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뻔한 이야기로 치부되는 소재들 중의 하나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다. 한국인이라면 이 '위안부'에 대해 모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안부', 이 말에 작은 따옴표를 붙여야 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우리가 실제로는 너무 모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과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다룬 만화 <'위안부' 리포트>(길찾기 펴냄)가 나왔다. 그간 '위안부' 문제는 주제의 '무거움'만큼이나 이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만화로 접근한 이번 작품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지난 15일 한 네티즌이 이 만화를 부분 발췌해서 올린 '블로그 기사'는 하루 조회수가 20만을 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이 만화를 그리게 된 것일까?
작가 정경아 씨는 "이라크전이 일어났던 2003년, 전쟁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이번 작품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 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흔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를 꼬집었다. 그 중 대표적인 오해는 '위안부' 피해자인 할머니들을 '불쌍하다'고만 여기는 시각이다. 이미 세계 여성운동의 중심이 된 그녀들은 '불쌍한 할머니'의 수준을 넘어서서 '용감한 여성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경아 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과거사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오늘날 전세계 인신매매, 성범죄, 여성인권 문제들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국제 여성운동의 핵심 이슈로 자리잡은 지 오래"라며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다면 똑같은 범죄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발생한 배경에는 당시 공공연했던 인신매매 시장이라든가 피해자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게 만든 우리의 편견이 자리잡고 있었고 이런 문제들은 한국에서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며 "따라서 '위안부' 문제는 곧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처럼 '현재진행형' 사안인 '위안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는 더 알아보고 해결하려는 노력없이 '슬픔과 울분'의 차원에서 멎어버리는 경우가 많고, 바로 그 대목이 자신으로 하여금 만화라는 친근한 매체로 '위안부' 문제를 접근하게 만든 동기였다고 정경아 씨는 설명했다. 지난 16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722차 수요시위 참가를 마친 정경아 씨를 만났다.
'위안부' 문제는 '현재진행형'
프레시안 : 특별히 일본군 '위안부'라는 소재로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정경아 :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을 찾는 외국인들은 이 곳에 얽힌 역사적 사실에 놀라고 당황스러워 하며 특히 관련자료를 많이 챙겨간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물 흘리며 마음 아파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이다. 자신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감정적으로만 대응하는 것이다.
상식으로 치부되며 더 이상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를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과거사 청산이 아니라 전세계 인신매매, 성범죄, 여성인권 문제와 연관돼 있고 실제 국제 여성운동의 핵심 이슈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할머니들도 당신들의 커밍아웃과 열심히 싸우는 행위를 통해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되길 원하고 있다. 이같은 문제들로 시선을 돌려보자는 의도로 만화를 그렸다.
프레시안 : '르포르타주'는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르포'라고 통칭되는 현지보고 기사를 이르는 말인데 '만화 르포르타주'라는 표현이 생소하다.
정경아 : 책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에 사실 이런 장르가 없었다. '지식만화'라고 하면 좀 더 쉽게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르포르타주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 문제가 단순히 역사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현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 또한 현재적이라고 생각한다. 또 현장취재에 기반을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르포르타주가 맞다.
프레시안 : 자료를 재미있게 만화로 풀어낸 것도 책이 지닌 의미겠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현재적인 문제라는 말은 잘 와닿지 않는 게 사실이다.
정경아 : 일단 정대협(한국 정신대문제 대책 협의회)에서 내걸고 있는 7대 과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인정과 국회 결의를 통한 사과, 법적 배상, 위령탑 건립, 역사관 건립 등등. 이런 것들이 하나의 강간사건으로서 이 문제가 처리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조치들을 통해 할머니들이 스스로의 명예를 회복하시고, 배상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건 일본정부가 해야 할 사항이다.
사실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그 당시 공공연했던 인신매매 시장이라던가, 우리나라의 강간에 대한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또 피해자들을 손가락질하는 편견이 문화 속에 있었다고 생각하고. 이런 문제들은 사실 매우 '현재진행형'인 사안이다.
한국은 아직도 인신매매와 성폭력의 '강국'이지 않나. 피해자에 대한 배려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안타깝게 여긴다면 인신매매, 성폭행 같은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이렇게 연결지어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범죄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도 그렇게 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는 곧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이다. 그런 성폭력을 둘러싼 의식을 제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여성에 대한 폭력, 성폭력 문제도 일본군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아는 문제'가 되버린 측면이 있다. 아직 변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정경아 : 돌파구는 결국 구체성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구체적인 어떤 것. 그리고 이것에 대한 아주 확실하고 현실적인 입장과 대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또 그런 것들이 연구나 만화, 운동 등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앞으로도 구체성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다.
피해자로서의 '나'를 떨치고 일어선 용감한 여성들
프레시안 : 한국에서는 특히 전쟁 피해자로서의 자기자신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 같다. 이런 면에서는 유대인들이 끊임없이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관한 영화 등의 작품을 생산하는 것과 비교된다. 물론 만화에서도 이런 시도는 드물었지만 한국의 문화 내에서도 전쟁 피해자로서의 '나'를 다룬 작품은 드물지 않았나.
정경아 :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당시 당하셨던 순간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해방 이후 마치 자신의 죄인 양 '난 더럽혀진 여자'라고 자학하면서 평생을 살아 왔다는 그 사실에 정말 마음 아프다. 과거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도 비슷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질곡을 겪어 왔고 그것을 정면 대응한다면 그것은 아픔과 스스로의 문제에 정면대결한다는 뜻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지 않나? 피해자로서의 자기인식은 그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유대인의 역사를 다룬 작품들도 사실 개별 평가가 가능하다. 가령 만화 르포르타주의 형식을 띤 슈피겔만의 <쥐>라는 작품에서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버지가 홀로코스트로 겪었던 경험을 얘기하면서도 현재 인종차별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아버지를 조명하는 것이다.
결국 당했던 자아의 상처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당했던 자가 현재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다른 이에게 또 다른 가해자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다룬 것이다. 피해의 경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물러서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훌륭하다고 본다.
우리나라 문화계에서 '질곡에 찬 역사'를 다루는 것은 찬성하지만, 그런 방식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이 사건이 어떤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었고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지, 우리 자신은 현재 어떤지 등등을 생각하며 만드는 훌륭한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피해자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기보다 오히려 일본에 대한 민족감정이 더 크게 앞서는 것 같다.
정경아 : 그것 또한 현실이다. 어쨌든 피해자가 많은 과거를 가져 온 역사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이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 도발도 많이 하지 않나. 그에 대해 민족적 울분을 터트리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조금 지나면 잠잠해진다. 그러지 않고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연관시키면서 문제를 좀 더 넓혀 생각하는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주기적인 화풀이로 끝날 테니까.
프레시안 : 할머니들이 피해자로서 스스로 운동가가 된 과정은 그런 점에서 일반여성들 및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점이 많은 것 같다.
정경아 : 오늘(16일) 수요집회에 뉴욕에서 온 한인 2, 3세들이 참가했다. 이들이 말하길, 할머니들의 커밍아웃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자긍심을 느꼈다고 하더라.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여성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불쌍한 여성이 아니다. 한국 여성운동의, 그리고 세계 여성운동의 기둥 같은 존재나 마찬가지다. 또 이제는 다음 세대 여성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앞장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 정부가 나설 차례"
프레시안 : 만화를 그리면서 자료는 어떻게 수집했나?
정경아 : 작품을 시작하기 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나의 지식 수준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작품을 하기로 마음먹고 자료를 조사해봤더니 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부터 15년 간 쌓인 자료가 상당하더라. 그런데도 일반에게 알려진 내용은 처음 알려진 수준 이상이 아니었다. 그만큼 널리, 깊이 알려지지 못하고 자료로 쌓여 있기만 했던 거다.
처음에는 인터넷으로 검색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양의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읽으면서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알게 되며 많이 놀랐다. 여러분도 알려고 한다면 자료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권 내용은 대부분 문서자료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실을 예정인 2, 3권에서는 현장취재 중심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 : 책에 대한 할머니들의 반응은?
정경아 :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께 한 권씩 나눠드렸다. 활동가, 자원봉사자들도 매우 좋아하더라. 대부분 사람들이 기뻐하며 필요한 일이라며 칭찬해줘서 나 역시 기뻤다.
프레시안 : 책은 읽은 독자들이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정경아 : 사실 대부분의 이들이 더 알려고 하는 의지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이제 한국정부가 외교적 차원에서 '위안부' 할머니들 피해에 관한 보고와 권리획득 노력을 할 차례다. 현재 할머니들이 '정부가 안일한 대 일본 외교로 행복추구권 등을 박탈당했다며 제출한 헌법소원 심판청구가 통과된 상태다. 이 심판에서 승소해 한국정부가 더욱 나설 수 있는 명분과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 언론에서는 할머니들을 '불쌍한 할머니', '도움이 필요한 동정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용감한 여성으로서,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평화와 인권운동이 어떻게 결집하고 있는지를 조명해주었으면 한다.
이 책이 일본군 '위안부'를 이해하는 데에 많이 '활용'되길 바란다. 책을 잘라서 보고서를 만들어도 되고, 활용의 여지가 많을 것이다. 만화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실제로 지난 15일 한 포털 사이트에서 책 앞부분에 실린 얀 할머니 이야기를 누가 편집해서 올렸다. 조회수가 상당했다. 사실 얀 할머니는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만화로 얘기했기 때문에 더 실감나게 다가온 것이라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이번에 낸 책은 1권이다. 2, 3권에서 다룰 내용은?
정경아 : 2권에서는 도쿄전범재판와 종전 처리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어떻게 취급됐으며, 왜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는가, 그리고 베트남전, 기지촌 문제 등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내용을 쓸 것이다.
3권에서는 91년 김학순 할머니의 발언 이후 지난 15년간 '드라마틱'하게 진행됐던 운동사를 다룰 예정이다. 여기에는 2000년 국제법정 등 세계 여성운동의 중심이 되기까지의 과정도 포함된다. 훌륭한 여성으로서의 할머니들의 모습, 그녀들의 운동사를 다룰 예정이다.
정경아 씨는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애니메이션 "마술피리"의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만화 활동을 시작했다. 에디뜨 피아프의 생애를 소재로 한 만화 <빠담 빠담>이 만화가로서의 데뷔작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01년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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