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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저주 보며 '안병무'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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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저주 보며 '안병무'를 떠올린다"

민중신학자 안병무 10주기 기념 심포지엄 열려

미국 뉴욕항을 지키던 자유의 여신상이 결혼했다. 남편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콜럼버스 동상.
  
  미 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해 지난 1992년 10월 12일, 미국 정부가 마련한 행사의 일부다.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을 결혼이라는 아름다운 단어에 비유하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당시의 유럽인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였을 게다. 하지만 미 대륙에 원래 살고 있던 이들이라면 뭐라고 대답할까? 알 수 없다. 그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고 죽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듣지 못한 대답의 힌트가 콜럼버스의 둘째아들이 남긴 말에 있다.
  
  "하느님의 지존하심은 인디오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생필품의 부족과 질병까지도 보내주어 그들의 숫자가 전에 비해 3분의 1로 줄어들게 하셨다. 이것을 통해서 분명해진 것은 오직 하느님의 손과 그의 고귀한 뜻을 통해서 그같은 놀라운 승리와 원주민들의 굴복을 가능하게 해 주신 것이다."
  
  불과 한 세대 만에 원주민의 수가 3분의 1로 줄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고귀한 뜻'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자신의 외아들을 보내 '사랑'을 가르친 하느님의 뜻으로 벌어진 이런 참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랫동안 수많은 양심적 기독교인들을 괴롭힌 질문이다. 10년 전 타계한 고 안병무 박사도 그렇게 괴로와 하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민중을 중심에 놓고 끊임없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다"
  
  '지구화시대 예수·민중·평화'라는 주제로 고 안병무 선생 10주기 추모 국제학술심포지엄이 16일 서울 중구 정동 성공회대성당에서 열렸다. 한반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신앙, 민중과 함께하는 신앙을 평생 화두로 삼았던 안병무의 삶이 한미FTA, 북핵 사태 등으로 어수선한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메시지를 되새김질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이 자리에서 폴커 퀴스터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교수는 '예수와 민중을 다시 생각해 보기 : 안병무가 남긴 것'이라는 발표에서 "안병무는 자신이 유학한 독일 신학의 전통을 깊이 이해하되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면서 "독일 신학계가 간과한 민중과 실천을 중심에 놓고 민중에 대한 예수의 무조건적 사랑을 강조했던 사람"이라고 평가 했다. 이어 그는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 자세야말로 안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유산"이라고 지적했다.
  
  안병무가 세우고 이끌어 온 한국신학연구소는 1970~80년대 진보적 기독교 신앙의 중추 역할을 해 왔다. 한국신학연구소와 안병무가 교수로 재직했던 한국신학대 등에서 그와 함께 활동해 온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의 술회가 이어졌다.
  
  박 목사는 '지구화 시대의 민중과 평화'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민중신학을 지향했던 안 박사는 민중의 아픔 속에서 깨어진 평화를 보았다"라며 "안 박사의 민중신학은 결국 평화신학을 향해 나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안 박사가 1980년대 한신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세운 평화연구소를 예로 들면서 "당시의 분위기나 요구를 고려하면 '통일연구소'가 더 적절했겠지만 안 박사는 보다 근본적인 지향을 담아 '평화연구소'를 세웠다"라고 덧붙였다.
  
  세계화의 저주 속에서 '십자군식 평화'에 대한 반성 절실
  
  이어 박 목사는 "오늘날 평화신학은 두 가지 상반된 유형 사이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절대적 평화주의'와 '십자군식 평화'를 소개했다. 그는 "'절대적 평화주의'가 초대 교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예수의 원수사랑 계명을 순수하게 지키자는 것이라면 '십자군식 평화'는 중세 말엽 기독교의 타락과 함께 기독교와 이슬람의 적대관계를 역사적으로 정형화시킨 평화"라고 설명했다.
  
  박 목사는 이런 십자군식 평화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정의로운 전쟁론'을 낳았다면서 최근의 이라크 전쟁과 북핵 실험을 둘러싼 갈등은 기독교 전통 속의 '정의로운 전쟁론'에 대해 평화신학과 운동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십자군식 평화의 또 다른 사례가 콜럼버스의 항해로 대표되는 서구 기독교 문명의 전파과정이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는 "콜럼버스 이래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언어와 의복뿐 아니라 가치관과 관습까지 서구의 것을 강요받아 왔다"면서 "오늘날 세계화도 민중에게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15세기 이후 근대를 거치며 인류 사회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획득한 서구 기독교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콜럼버스는 세계화를 통해 '하느님이 승리하실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승리한 것은 맘몬(돈의 신)"이라며 "미국 중심의 세계화가 절정에 다다른 지금,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삶과 사상은 더욱 소중한 울림으로 다가온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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