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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SF영화, 새 시대 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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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SF영화, 새 시대 열리나

[특집] <괴물> <디 워> <인류멸망보고서> 등 SF 장르 활기

봉준호 감독의 SF 괴수영화 <괴물>이 칸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얻으며 연일 신문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심형래 감독의 차기작 <디 워 D-War>의 후반작업에 할리우드 유명 스탭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거기다 최근 김지운, 임필성, 한재림, 세 명의 감독이 SF 옴니버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가제) 제작에 돌입했다. 충무로의 모든 제작자들이 "대한민국에서 SF는 안 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과거를 생각하면, SF 장르에 새롭게 도전하는 이들 감독들의 행보가 놀랍게 느껴진다. 흥행 참패의 늪을 걸으며 한동안 충무로의 '징크스'처럼 여겨지던 SF 장르. <괴물>을 선두로 한 한국형 SF영화들이 불문율을 깨고 한국영화에 SF의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21세기를 SF와 함께 21세기,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한국영화계는 새로운 영화 장르를 개척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2001년 1월 개봉한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를 시작으로, 이시명 감독의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1),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정윤수 감독의 <예스터데이>(2002), 민병천 감독의 <내츄럴 시티>(2003), 김문생 감독의 SF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2003) 등이 이런 고심의 결과로 빚어진 작품들이다. 그리고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으로 제작된 이들 영화가 표방하고 있는 장르는 대부분 SF였다.
그러나 이들 영화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달리 관객의 철저한 외면을 감내해야 했다. 90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 부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개봉 첫 주, 고작해야 7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고 박스오피스에서 사라졌고 제법 탄탄한 비주얼을 선보이며 기대를 모았던 80억 원 규모의 <내츄럴 시티> 역시 흥행에 참패하며 쓴 맛을 봐야했다. 나머지 영화들도 마찬가지였다. 관객들은 충무로 SF를 여러 면에서 달가워하지 않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시선에 80억, 90억 원으로 가공된 비주얼은 기대 이하였다. 제작의 여러 가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간혹 놀랄만한 비주얼을 선보이는 영화들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스토리가 허술하다'는 핀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는 조금 독특한 SF영화로 각인됐다. 병든 지구를 살리기 위한 엉뚱하고 고독한 한 청년의 고군분투를 담고 있는 <지구를 지켜라!>는 본격 SF영화를 표방하기보다 SF적 요소를 영화의 적재적소에 이용,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가꾸는 길을 선택했다. 만화와 그림, 기존 영화들의 이미지, CG를 이용해 지구 생성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역사를 그리거나, 외계인과 우주의 모습을 독특하게 재해석해 담아낸 영화의 비주얼은 할리우드의 것처럼 매끈하진 않았지만 창의력이 빛났다. 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 한국 SF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지켜라!>는 흥행에서 기존 한국 SF영화와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러나 <지구를 지켜라!>는 탄탄한 완성도와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마니아 팬 층을 두텁게 얻는 데 성공했다. .
괴물 ⓒ프레시안무비
참신한 아이디어가 승부수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제 아무리 100억여 원의 거대 자본을 들인다 해도 할리우드를 따라갈 순 없다. 사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기준으로 보면 <괴물> 등의 제작비인 100억여 원은 저예산 영화에 해당하는 수치일 뿐이다. 한국형 SF영화가 규모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이길 수 없다면 <지구를 지켜라!>처럼 참신함과 드라마의 완성도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실제 <괴물><인류멸망보고서> 등 앞으로 선보일 SF영화들은 탄탄한 드라마의 완성도와 참신한 아이디어로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다. 세 편의 영화를 묶어 구성되는 SF <인류멸망보고서>는 각 영화당 15억, 총 50억 규모로 제작되는 옴니버스 영화다. SF영화치고는 비교적 적은 예산이지만 <인류멸망보고서>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눈에 띄는 프로젝트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하는 <천상의 피조물>은 사찰에 사는 로봇에 포커스를 맞춘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웬만한 스님도 못 이른다는 '득도'의 경지에 이른 로봇의 이야기를 그린다. 임필성 감독의 메가폰을 잡는 <멋진 신세계>는 좀비 이야기다. 소모품으로 점점 전락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좀비가 되어가는 청년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멋진 신세계>는 하드코어적 액션에 위트 넘치는 유머를 뒤섞는다. 지구 종말을 앞두고 지구를 떠날 수 있는 티켓을 구하기 위한 연인의 사투를 그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한재림 감독은 SF와 뮤지컬을 혼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일 예정이다. 한강에 나타난 괴물체와 한강변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는 일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괴수영화 최대의 볼거리인 '괴물체'를 완벽하게 재현해내 칸영화제에서 "한국 SF영화의 단계를 서너 단계 이상 진보시켰다"는 극찬을 받았지만 괴물체 재현에 들인 노력만큼이나 이야기에도 공을 들인 영화다. 영화가 진행되며 밝혀지는 '한강변 괴물체의 정체'는 사실 몇 년 전 미군의 지시 아래 한강에 버려진 독극물에 의한 돌연변이였던 것. 이렇듯 괴수영화 <괴물>을 통해 봉준호는 미국의 조종 아래 놓인 한국, 무책임한 정부 관료,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언론의 작태를 꼬집는다. '뉴욕 타임스'의 평론가 마놀라 다지스가 "<괴물>은 괴수영화이자 SF스릴러이고, 코미디이자 가족영화이며 정치적 비평까지 곁들인 영화"라고 극찬을 한 데에는 <괴물>이 괴물체의 재현에 앞서는 드라마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밑받침된 것으로 보인다. . 비주얼도 꼼꼼히 챙긴다
디 워 ⓒ프레시안무비
그렇다고 한국형 SF 영화가 비주얼적 완성도에서 무디게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괴물>의 괴물체 디자인을 맡은 건 그 유명한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특수시각효과팀 웨타 워크샵(Weta Workshop)이고, 컴퓨터 그래픽은 <헬보이><투모로우> 등을 작업한 미국의 오퍼니지가 맡았다. 그 덕에 물고기와 거대 파충류를 뒤섞어 놓은 듯한 <괴물>의 괴수체는 놀랄만한 이미지를 제공하며, 한강의 분위기와 전혀 어색함 없이 맞아떨어지면서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용가리>는 물론이고 평소, SF의 이미지 구축에 가장 큰 공을 들여온 심형래 감독의 차기작 <디 워>는 완벽한 영상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 무엇보다 큰 공을 기울이고 있는 작품.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이무기 전설'을 옮겨내는 <디 워>는 1000억 원을 웃도는 막대한 자본으로 6년에 걸쳐 만들어지고 있는 '영상'이 중점이 되는 SF 영화다. 실사와 미니어처, CG 작업으로 생명을 얻은 <디 워>의 이미지는 미리 공개된 스틸 몇 장만으로 힘 있는 SF영상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관객의 기대를 자아내고 있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한창 후반 작업 중에 있는 <디 워>는 <브로큰 애로우><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편집감독 스티브 마르코비치가 편집을, <반지의 제왕><진주만> 등의 영화에서 색보정 작업을 한 이필름(EFILM)이 영상에 마무리 손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디 워>는 <아일랜드><아마겟돈>의 음악을 맡은 스티브 자브론스키, <제 5원소><다이하드>의 음향효과를 맡은 마크 맨지니를 기용, '사운드'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총 6개월여 간 진행될 <디 워>의 후반작업에는 영화 <괴물>의 제작비에 맞먹는 100억 원 이상이 투입될 전망이다. <디 워>는 후반 작업이 끝나는 올해 말, 전세계 동시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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