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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경제 교과서의 쟁점화, 방향이 잘못됐다"

사회경제학회 토론회…"오히려 시장주의 주입 경계해야"

현행 중·고교 교과서의 내용이 지나치게 반(反)시장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경제계에 대해 진보적 학술 진영이 대응에 나섰다.

한국사회경제학회는 13일 서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중·고교 경제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진보적 경제학자들과 중·고교 교사들이 참가한 이날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중·고교 경제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지, 중등교육 과정에서 경제교육이 지향하는 목표가 어떤 것이 돼야 하는지 등에 대해 토론했다.

"경제계가 교육부와 손잡고 시장 물신주의 가르치려 한다"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현행 중·고교 경제 교과서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제원론〉의 요약본에 불과하다"라며 "〈경제원론〉은 미국식 신고전파 경제학과 케인스 경제학을 절충한 것에 불과한데,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경제 교과서에 대해 경제계가 반(反)시장적이라고 비판한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의 이런 지적은 올해 2월 교육부가 중·고교 경제교과서 개선작업을 전경련과 함께 추진하기로 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 토론회 참가자들이 경제교과서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경제계는 3년 전부터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시장경제 마인드를 기르기 위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03년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한국의 반(反)기업 정서는 세계최고 수준"이라며 '경제 교과서 개선을 위한 종합 건의'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 경제계가 이런 움직임을 본격화하게 된 첫 계기였다.

이 보고서가 나온 후 한동안 청소년을 상대로 한 '예비 경영자 교육'이 큰 유행을 이뤘다. 출판가에서는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금융기관이 청소년을 위한 금융 강좌를 개설한 경우도 있었다.

2005년에는 뉴라이트 진영에서 '중·고교 경제 교과서 이대로 좋은가' 등의 주제로 교과서 포럼을 연이어 개최했다. 또 같은 해 재정경제부, 한국은행, 전경련, 대한상의, KDI 등 5개 기관이 공동으로 현행 경제 관련 교과서의 내용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현행 교과서가 경제학 개념 상의 오류를 담고 있는 경우가 상당할 뿐 아니라 이념적으로 편향돼 있어 청소년들에게 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한다는 것이었다.

올해 교육부가 경제 교과서의 개편 작업에 경제계를 참여시키기로 한 것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다.

장 교수는 뉴 라이트 진영과 경제계의 이런 시도가 매우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국의 우파 세력은 현 정권 이후 자신들이 다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섭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장 교수는 "현행 경제 교과서에서 결여된 것은 시장경제 마인드가 아니라 노동인권에 대한 인식"이라며, 진보진영이 초·중등 교육과정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적 합리성에 기초한 비판이 아닌 이념적 반감일 뿐"

이어 발제자로 나선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KDI 경제정보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고등학교 경제교과서 내용 검토'라는 보고서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류 교수는 뉴라이트 진영과 경제계가 진행해 온 일련의 교과서 비판작업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훈계적, 윤리지향적 내용',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 '비주류적 해석, 좌파적 시각 혹은 반세계화적 태도', '시민운동, 통일, 환경 등에 대한 편향적 태도'가 그것이다.

이런 내용에 대해 류 교수는 "교과서 비판에 참가한 경제학자들이 모두 우파적 신념을 충실하게 따랐다고 보지는 않는다"라며 "단지 엄밀한 경제학적 합리성을 추구하다보니 경제학 외부의 주제도 폭넓게 다루고 있는 중등 교과서의 내용이 못마땅하게 여겨졌을 것"이라고 평했다. 보고서가 주류 경제학의 언어로 기술할 수 없는 내용에 대해 주로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류 교수는 보고서의 내용이 철저하게 경제학적 합리성을 따르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두산 출판사에서 간행한 경제 교과서에 실린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기업은 더 큰 이익을 찾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는 인용문에 대해 보고서가 문제를 삼은 게 대표적인 예다. 인용문의 내용이 경제학의 상식에 비추어서 전혀 문제될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인용문의 출처가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의 저서(〈알기 쉬운 정치경제학〉, 김수행 저)라는 점 때문에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경제학적 합리성이 아닌 다른 이유가 개입돼 있다는 것이다.

"경제 교육과 경제학 강의는 다르다"

한국사회경제학회 회원들의 발제가 끝난 뒤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의 사회로 토론이 진행됐다.

토론자로 나선 장경주 서울 난곡중 교사는 경제 교과서에 대한 분석이 철저하게 경제학적 합리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다.

전국 사회교사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대안적인 사회교육에 대한 고민을 해 온 장 교사는 "경제 교육과 경제학 강의는 다르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두 가지는 각각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이다.

중등 교육과정에서 행해지는 경제 교육은 사회 교육의 한 분야로서 건전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에 지나치게 매몰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장 교사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생태적 가치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생태적 감수성을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은 경제 교육의 관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자원의 희소성에 대해 인간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래사회를 살아갈 시민을 기르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경제 교육의 목표를 경제학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한정할 경우 생태적 가치에 대한 교육은 어려워진다. 기존의 주류 경제학 역시 자원의 희소성을 전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인간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적인 성찰은 없기 때문이다."

"일방적 시장물신주의 교육은 획일적 반공교육 같은 부작용 낳아"

또 다른 토론자인 강운선 대구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교직에 진출한 제자들을 만나면 방학 때 전경련의 후원으로 중국에 산업시찰 다녀 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라며 "이렇게 해외를 다녀온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대기업의 활동에 호의적으로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강 교수는 진보진영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진보적인 세계관을 갖도록 하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장했다. 과거 획일적인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와 마찬가지로 중·고등학교 시절 일방적인 시장 물신주의를 주입받고 자란 세대 역시 큰 부작용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날 포럼에 참가한 이들은 대부분 강 교수의 이런 지적에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방청자는 포럼이 끝날 무렵 진행된 자유발언을 통해 경제계가 청소년들에게 이념적으로 과도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는 것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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