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 저녁이었다. 얇게 눈이 덮인 땅위에 옅은 안개막이 떠돌고 있었다. 땅으로부터 1미터쯤 되는 높이의 공기는 청명했으며 수정처럼 맑아 도저히 현실같지 않은 찬란함으로 빛났다. 해는 구름에 가리어 보이지 않았는데 언덕 꼭대기, 숲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평원을 굽어보는 나무가 있었다. 칠레 원산의 침엽수로 비늘 있는 일종의 전나무인 남양삼나무는 커다란 샹들리에와 비슷하게 쭉 뻗은 가지를 펼치고 있었다. 안개 속을 떠도는 푸른 나무들로 이룬 해적선, 세상의 전초기지에 있는 망루인 것 같았다. 그 나무는 고독과 유폐의 상징이었다." (장 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中에서) 「프랑스적인 삶」에서 주인공 폴 블릭은 오로지 나무만을 찍는 사진작가다. 그것도 한 그루만. 그는 온 세계를 돌아 다니며 나무와 마주 앉아 그 생각과 표정을 읽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핫셀블라드 카메라에 담아 낸다. 그의 책 <프랑스의 나무>는 대대적인 베스트셀러가 된다. 소설 속 폴 블릭이 그랬던 것처럼, 국내 최고의 사진작가 가운데 한 명인 구본창(53) 역시 이번에 독특한 작업을 해냈다. 얼마 전 서울 사간동의 국제갤러리에서 끝낸 '마음의 그릇(Vessels for the Heart) 전'은 그가 나무 대신 백자를 상대로 대화를 나눈 작품들을 모은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이번에 전시를 통해 선보인 작품들이 모두 한 출판사에서 묶어 펴낸 책을 통해 다시 대중과 만날 수 있게 됐다. 한길사에서 최근 발간한 그의 작품집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소개된 '마음의 그릇'을 비롯해 '속삭이는 낮은 숨소리(Deep Breath in Silence)', '드러난 얼굴들(Revealed Personas)' 등의 제목을 가진 총 세 권짜리 책이다. 이번 작품집이 그의 30년 가까운 작품 활동 모두를 쓸어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들을 통해 사람들은 그가 지금껏 사진을 통해 세상의 무엇을 취하려 했고 또 이제 무엇을 되돌려 주려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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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작가 구본창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작가란, 예술가란, 자신의 작품으로 불멸의 영생을 얻는 법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단 한 편의 작품 혹은 몇 편의 작품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을 만들어 가는 삶의 궤적을 통해 예술가는 대중들에게 영원 불변의 존재로 남게 된다. 구본창은 요즘 들어 부쩍 그 '궤적'을 보여준다. 그가 지금껏 선보인 작품들, 초중기작에 해당하는 '생각의 바다전'(90년)과 '굿바이 파라다이스전'(93년), '숨전'(95년), '태초에 전'(95년), 그리고 최근의 '탈 전'(2005년)과 이번 국제갤러리의 '백자 전'(2006년) 등을 생각하면 이 작가가 오랜 세월을 통해 점점 더 내면의 세계를 향한 궤적을 그려 왔음을, 그리고 그럼으로써 구도(求道)의 여정에서 고독하고 치열하게 싸워 왔음을 보여준다. 무엇 때문일까.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전시회를 끝내고 새 책까지 펴낸 그를 만났다.
-사진작가만큼 책을 낼 때 까다로운 사람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국내 출판 상황이란 게, 100% 마음에 들게 인쇄가 되는 수준은 아닌 것 같더라. 필름이 인쇄소로 넘어가 프린트되는 하루동안 꼬박 옆에 붙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다 채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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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작가 구본창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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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들을 보면… 대상에 대한 추상성이 점점 더 극명해지는 것 같다. "아마도 그건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박제화된 무엇에 대해 관심이 많아져서인 것 같다. 이번에 찍은 백자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치열했던 삶의 순간들이 모두 빠져 나간 것 같은 느낌, 시간 속에서 박제로 변해버린 느낌, 우리 모두 어쩌면 껍데기로만 존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 그 느낌이 궁극적으로 다가서는 곳은 어디인가? "연민이다."
- 세상에 대한? "그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내 안에 대한 연민이 아닐까?"
-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젊었을 때는 내가, 내 사진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했던 만큼, 또 늘 그 반대편 곧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했던 것 같고. 초기에 셀프포트레이트(자화상)에 빠지고 그걸 하면서도 인화지를 찢어 붙이거나 스크레치 등등을 했던 것도 세상과 나에 대한 강박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뒤돌아 보면 세상을 바꾸는 건 고사하고 세상을 제대로 아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든 것은 단지 흔적만이 남을 뿐이다. 쓰고 남은 찌거기 같은 느낌으로. 그런데 그게 바로 오늘의 '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고. 그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다는 생각이 든다."
- 당신의 그런 변화는 '숨 전'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더라. "맞다. 정확히 봤다. 그 전시회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던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나서 가진 것이었다. 가시기 전, 몇 년 동안 아버지를 홀로 모시면서 많은 걸 느꼈다."
- 아마도 그 이후부터 당신의 피사체는 점점 더 고립돼 간다. "그랬다. 나 스스로도 아버지의 죽음 이후 바뀌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 대상 하나에 집착하는 작가는 더러 있다. 소나무만 찍는 배병우 작가도 그렇다. 하지만 당신은 다르다. "어떤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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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작가 구본창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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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피사체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비(非)생물적인 것들이다. "흠… 맞다.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근데 아마도 그건 시간이 탈색된 느낌이 더 강하게 들어서일 것이다. 아마도 난 사물에 감정이입이 더 잘되는 거겠지.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볼만한 얘기인 걸.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관심이 적어 보인다?"
- 그렇다기보다는…좀 다른데… 이번 도자기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에게 마치 "너희들은 이제 더 이상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어"라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근데 흔히들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산다는 걸 보여준다고나 할까. 어쨌든 이번에도 역시 그냥 백자 사진, 그냥 도자기 사진은 아니다. "그렇지. 내 사진은 그냥 찍혀진 무엇이 아니고 만들어 낸 무엇이니까. 흔히들 연출 포토라고 부른다. 이번에도 여러 작업을 거쳤다."
- 사진을 왜 그렇게 계속 '만들어' 내는가? "난 사진이 눈에 보이는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내 내면에 들어 온 형태를 표현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 그건 미술인가, 사진인가? "미술이어도 되고 사진이어도 된다. 내가 생각하는 사진은 결과물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로 이해하면 된다,고 얘기하면 쉬울까?"
- 이번 작업의 '백자들'은 현실 속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아주 다르다. "맞다. 그렇게 찍은 것이다.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이미 백자는 오랜 세월을 통해 자신의 현실에서 빠져 나온 상태다. 백자를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작업 프로세스 가운데 하나는 바로 반사를 없애는 것이었다. 백자에 조명을 치면 반드시 반사나 그림자가 떨어진다. 그걸 없애기 위해 CG작업까지 했다. 물론 찍을 때 최대한 노출을 많이 줌으로써 조명을 최소화화기도 했고. 배경에 한지를 깐 것도 이번 작업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한지의 질감을 워낙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당신이 본 것처럼, 백자의 느낌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마치 초벌구이 느낌이 그대로 살아난다. 가마에서 처음 구워진 거친 상태. 그러니까 생명이 막 시작됐던 그 순간의 흔적을 찾으려고 한 셈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고."
- 도자기, 항아리만을 찍기 위해 7만2000km를 다녔다고 했다. "그랬다. 국내 박물관은 물론이고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등등까지. 백자가 있는 곳, 한국의 항아리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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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작가 구본창의 작품들ⓒ프레시안 무비 |
- 사진을 찍기 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박물관 안에 있는 도자기와 마주 앉아 가능한 한 오랜 시간동안 대화를 나누는 것. 가만히 백자를 응시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느낌이 온다. 그때를 포착하려고 애썼다. 그런 작업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협조가 절대적이었다. 이번 기회에 협조해준 모든 미술관, 박물관 관계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한다."
- 영화쪽과도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귀중한 영화들의 포스터 작업을 해 왔다. 특히 임권택 감독 작품들의 포스터. <취화선> 이전의 임 감독 작품 상당수를 내가 했다고 보면 된다.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 포스터도 내가 했다. 원래 영화 쪽과는 개인적인 연이 좀 닿아 있는 편이다. 시대적 추세에다 다소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탓에 어쩔 수 없이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또 졸업하자마자 어떤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가 6개월만에 때려치우고 난 독일로 도망을 갔다. 미술을 하러. 결국 사진을 배우게 됐지만. 근데 그렇게 입학과 졸업과 입사와 퇴사의 과정을 비슷하게 걸었던 사람이 바로 배창호 감독이다. 그도 그 회사를 때려치우고 영화를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 둘 다 비교적 '용감하게' 제 길을 찾은 셈이 된다. 배 감독과는 여전히 연락하고 산다."
- 당신의 작업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사진예술이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것? 사진이되 궁극적으로는 사진이 아니고, 사진이 아닌 것이 사진이 되는 지점까지? 사진을 사진으로 가두어 두는 세상이 아닌 곳? 아마도 그걸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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