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각본 도리스 되리
출연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 크리스티안 울멘, 시몬 버호멘
수입,배급 세종커뮤니케이션즈 |
등급 15세 관람가
시간 106분 | 2006년 |
상영관 씨네큐브, 메가박스 어부와 물고기에 관한 동화가 있다. 어느 날 한 어부가 물고기 한 마리를 낚는다. 그런데 물고기가 난데없이 말을 건다. 자신은 마법의 고기이니 살려주면 대가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것. 원하는 게 별달리 없는 어부는 대신 아내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부탁하지만 문제는 아내가 그 누구도 따를 자 없는 욕심쟁이라는 점이다. 이 동화는 결국 욕심을 너무 부리면 큰 낭패를 당한다는 뻔한 결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도리스 되리가 조리하면 뻔한 우화도 환상으로 버무려진 영화가 되는 법. 스물아홉 노처녀의 팍팍한 일상을 판타지로 잡아낸 <파니 핑크>(1994)의 마술적 영화 기법이 <내 남자의 유통기한>에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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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유통기한 The Fisherman and his Wife ⓒ프레시안무비 |
섬유 디자이너 이다(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는 일본을 여행하며 작품을 구상 중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미래 인생을 구상하게 된다. 히치하이킹으로 우연히 만난 물고기 수입자 오토(크리스티안 울멘)와 첫눈에 반해 일본식으로 후딱 결혼식까지 치러버린 것. 그러나 독일에 돌아와 시작된 그들의 결혼 생활은 달콤하지만은 않다. 결혼식은 후딱 치를 수 있지만 생활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일본 산 '잉어'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어 디자이너로 성공의 길로 들어선 이다와 별다른 성공 의지 없이 자유롭게 현재를 즐기는 자유주의자 오토는 사사건건 부딪히고,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서 둘의 대립은 점점 팽팽해진다. 가정의 행복과 사회적 성공, 부와 명예,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이다는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현대 여성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내 남자의 유통기한>은 가정과 일 사이에서 곡예하듯 살아가는 현대 여성을 사회구조적 '피해자'로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 대신 여성 자신에게도 반성을 요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고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빠진 아내를 수동적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남편을 긍정하지도 않는다. 도리스 되리 감독은 아내에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의 태도를 견지하는 대부분 남편들의 이러한 수동적 태도는 슈퍼우먼을 기대하는 또 다른 심리의 발로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사랑으로 만나 생활을 거치며 점점 닳아가는 남녀의 관계를 그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 남자의 유통기한>이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류의 심각한 톤으로 흐르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밝고 명랑하다. 이다와 오토의 이야기에 뒤섞여 영화의 또 다른 '화자'로 등장하는 이는 이들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잉어 부부'. 끔뻑끔뻑 느리게 움직이는 잉어 입을 통해 만담가 수준으로 쏟아지는 '결혼 생활 선배'로서의 조언은 따가운 동시에 따스한 유머가 깃들어 있다. 도리스 되리의 이 같은 기발한 상상력은 잉어 부부의 내레이션 이외에도 영화 전편에 골고루 펴져 있어 엉뚱하고 기묘한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아름답고 소박하게 표현된 시골 일본의 풍경, 잉어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다의 화려하고 기발한 패션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1976년 데뷔한 이후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으로, 뮤지컬 연출자이자 소설가로 활약하고 있으며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이기도 한 도리스 되리. 그녀의 경험이 두둑이 묻어있는 <내 남자의 유통기한>은 삶과 관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선 여성과 남성, 모두의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밝고, 맑고, 명랑하게 전한다. 동화와 현실이 만나면 현실을 더 날카롭게 꿰뚫는 한 편의 판타지가 만들어진다는 걸 경험하게 하는 <내 남자의 유통기한>은 지난 4월 열린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 상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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