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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정책 일원화'…국립국어원 위상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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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정책 일원화'…국립국어원 위상 높아진다

국립국어원, 교과서 속 부적절한 표기 바로잡는다

'소아 마비', '공중 전화', '홈 페이지'…. 왠지 어색한 표기법이다. 일상에서는 '소아마비', '공중전화', '홈페이지'라고 쓴다. 국립국어원의 어문규정에 비추어 봐도 후자와 같이 쓰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앞서 열거한 어색한 표기법이 지금까지 초·중·고교 교과서에 사용돼 왔다. 이렇게 어색한 표기법이 사용돼 온 것은 현행 교과서가 국립국어원의 어문규정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과서 속의 표기법이 국립국어원 어문규정에 어긋나

18일 교육부와 국립국어원은 교과서의 표기와 표현에 대한 전문감수제를 도입하는 업무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르면 앞으로 발행되는 교과서는 국립국어원의 감수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교과서 속의 모든 표기는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띄어쓰기와 사이시옷의 사용에서 교과서의 표기가 국립국어원의 어문규정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 현행 교과서가 '소아 마비', '공중 전화', '홈 페이지'처럼 어색한 띄어쓰기를 적용한 것은 "서로 다른 단어는 띄어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한글맞춤법의 규정을 기계적으로 따랐기 때문이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은 일상에서 자주 쓰는 용어들의 경우 대부분 합성명사로 간주해 하나의 단어로 취급한다. 현행 교과서는 '소아마비', '공중전화', '홈페이지' 등의 단어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용어라는 점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국어원 김문오 학예연구사는 "언중(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소아마비', '공중전화', '홈페이지' 등은 하나의 의미단위로 간주하는 게 옳다"라며, 이들 단어에 띄어쓰기를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물론 '일상에서 자주 쓰는 용어'에 대한 판단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즉 '홈페이지'가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용어라고 본다면, '홈 페이지'라고 쓰는 게 옳다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공통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현행 교과서에서 쓰이는 표현 중 〈표준국어대사전〉의 규정에 명백하게 어긋나는 것들도 있다. '등교길', '하교길', '노래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뒤따라오는 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경우에는 반드시 사이시옷을 쓰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등교길', '하교길'은 잘못된 표기이다. '등교낄', '하교낄'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등굣길', '하굣길' 이 옳은 표기다.

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뒤따라오는 말의 첫소리가 'ㄴ, ㅁ'인 경우, 여기에 'ㄴ' 소리가 덧붙어 나는 경우에도 반드시 사이시옷을 써야 한다. 이에 따르면 '노래말' 역시 잘못된 표기이다. '노랜말'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노랫말'로 쓰는 게 옳다.

앞으로 국립국어원이 교과서를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라 감수하게 되면 이 같은 경우는 사라지게 된다.

어문정책 일원화의 계기

지금까지 교과서의 표기법과 국립국어원의 어문규정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정부의 어문정책 변천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어문정책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문화부(현 문화관광부)를 신설하면서부터다. 문화부가 생겨나면서 그 때까지 문교부(현 교육인적자원부)가 담당해 왔던 어문정책이 문화부로 이관됐다. 문화부 산하에 설립된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이 어문정책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문정책은 문화부가 담당하지만, 초·중·고교 국어교육과 교과서의 발행은 여전히 교육부가 관할한 것이 혼선의 단초였다.

1988년 교육부가 어문규정의 골간이 되는 한글 맞춤법 개정안을 공포했다. 그리고 1999년 문화관광부 산하의 국립국어원이 〈표준국어대사전〉을 발행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국가가 발행한 최초의 한국어 사전이다. 이전에 나온 국어사전은 모두 민간 출판사가 발행한 것이었다. 민간 출판사에서 발행한 국어사전은 감수자로 참여한 국어학자가 따르는 학풍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종종 제기돼 왔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발행은 국가가 공인한 한국어 어문규정이 자리를 잡는 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교육부과 국립국어원의 업무 협정에 따라 초·중·고교 교과서에 대한 감수를 국립국어원에서 맡게 되면서 어문정책의 혼선을 막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번 협정을 계기로 국립국어원은 한국어 어문정책을 총괄하는 기구로서의 위상을 굳히게 됐다.

일선 교사들은 환영…"국립국어원을 한국의 아카데미 프랑세즈로!"

일선 학교에서는 교과서의 표기법이 〈표준국어대사전〉의 규정으로 통일된 데 대해 환영하는 목소리가 높다. 교과서 내용의 표기법이 대부분의 출판물이 따르는 〈표준국어대사전〉의 규정과 달라 학생과 교사가 혼란을 겪을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서울 공항고 김효곤 교사는 "이제까지 표준어 규정이 국어학자들 중심으로 논의돼 온 까닭에, 학풍에 따라 다른 표준어 규정을 선호하면서 혼선이 빚어졌다"면서 "표준어 규정은 국가기관이 주도해 만들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한국어 어문규정을 만드는 국립국어원과 이곳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위상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사는 "언어정책의 선진국으로 프랑스를 꼽을 수 있다. 프랑스에서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갖는 위상에서 엿볼 수 있듯 프랑스는 모국어의 규범을 만드는 작업에 대해선 국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아 왔다"면서 국립국어원이 '한국의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프랑스어의 규범인 〈아카데미 사전〉을 펴내는 곳이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1633년 리슐리외 추기경이 창설했으며, 당대 최고의 문인, 지식인으로 꼽히는 40명의 종신회원으로 구성된다. 작가 에밀 졸라가 스무 번이나 회원으로 추천됐지만, 끝내 탈락한 데서 알 수 있듯 회원 가입이 어렵기로 유명하다. 최근 예전에 비해 다소 권위가 약해졌다는 지적도 나오기도 하지만, 아직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되는 것은 프랑스 최고의 지식인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전 편찬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 최고의 지성인 집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프랑스 사회에서 언어정책이 차지하는 위상도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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