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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카스트로가 법정에서 외쳤던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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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카스트로가 법정에서 외쳤던 그 말

[화제의 책]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건강 악화에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그의 건강 악화가 사실일 경우 이어질 쿠바의 권력구도 변화와 중남미 좌파정부들에 미칠 영향이 목하 관심사다. 이와 동시에 많은 이들은 47년간 쿠바를 이끌어 온 혁명가이자 지도자인 카스트로의 세기가 저물고 있다는 사실에 복잡한 심사인 것도 사실이다.

20대의 젊은 변호사 카스트로가 법정에서 남긴 자기 변론이 눈길을 끄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혁명이 있기 전인 1953년, 몬카다 병영을 공격한 죄로 법정에 섰을 당시 그가 낭독한 최후진술을 포함해 세계 혁명가 25명의 법정 최후진술을 모은 책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엮음, 김준서·안미라·유경덕 옮김, 이매진 펴냄)가 출간됐다. 이미 1989년 국내에 같은 제목의 번역본이 발간된 적이 있지만 이번 출간이 첫 완역본이다.

프랑스대혁명 초기부터 1965년까지 200여 년 간 도처에 흩어졌던 문서를 모은 이 책에는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빌헬름 립크네히트, 칼 맑스, 오이겐 레비네 등 유명한 혁명가와 사상가들이 법정에서 진술했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들의 진술 뒤에 독일의 정치비평가이자 시인인 엔첸스베르거가 풀어놓는 혁명가들의 삶과 사상에 대한 해설 또한 흥미롭다.

"검사는 그렇게도 진실이 두렵습니까?"
▲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프레시안

"저는 시민병원의 이 작은 방에 서 있습니다. 이것은 재판을 비밀리에 진행해서 아무도 제 얘기를 들을 수 없게, 그래서 제가 말하려고 하는 사실들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

왜 검사는 저에게 26년형을 선고한 근거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 것입니까? 법률적, 도덕적, 정치적 근거가 전혀 없습니까? 그렇게도 진실이 두렵습니까? 저 역시 단 2분 동안만 진술해서, 7월 26일(몬카다 병영 습격일) 이래로 몇몇 사람들을 괴롭혀 온 그 문제를 여기서 언급하지 않길 바라는 것입니까?(…)

쿠바의 소농 85퍼센트는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고 늘 계약 해지를 통고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가장 비옥한 땅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의 손에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지역인 오리엔테 지방에서도 북쪽에서 남쪽에 이르는 해안가 토지 대부분은 미국 과일회사와 서인도제도의 소유로 돼 있습니다. 모든 것은 부조리합니다.(…)

저는 동료들 70명의 목숨을 앗아간 야비한 독재자의 광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감옥 역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유죄판결을 내리십시오.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입니다."

이 재판에서 카스트로가 쏟아낸 변론을 담은 책자는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는 이름으로 은밀하게 유포되며 혁명 운동의 근간이 되는 자료로 국제적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의 변론 속에는 당시 쿠바의 현실에 대한 카스트로의 날선 비판과 혁명 정부에 대한 구상이 담겨 있었다.

카스트로는 15년 형을 선고받고 피노스 섬에 감금됐지만 그 뒤 여론의 압력으로 사면돼 1955년 석방됐다. 석방 이후 그가 이끈 쿠바혁명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역사 속의 한 획을 그은 사건이 됐다.

"평화를 위협했다고? 그런 평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제 견해를 완벽하게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 법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법률이 아닌 정치적 고려의 산물입니다. 국가반역죄라는 죄목은 소비에트 정부가 무너졌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실패한 반역만이 반역으로 낙인찍힐 뿐 성공했을 경우 그것은 반역이 아닌 게 됩니다. 즉 국가반역죄는 법률적 측면이 아닌 정치적 고려의 결과일 뿐입니다.(…)

검찰은 제게 10일 동안의 총파업을 사주했다는 혐의를 둡니다. 물론 총파업 결의안을 상정한 사람은 바로 접니다. 그러나 현 정부는 단지 열흘이 아니라 수백 일에 또 수백 일을 수많은 노동자들을 직장에서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왜 검찰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의지로 행동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까?(…)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이 법원 건물 안에는 지금처럼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150~180마르크의 급료를 받는 관리들이 있습니다. 스파르타쿠스단의 숙소를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우리가 국가의 평화를 위협한 것이 아니라 그런 평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폭로했을 뿐이라는 걸 이해하실 것입니다.(…)

역사적 사건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검찰은 지도자가 민중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한 명의 지도자가 사이비 소비에트 정부 아래서 민중의 결함을 가려줄 수 없듯이 한두 명의 지도자가 사라진다고 해서 이 운동이 중단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오이겐 레비네는 러시아 출신의 독일 혁명가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공산당에 입당했고, 1918년 바이에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우는 데 참여했다. 그는 1919년 2월 혁명 지도부를 인계받아 '적색테러'를 행하며 '소비에트 공화국'을 구성했다. 그러나 그해 5월 정부군과 민방위대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백색 테러'를 가하며 700여 명을 체포하고 처형하는 가운데 공화국은 무너졌다.

레비네 또한 '백색 테러' 가운데 체포돼 즉결 군사재판에 넘겨져 사형이 선고됐고, 이틀 후 총살됐다. 그러나 그의 최후진술은 그 자신을 위한 변명이 아니라 노동자와 혁명에 대한 변호로 일관돼 있다.

"방관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죄"

"저는 제 정치적 신념과 행동 때문에 지금 이렇게 법정에 서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했습니다. 위태로운 남아프리카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제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로 몰수당한 모든 사람들의 신뢰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법조인으로서의 제 의무를 저버리고, 가족과 떨어져 제 정체성을 바꿨으며 망명자로서의 삶을 받아들였습니다. 정치 수감자, 망명자가 됐고 침묵을 강요받았으며 가택연금을 당했습니다. 저는 당시 일어난 일들을 방관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죄를 받게 됐습니다.(…)

저는 아프리카인들이 제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행동에 옮겼을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인들의 판단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칭 품위 있고 충실한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제게 유죄판결을 내려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아브람 피셔는 남아공의 변호사이자 정치 활동가였다. 그는 남아프리카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반인종차별 활동을 하며 넬슨 만델라 등 반아파르트헤이트 활동가들의 변호를 맡았다. 그는 1966년 5월에 반공산주의령을 어기고 사보타주를 모의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그의 죄목은 대반역과 사보타주였으며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74년 수감 중인 피셔가 암으로 위독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대중적인 석방운동이 벌어졌고, 피셔는 1975년 숨지기 몇 주 전에야 가택구금 형태로 가족 곁으로 옮겨졌다.

혁명가들의 '법정을 뛰어넘은 연설'

자신의 죄를 묻기 위해 열린 재판에서 스스로가 피고이자 변호인이 되어야 했던 이들의 최후진술과 변론에는 자신을 법정에 서게 만든 자기 자신의 사상과 감정, 그리고 열정이 녹아 있다. 가장 절박한 순간에 외쳤던 그들의 진술은 당시 사회가 처한 현실과 그들이 투쟁에 나선 이유,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들의 진술은 재판관과 검사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말이라기보다 법정을 뛰어넘어 대중을 향해 외치는 연설에 가까웠다.

때로는 극단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혁명가들의 진술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볼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각 사건의 법률적 측면이 아닌 그것들이 지니는 정치적 측면"이라고 말한다.

피고들은 검열법 위반, 대역죄, 사보타주, 국가안보 위협, 테러와 방화, 무장봉기, 폭도, 살인 등 갖가지 죄목을 적용받았지만 그들의 투쟁은 '형법에 의거'해서 설명할 수만은 없는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혁명에 대한 재판은 대체로 형식적인 절차조차 무시한 채 예외적으로 진행됐다"며 "그러나 혁명에 대한 재판이 이렇게 변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혁명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기능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혁명가들의 주장과 미래에 대한 예측 가운데는 2006년 현재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현실로 이루어진 부분도 있고 또 상당 부분 엇나간 부분도 분명 있다. 그러나 '실정법으로 혁명을 재단할 수 없다'는 그들의 말처럼 짧은 역사의 결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 또한 성급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아직 그들의 혁명은 '진행 중'인지도 모를 일이기에.

"실정법 위에는 역사라는 상급법이 있어 짓밟힌 민중의 존엄성을 위해 가차 없는 보복을 해줍니다. " (미하엘 바쿠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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