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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스파이처럼 살도록 요구받는다"

중국 작가 샨사 인터뷰 "중요한 건 레질리언스"

시인을 꿈꾸던 한 소녀가 역사의 격랑에 휘말렸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시를 써왔다. 열일곱 살 때 출간한 시집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베이징의 별'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같은 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대학생들이 모였다. 당시 고교생이던 그녀도 시위에 참여했다. 그 속에서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시위대에 물을 떠주는 정도의 일을 했을 뿐이다. 곧 인민해방군의 탱크가 광장에 밀고 들어왔다. 이듬해 중국이 낳은 문학 신동으로 불리던 그녀는 조국을 떠나야 했다.

그녀는 프랑스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때까지 그녀는 프랑스어를 전혀 못 했다. 프랑스에서 그녀는 철학을 공부하고 화가의 비서로 일했다. 중국어로 시를 쓰던 그녀가 프랑스 땅을 밟은 지 7년 만에 프랑스어로 소설을 써냈다. 소설은 큰 호평을 받았다. 연이어 써낸 소설로 프랑스의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 그녀의 소설 판권을 놓고 대형 출판사들이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소설〈천안문〉, 〈바둑두는 여자〉,〈음모자들〉 등을 써낸 작가 샨사가 살아온 이야기다. 그녀의 소설은 모두 한국어로 번역돼 출간됐으며 국내에도 상당한 팬이 있다. 샨사가 얼마 전 한국에 왔다.

〈프레시안〉은 4일 오후 샨사의 소설을 출간한 현대문학사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프레시안〉: 당신의 소설이 섬세한 단문(短文)으로 권력과 정치 등 남성적인 주제를 담아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남성적 주제와 여성적 문체 사이에서 묘한 긴장이 느껴진다. 이런 긴장이 중국에서 태어나 천안문 사태의 충격을 겪은 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당신의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당신의 소설에 서로 섞이기 힘든 다양한 정체성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는 작가 내면의 풍경을 반영돼 있다고 이해해도 되겠는가?

샨사 : 나의 소설에서 복합적인 정체성을 띠고 있는 인물들의 내면 풍경을 엿볼 수 있다는 지적에 동감한다. 그리고 나는 중국인인 동시에 프랑스인이며 또 세계인이다. 복합적인 정체성을 띠고 있다는 지적은 옳다. 또 나는 여성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남성적인 놀이를 즐겨왔다. 정치와 권력을 다룬 남성적인 서사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처럼 서로 길항하는 복합적인 정체성이 내 문학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내면에서 서로 갈등하는 정체성들은 문학적 창조성을 낳는 에너지로 작용한다.

〈프레시안〉: 복합적인 정체성이 문학적 창조성을 자극한다는 답변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갈등하는 정체성 때문에 상처를 입은 적은 없나? 더구나 당신은 1989년 천안문 사태를 체험했다. 그런데 당신의 소설에서 천안문 사태의 충격이 남긴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의 흔적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당신이 겪은 상처는 당신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샨사 : 레질리언스(Resilience, 상처에서 회복하는 능력)가 중요하다. 역사의 상처가 반드시 트라우마를 남기는 것은 아니다. 내면의 굳은 힘과 레질리언스가 있다면 상처는 자산이 된다.

〈프레시안〉: 당신의 최근 소설 〈음모자들〉은 스파이(첩보원)를 소재로 삼았다. 스파이라는 소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스파이야말로 복합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 강인한 내면을 가진 이들을 형상화하기에 적절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샨사 : 그렇다. 나는 스파이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달리 누구나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살아간다. 또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도 흔하다. 복잡한 현실은 개인에게 매 순간마다 각기 다른 정체성을 취하면서 동시에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런 게 바로 스파이의 특징 아닌가. 우리는 누구나 스파이처럼 살 것을 요구받고 있다.

〈프레시안〉: 스파이에 대한 천착은 허구(픽션)가 갖는 의미를 묻게 만든다. 스파이는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허구를 생산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소설가와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샨사 : 지금은 허구의 힘이 더욱 소중한 시대가 됐다. 허구를 통해 오히려 현실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때때로 허구를 통해 현실에서 벗어난 꿈을 꿀 수 있다. 허구는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다. 허구를 다루는 장르인 소설을 계속 쓰고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레시안〉: 당신은 천안문 사태가 터진 이듬해인 1990년에 중국을 떠났다. 이후 16년 간 중국은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당신이 중국을 떠났을 당시의 중국 젊은이들과 요즘 젊은이들은 크게 다르다. 중국적 전통에서 벗어나 있는 당신의 소설은 중국의 어떤 세대에게서 더 큰 호소력을 갖는다고 보나?
▲ 천안문 사태를 겪은 뒤 중국을 떠나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샨사. 프랑스에서 9월에 출간되는 다음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의 연인과 같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샨사 : 정확하게 짚어서 이야기하기 어렵다. 각기 다른 세대가 서로 다른 이유로 내 소설을 좋아할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의 젊은 세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중국의 20~30대는 내가 중국을 떠날 무렵의 젊은이들과는 크게 다르다. 서구화된 요즘의 중국 젊은이들에 대해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자유분방하면서 테크놀로지에 익숙한 그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프레시안〉: 앞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스파이에 빗대어 이야기했다. 이런 스파이와도 같은 속성은 젊은이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질 것 같은데, 이같은 속성이 낳은 그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샨사 : 지금은 진실한 사랑이 힘들어진 시대다. 모두들 스파이처럼 살아가는 시대에 서로의 내면을 진실하게 드러내고 교감하는 사랑은 존재하기 어렵다. 물론 그래서 사랑은 더욱 소중하다. 내 소설에서 다루고자 했던 사랑도 이런 것이었다.

〈프레시안〉: 당신은 소설을 쓰지만 그림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화가의 비서로 일한 적도 있고 실제로 종종 그림도 그렸다. 요즘 문학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그 이유로 종종 지목되는 것이 영상예술의 성장이다. 언어가 아닌 시각 이미지의 힘이 강해지면서 문학의 입지가 위축됐다는 것이다. 문학과 미술을 두루 아우르고 있는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과연 시각 이미지는 언어예술인 문학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는가? 또 현 시대에 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샨사 : 이미지는 문학을 위협할 수 없다. 언어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다. 시각 이미지가 가질 수 없는 힘이다. 시대가 어떻게 바뀌어도 언어예술인 문학의 역할은 남아있다고 본다.

내 소설 〈음모자들〉에 이런 대목이 있다. "타도해야 할 것은 더 이상 정부들이 아니야. 그것은 민주적이건 전제적이건 모든 정부의 핵심에 둥지를 틀고 있는 그 개자식들이야." 컴퓨터 엔지니어로 신분을 감춘 CIA 요원 조나단이 하는 말이다. 우리는 적과 아로 구분되는 선명한 대립구도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 모든 개인과 집단이 그물코처럼 엮여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담아내는 데 있어서 문학은 여전히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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