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뿐 아니다. 요즘 방송과 영화에서도 사투리를 심심치 접할 수 있다. 방송에서 표준어를 쓰지 않는 게 비난받을 일이었던 과거와 달라진 대목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방송과 영화가 사투리의 복권을 주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방송과 영화는 '사투리 전성시대'
지난 주말 개봉한 영화 〈짝패〉는 사투리를 '제대로' 사용한 것이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존의 조폭 영화에서 잘 사용하지 않던 충청도 사투리를 통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영화의 제작단계에서부터 어느 지방의 사투리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지를 전략적으로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촬영이 진행 중인 〈거룩한 계보〉와 〈열혈남아〉, 〈아이스케키〉는 각기 순천, 보성, 여수 사투리를 사용한다. 막연하게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게 아니라 아예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부산 사투리의 생생한 사용이 영화의 맛을 살렸다는 평을 받았던 영화 〈친구〉가 흥행에 성공한 이후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백제와 신라의 전투를 묘사하면서, 전라도와 경상도의 사투리를 잘 활용해 호평을 받았던 영화 〈황산벌〉이 대표적이다.
MBC는 아예 사투리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지난 1일 첫 전파를 탄 '말달리자'라는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여기서 말은 말(馬)이 아니라 말(言)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투리 능력시험, 듣기 평가, 말하기 영역 등을 코너로 둔 사투리 전문 퀴즈쇼 프로그램인 '말달리자'는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투리 쓰면 교양 없는 사람?
지역어 연구 모임 탯말두레의 회원 130명은 23일 제출한 헌법소원 심판청구서에서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한 현행 어문규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각 지역의 언어는 해당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응축된 것으로서 서로 간에 우열이 있을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단지 수도에서 쓰는 말이라는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 쓰는 말을 '사투리'로 규정해 교육과정에서 차별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평등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들은 '교양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표준어의 요건으로 정한 규정 역시 헌법정신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규정은 표준어를 사용하지 않는 국민은 '교양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들은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에 포함된 지금은 굳이 지역어(사투리)를 차별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오히려 지역의 학교에서 지역 사투리를 가르칠 수 있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획일적인 표준어 정책이 문화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며, 지역 사투리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보다 풍요로운 언어생활을 누리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서울 경기 지역의 말이 중심이 된 표준어 체계를 전국 각지의 말이 고루 반영된 형태로 고치자는 것이다. 다른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는 경우만 아니라면, 기존의 표준어와 같은 뜻을 가진 사투리를 모두 표준어에 편입시키자는 것이다.
"표준어 자체를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모든 지역에서 쓰이는 말이 동등한 자격으로 표준어에 편입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남북 통일이 되면 어차피 현행 표준어 체계는 뜯어 고쳐야 한다. 통일 이후에도 서울 경기 지역에서 쓰이는 말을 표준어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탯말두레 박원석 간사의 말이다.
국립국어원 "경직된 표준어 규정 허물어 사투리 대폭 수용하겠다"
어문정책을 총괄하는 국립국어원 역시 기존의 표준어 정책이 지나치게 폐쇄적이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 이상규 원장 취임 이후 이같은 입장이 두드러진다. 이 원장은 평소 각 지역의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한국어 어휘를 보다 풍부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왔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탯말두레의 주장은 표준어를 정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기준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에 가까와서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의 표준어 정책은 변해야 하며, 각 지역의 사투리 중 다른 지역에서도 의미가 통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표준어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은 공감한다." 표준어 관련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국립국어원 김세중 국어정책팀장의 말이다.
이제까지 사투리가 표준어에 편입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강원도 사투리였던 강냉이가 표준어로 받아들여진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김 팀장은 현재 국립국어원 내부에서 논의 중인 다원주의적 표준어 개념이 도입되면 이같은 경우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국어원은 이같은 문제의식이 반영된 국어발전기본계획을 올해 9월까지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다.
"사투리가 아니라 탯말입니다" 프레시안 : 탯말두레가 무슨 뜻인가? 박원석 탯말두레 간사 : 우리는 사투리라는 표현 대신 탯말이라는 말을 쓰기로 했다. 표준 국어대사전은 사투리를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서울말만을 표준어로 정하고 나머지를 사투리로 규정한 현행 어문 규정에 반대한다. 따라서 표준어가 아니라는 뜻을 갖고 있는 까닭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사투리' 대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들었던 말이라는 뜻의 '탯말'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탯말두레는 탯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프레시안 : 어떻게 모이게 됐는지 궁금하다 박원석 : 목포 출향문학회에서 활동하던 문인인 최병두, 조희범 씨가 오래 전부터 목포 지역의 탯말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해 왔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최병두, 조희범 씨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그런데 지난해 봄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이 분들을 우연히 알게 됐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 의기투합했다. 온라인 공간에 '탯말두레'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는데 네티즌들의 반응이 좋았다. 온라인 공간에서 네티즌들이 자기 고장의 탯말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자료만 해도 상당한 내용이었다. 이렇게 모인 내용을 살펴보니 재미있는 사실도 많이 알게 됐다. 이를테면 우리의 상식과 달리 전라남도의 탯말과 경상남도의 탯말이 서로 닮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을 확인할 때마다 '탯말두레' 회원들은 보람을 느끼곤 했다. 프레시안 : 방송작가 생활을 오래 했다고 들었다. 방송은 오랫동안 표준어 규정을 엄격하게 따라 왔는데, 지금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박원석 : 1985년부터 KBS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해 왔다. 과거에는 방송국 생활을 하다보면 표준어 사용과 관련하여 서러운 경험도 종종 하게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깡패는 사투리를 쓰고 선량한 시민은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나도 방송을 만드는 입장이지만, 사실 참 속상했다. 현행 표준어 규정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그 당시부터 품었던 것이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이같은 현상은 사라졌다. 오히려 최근에는 방송이나 영화가 앞장서서 탯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고 있는 듯하다. 프레시안 : 탯말두레의 향후 계획은? 박원석 : 우리 모임은 처음에는 전라도 지역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온라인 공간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제는 경상도 지역에 사는 회원들의 수가 더 많아졌다. 이렇게 다양한 지역에 사는 회원들의 교류를 통해 각 지역 탯말들을 서로 비교해보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또 지난달에는 호남 지역의 탯말을 모아〈전라도 우리 탯말〉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탯말두레가 결성된 후 1년간의 성과를 모은 것이다. 곧 〈경상도 우리 탯말〉이라는 책도 출간될 예정이다. 지금은 제주도 지역의 탯말을 조사하고 있다. 조사와 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그 결과도 당연히 책으로 묶여 나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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