제학'이라는 보고서에 드러난 한국의 자화상이다. 전형적인 '고비용-저효율'사례인 셈이다. 그렇다고 영어를 외면하고 살 수는 없다. 어떤 대책이 마련돼야 할까.
삼성연에 따르면 한국인이 중학교에서 대학교까지 10여 년 간 영어 공부에 쏟는 시간은 약 1만5548시간에 달한다. 영어 사교육에 쏟는 비용도 연간 15조 원에 이른다. 한국 전체 학생 1193만5000여 명이 각각 연간 120만 원씩 영어 사교육에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데 쓰는 비용도 엄청나다. 2004∼2005년 세계 토플 응시인원(55만4942명) 중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8.5%에 달한다. 매년 토익·토플 등 영어시험 응시에 쓰이는 돈이 7000억 원 이상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영어구사 수준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동아시아 경영환경 정보 제공업체인 PERC(Political and Economic Risk Consultancy, 정치경제위험컨설팅)가 최근 아시아 12개 국 중 한국을 '영어로 대화하기가 가장 힘든 나라'로 지목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굳이 나라 밖의 시선에 비춰보지 않아도 결과는 비슷하다. 2003년 말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시민 중 74.2%가 영어로 의사 소통하는 데에 무리를 느낀다고 대답했다.
북유럽 학생들은 학교서 배운 영어로도 충분하다는데
이런 '고비용-저효율' 영어 학습 방식을 극복하기 위해 삼성연은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의 영어 학습 모델을 참조할 것을 제안했다.
이들 국가들 역시 영어를 외국어로 가르치지만, 한국에 비해 매우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높은 성취도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의 경우 초등학교 4학년부터 9학년(한국 학제로 중학교 3학년)까지 학교에서 주당 2~3시간 영어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학생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비결은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교사들의 존재.
이런 인식에 따라 삼성연은 지난 3일 교육부가 내놓은 '우수 영어 교사 확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고무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당시 교육부는 2010년까지 모든 영어 교사가 영어로 수업을 할 수 있게끔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의사소통만 되면 충분…"'글로비시(globish)' 보급하자"
하지만 영어 교사들의 자질을 높이는 것만으로 유럽인과 다른 어족에 속하는 한국인들이 쉽게 영어를 배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단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해법이 절실하다.
삼성연이 제시한 방안은 '글로비시'의 적극적 활용. 글로벌(global)과 잉글리시(english)의 합성어인 '글로비시(globish)'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도 손쉽게 배워서 쓸 수 있도록 고안된 '간편형 영어'를 가리킨다.
프랑스인 장 폴 네리에르가 고안한 글로비시는 1500단어만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어를 구사하게끔 돼 있다. 이를테면 'nephew'(조카) 대신 'child of brother'(형의 아이)라고 표현하는 것.
삼성연은 "영어를 상용어로 쓰는 필리핀조차 성인의 15%만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며 "모든 한국인이 글로벌 표준 영어를 구사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완벽한 영어가 아니라 의사소통이 가능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삼성연은 영어 의사소통 장애에 대한 방안으로 '자동번역시스템'에 대한 투자 확대와 외국인 유학생의 적극 유치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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