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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원하면 평화의 배낭 메고 떠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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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원하면 평화의 배낭 메고 떠나세요"

[화제의 책] 임영신의 <평화는 나의 여행>

그는 해외여행을 참 많이 했다. 지난 4년간 20개가 넘는 나라를 여행했고 횟수로 따지면 40여 차례가 넘는다. 남들이 보기에 충분히 부러울 만큼 전세계 곳곳을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넘나들었다.

그는 또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여행은 대부분 '홀로' 떠난 여행이었다.

그의 여행은 몇몇 남다른 점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의 여행을 '평화 여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여행의 목적은 대체 무엇일까?

2003년 이라크에 다녀온 이후 이런 질문들을 수없이 받았던 임영신(38) 씨. 그가 마침내 자신의 경험담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생각들을 모아 <평화는 나의 여행>(소나무 펴냄)이라는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

임영신 씨는 참여연대와 녹색연합에서 협력간사로 일했으며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아름다운 재단'의 모금팀장으로도 활동했다.

"우리가 전쟁보다 강한 일상을 가졌다는 걸 볼 수 있도록"
▲ ⓒ프레시안

"이라크 국경 근처에서 우리는 또렷이 들었습니다. 48시간 안에 이라크를 떠나지 않으면 누구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부시의 선전포고를…. 그렇게 전쟁이 시작되는 소리를…."

그의 첫번째 '평화 여행'은 2003년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전쟁이 일어나기 약 보름 전부터 이틀 전까지 이라크에 다녀온 일이었다.

그 곳에서 임 씨는 전쟁을 앞둔 상황에 놓인 이라크인들을 만났다. 그러나 그가 본 이라크는 '전쟁을 앞둔 나라'가 아닌 이미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였다. 걸프전에서 사용된 열화우라늄탄으로 인해 다섯 명의 한 명 꼴로 기형아가 태어나는 도시 바스라. 그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전쟁이 끝나고 올 보이지 않는 죽음들"이라는 사실과 마주쳤다.

또 그는 이미 걸프전을 겪었던 이들이 '평화롭게' 전쟁을 맞이했던 모습을 마주치기도 한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기 며칠 전 이라크의 모술에서 만난 한 쌍의 부부와 나누었던 대화를 소개했다.

"5년간의 연애 끝에 이제 막 결혼했다는 그들. 아름다운 아내는 작은 의자를 하나 내어주며 주전자에서 끓고 있던 뜨거운 차 한 잔을 나누어 줍니다. 차를 마시다가 묻습니다. '전쟁이 오고 있어요. 두렵지 않은가요?'

부부 중 남편이 대답합니다. '1991년 걸프전 때도 그랬어요. 전투기가 저 강위로 날아가는 걸 보면서 여기, 이 강가에서 이렇게 차를 마셨어요. 다시 전쟁이 온다 해도, 폭탄이 쏟아진다 해도 이 강가에 와서 물을 끓이고 차를 마실 거예요. 전쟁이 우리들의 일상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는 걸 그들이 볼 수 있도록. 우리가 전쟁보다 강한 일상을 가졌다는 걸 볼 수 있도록."




전쟁의 악몽으로 고통받는 이라크 아이들

미국 부시 대통령이 '전쟁이 끝났다'고 선포한 2003년 4월, 임 씨가 다시 찾은 이라크에서 그를 맞았던 것은 지난번처럼 전쟁의 후유증 속에서도 환히 웃던 이라크인 친구들이 아니라 승자의 인사를 건네는 미군의 탱크와 검문검색이었다.

또 마취제를 들고 병원을 찾은 그는 그곳에서 "총과 폭탄에 다치거나 다리와 팔을 잃은 어린아이들이 병원 마당에서 실려오는 시체들, 잘린 다리를 가방에 들고 들어서는 사람을, 총에 맞아 온 몸이 피범벅이 된 채 들어서는 소녀와 같은 전쟁의 결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72%의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 가족이나 친척의 죽음을 목격했다 합니다. 그 아이들의 절반은 폭격으로 사람이 죽는 것을 직접 보았다 합니다. 그곳의 아이들 중 90%는 자신들이 전쟁으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답했습니다.

90%의 이라크 아이들이 전쟁을 영상으로 사진처럼 기억하고, 반복되는 꿈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합니다. 84%의 아이들이 자신은 어른이 될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걱정한다고 합니다."


임 씨의 이 같은 경험은 한국에 돌아와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과 '평화교육'을 위해 활동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시민활동가들과 함께 '이라크 평화네트워크'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충북 제천의 간디학교에서 평화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 임 씨의 여행에서 길잡이를 해주었으며 그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었던 이라크인 수아드 씨는 그 이후 한국에 초청돼 전쟁의 잔혹함을 증언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타인의 고통에 울 수 있을 때 평화는 시작된다"

이라크에 다녀온 뒤 임 씨는 '피스보트(Peace Boat)'에 올라 베트남, 인도, 스리랑카, 에리트레아, 레바논을 여행했으며 독일, 프랑스, 스위스, 필리핀 등지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와 평화단체들을 만나는 '평화여행자'가 됐다.

일본의 활동가들이 전개하는 일종의 평화운동인 '피스보트'는 한 해에 세 바퀴씩 지구를 일주하는 가운데 수백 명의 승객과 게스트, 자원봉사자 등이 함께 여행하며 평화와 전쟁의 이면을 보게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임 씨는 이 곳에서 해군제독으로부터 평화운동가로 변신한 인도의 반핵 군축 전문가 람다스 씨를 만났고, 올리버 스톤의 영화 <하늘과 땅>의 원작자인 베트남 여성 랠리 헤이슬립을 만났으며 20년간 분쟁지역에서 생을 보낸 노나카 씨를 만났다. 그밖에도 세계 각국에서 공동체를 꾸리거나 평화운동,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난 임 씨는 그들이 어떻게 현재의 삶의 주제인 '평화'까지 오게 됐는지 듣는다.

세 번째로 이라크를 다시 찾았던 임 씨는 이곳에서 만난 이라크 평화팀의 리더이자 미국의 유명한 평화운동가인 캐시 캘리의 말을 전해주기도 한다.

"1996년까지 교사로 오랫동안 일했어요. 그 해 몇몇 사람들과 함께 이라크에 오는 여행을 했지요. 그 첫 여행에서 참 많이 울었어요. 경제제재라는 정치경제적 용어가 어떻게 사람들을 그토록 비참하게 유린하는지, 전쟁은 끝났지만 그때 쓰인 무기들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참혹하게 아이들을 학살해 가는 것인지….

그러나 우는 것으로 평화가 오지 않아요. 타인의 고통에 울 수 있을 때 평화는 시작돼요. 그때부터 더 많은 여행을 하기 시작했지요. 이라크에 오갈 때마다 경제제재로 수입이 제한되는, 그러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인 연필이나 의약품 같은 것들을 가져다줬어요."

"평화로 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바로 길"

'평화로 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바로 길'이라는 구절을 책 가운데 끊임없이 되새기는 임영신 씨는 '평화여행'을 떠나길 원하는 이들을 위해 책의 마지막에 '평화여행 길라잡이'를 덧붙였다.

평화운동, 그리고 구호 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단체들을 소개한 '길라잡이'를 통해 임 씨는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의 배낭을 메고 떠나라"며 그의 여행팁을 독자들에게 넌지시 알려준다.

임 씨는 앞으로 평화단체의 개척자들을 비롯해 여러 활동가들과 함께 분쟁지역 아이들을 위한 '평화도서관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첫 번째 활동으로 인도네시아의 무력 침공으로 50년간 전쟁 속에 사는 아체 지역에 평화도서관을 만들 예정이며, '평화 헌책방 장터' 등 바자회를 통해 도서관 건립을 위한 기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전쟁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 있어 전쟁이 일어나듯,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는 죽어도 좋다는 전쟁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왜 평화여행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랑 때문이라고.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이 제게 부어준 커다란 사랑."

여행을 통해 사람을 만나 삶과 사랑을 배웠던 임영신 씨. 그의 '평화 여행'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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