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바둑사의 산 증인인 조남철 9단이 2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난 고인의 유해는 서울 삼성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이날 오후 현재 바둑계 인사들과 유족들이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있다.
1923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11세 때인 1934년 한국을 방문한 일본 바둑계의 거목 기타니(木谷) 9단과 둔 7점 접바둑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쳐 세상에 이름을 드러냈다.
당시 조 9단의 기재(棋才)를 눈여겨 본 기타니 9단은 3년 뒤 고인을 자신의 도장에 받아들였다. 고인은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기타니 도장에서 바둑 수업을 받은 지 4년 만인 1941년 입단에 성공하여 한국인 최초의 일본기원 전문기사가 됐다. 4년 동안 매일 새벽마다 도장 마당을 쓸며 바둑을 익힌 결과였다.
조 9단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당시의 감정을 이렇게 술회했다. "우리가 일본보다 못 사는 이유는 각 분야에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바둑을 내 전문분야로 삼아 우리나라에 보답하겠다."
18세 소년이 품었던 '기도보국(棋道報國)'의 다짐은 그의 일생이 됐다. 일본에서 프로기사로 활동하다 1944년 귀국한 고인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서울 중구 남산동에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을 설립했다. 당시 동네 아낙네들은 조 9단이 지나갈 때면 "저기 노름대장 간다"고 쑥덕거렸다고 한다.
1950년 6월 '한성기원'에서 소집한 첫 바둑대회는 한국전쟁 발발로 인해 포성이 울리고 피란민이 북새통을 이루는 가운데 치러졌다.
현재 기라성 같은 바둑 스타들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한국 바둑의 저력은 이렇게 고인이 뿌린 씨앗에서 자라났다.
고인은 국내 최초의 신문기전인 1956년 국수전에서 초대 우승자가 된 뒤 9연패를 이룩하는 등 1950~60년대에 무적시대를 구가하며 한국 바둑의 거목으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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