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둘러싸고 헌법적 논쟁이 한창이다. 처음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정치집단 간 정치싸움이겠거니 생각하고 지나치고 있었는데 어느새 헌법학자들도 이 문제에 개입해 들어오고, 급기야는 국회에서 헌법수호라는 구호까지 나오고 있어 그간의 헌법적 논쟁에 대한 헌법학자로서의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헌법재판소장은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는 것의 의미는?
헌법 제111조 제2항에 따르면 헌법재판관 9명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그 중에서 3인은 국회가 선출하는 자를, 또 다른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 국회 몫은 국회 선출→대통령 임명의 단계를 거치고, 대법원 몫은 대법원장 지명→대통령 임명의 단계를 거친다.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관의 경우에는 선출안을 심의하기 위하여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거친 후 국회가 선출하고 나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국회법 제46조의3 제1항). 국회의 선출절차를 거친 자의 법적 지위는 '헌법재판관 후보자'다. 대통령의 임명행위를 통하여 비로소 '헌법재판관'이 되는 것이다. 다만, 국회의 헌법재판관 선출 행위는 대통령의 임명권을 기속한다.
헌법은 대법원을 구성하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모두 그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헌법 제104조 제1항, 제2항). 대통령이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송부하면 국회는 위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열어 청문을 실시한 후 절차를 거쳐 동의를 하고, 그 후 대통령이 대법원장 또는 대법관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헌법은 헌법재판소를 구성하는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중 오로지 '헌법재판소장'에 대해서만 그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111조 제4항). 권력분립의 원칙 상 어느 기관이 더 우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없는, 두 개의 최고 사법기관의 인적구성 방법과 절차에 대한 헌법의 이러한 혼란스러운 태도가 일으키고 있는 파장은 곧바로 국회법을 둘러싼 논란으로 이어졌다.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규정하고 있는 국회법 제46조의 3이 등장한 것은 2000년 2월 16일이다. 이 조항에 따라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기 전에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대법관들과는 달리 헌법재판소장을 제외한 헌법재판관 8명은 모두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의 청문대상이 아니었다. 헌법의 혼란이 국회법의 불균형을 초래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고위 공직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국무위원,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총장까지도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국회법을 개정하기에 이르렀다(국회법 제65조의2).
그러나 이들의 인사청문을 관장하는 기구는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아니라 각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개최하는 인사청문회다. 국회법은 인사 관련 청문을 '인사청문특별위원회'와 '인사청문회'로 이원화시킨 것이다.
여기에서의 이원화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사청문 대상자가 갖는 헌법과 법률 상의 지위와 권한의 높낮이다. 그것이 높은 경우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의 청문대상으로 하고, 그것이 낮은 경우 소관 상임위원회의 인사청문회로 끝내도록 한 것이다. 두 개의 청문회는 양자택일적인 것이지, 대상자에 따라서 두 절차를 모두 거쳐야 하는 병존적인 것은 아니다. 이것이 국회법의 입법취지를 올바로 해석하는 것이다.
국회가 국회법을 개정해서 헌법재판관도 인사청문의 대상자로 규정한 것은 2005년 7월 28일이다. 국회법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국무위원,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총장 등을 인사청문 대상자로 규정한 것은 2003년 2월 24일이므로, 이들보다 헌법적 격이 훨씬 더 높은 헌법재판관을 가장 늦게 인사청문 대상자로, 그것도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사위원회의 청문대상자로 규정한 것이다.
헌법재판관의 헌법적 지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권력적 균형관계를 고려한다면 국회법은 헌법재판관을 당연히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의 청문대상자로 규정했어야 한다. 그것도 대법관과 마찬가지로 2003년 2월 4일에 이미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의 청문대상자로 규정했어야 한다. 헌법조문과 법률조문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형편 없는 이해력이 헌법재판관의 지위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헌법재판관의 격을 깎아내리는 행위, 즉 헌법침해적 입법행위를 한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장의 경우 어떤 청문절차를 거쳐야 하는가? 문제제기의 단초가 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장은 재판관 중에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라는 헌법 제111조 제4항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은 '재판관' 중에서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해야 하는데 전효숙 씨는 '재판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재판관' 또는 '재판소장'을 '임명'했나? 그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한 것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지명'한 것이다. 국회의 동의를 얻은 후 대통령이 임명하는 순간 전효숙 씨는 헌법재판관과 헌법재판소장으로서의 지위를 동시에 취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모든 헌법재판소장의 임명을 이런 식으로 해 왔고, 그렇게 하는 데 헌법위반의 문제는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전효숙 씨는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의 청문대상자인가, 아니면 법사위원회의 청문대상자인가, 그것도 아니면 두 개의 청문절차를 모두 거쳐야 하는가? 만약 두 개의 청문회를 모두 거쳐야 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국회법이 규정한 인사청문의 대상자들 중에서 유독 (헌법재판관의 지위와 헌법재판소장의 지위를 동시에 취득하는 경우의) 헌법재판소장에 한해서만 청문회 절차를 이중으로 거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중절차의 이행을 요구하는 국회의원들은 이 부분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헌법재판관을 단지 법사위원회 인사청문의 대상으로 격하시킴으로써 헌법을 침해하고, 헌법재판소장에 대해서는 이중절차의 이행까지 강제함으로써 헌법재판소의 헌법적 위상을 뒤흔드는 또 다른 헌법침해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임기 3년과 6년
전효숙 씨를 헌법재판관의 지위에 그대로 둔 상태에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했다면 그 임기는 3년인가 아니면 6년인가? 이 부분에 관한 명시적인 법조항은 없다. 헌법은 단지 헌법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는 조항만을 두고 있어서 해석을 필요로 한다.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되기 위한 전제조건(여기에서의 전제조건은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신분적 기념이다)은 헌법재판관의 지위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관의 지위를 선행적으로 취득한 후 비로소 후행적으로 헌법재판소장의 지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해석한다면 이는 헌법 조문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아니라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기교적인 해석이라는 비판, 그리고 법실증주의적인 해석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헌법재판관의 지위와 헌법재판소장의 지위는 선ㆍ후의 순서로 취득할 수도 있고, 동시적으로 취득할 수도 있다.
문제는 현재 헌법재판관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국회의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의 인사청문과 동의 절차를 거쳐 대통령으로부터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을 받는 경우 그 임기는 얼마로 보아야 하는가이다. 헌법재판소장은 헌법재판관의 지위를 아울러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헌법재판관의 지위는 헌법재판소장 지위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그 임기는 헌법재판관의 잔여임기라고 보아야 한다.
헌법재판관의 지위를 이미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해야 하는가? 달리 말하면 헌법재판관의 지위를 사퇴한 후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헌법위반인가? 그렇게 보아야 할 헌법상의 근거규정은 없다. 또한 헌법이론적으로도 헌법재판관의 지위를 사퇴한 자를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한다고 해서 그것을 가리켜 헌법위반이라고 말할 수 없다. 헌법은 그것을 임명권자의 선택에 맡겨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만약 이렇게 해석하면 그것은 후임 대통령의 헌법재판소장 임명권을 박탈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관의 임기를 달리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을 자기 손으로 임명하지 못하는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경우를 이미 예상하고 있다.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때 반드시 자신이 지명한 3명의 재판관 중에서 1명을 임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회가 선출한 3인 중에서, 또는 대법원장이 지명한 3인 중에서 누군가를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가령 대법원장이 지명한 자를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한다고 해서 대법원장의 재판관 지명 몫이 대통령의 몫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직 헌법재판관이 사퇴를 한 후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을 받는 경우 그 몫은 대통령의 몫으로 처리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받기 위하여 사퇴한 재판관을 제외한 8인의 재판관 중 대통령이 지명한 재판관이 이미 3인을 채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사퇴한 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이 지명하는 재판관의 몫이 4명으로 되고, 이는 다른 헌법기관의 재판관 몫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며, 이는 곧바로 헌법위반이 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법에 대한 올바른 지식부터 갖춰라
입법기관으로서의 국회를 가리켜 국가 의사결정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법치국가에서 국가의 정책은 국회의 입법을 토대로 해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과거 헌법재판소가 없던 시절 국회의원들이 법률을 제정해 놓으면 그것에 대한 법적 시비를 가릴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한때 헌법위원회가 있었지만 그것은 양로원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법원이 위헌법률심사권을 가지던 때가 있었지만 법원은 사법소극주의로 일관했다. 그나마 법원은 국가배상법에 대한 위헌판결 하나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대노(大怒)를 샀고, 이는 유신헌법에 의한 법원의 위헌법률심사권 폐지로 귀결됐다.
그러나 1988년 헌법재판소가 설치된 이래 국회가 제정한 법률조항들이 많게는 1년에 수십 건씩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소멸되어 갔다. 1987년 개헌 당시 헌법개정안을 기초하던 여야 의원들조차도 헌법재판소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그러한 안일하고 방만한 자세와 태도가 헌법 제111조부터 제113조에 이르는 헌법재판소에 관한 조항을 엉성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헌법적 지위와 임무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몰이해가 '헌법수호'라는 3류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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