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태용
출연 문소리, 고두심, 엄태웅, 공효진, 봉태규, 정유미
제작 블루스톰 |
배급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등급 15세 관람가 |
시간 113분 | 2006년
상영관 CGV, 메가박스, 대한극장, 서울극장, 롯데시네마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핏줄만이 '가족'을 꾸리는 절대 조건인 것은 아니다. 마음의 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 보듬고 사랑하며 아끼고 사는 것이 '가족'이라고 한다면, '핏줄'에 연연하는 건 더더욱 중요치 않다. <가족의 탄생>은 과감히, '생물학적' 끈이 진정한 가족을 이루는 필요 충분 조건은 아니라고 말한다. 얽히고설킨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가족의 탄생>이 말하는 가족은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이다. 그리고 그 사랑엔 연민, 동정, 정 따위의 이름이 따로 붙지 않는다. 눈길만 스쳐도 설레는 감정도, 징글징글하지만 깊이 흐르는 속정도, 상대를 '아끼는' 마음 앞에선 그저 모두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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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프레시안무비 |
크게 세 이야기로 나뉘어 진행되는 <가족의 탄생>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춘천에서 떡볶이 집을 하는 미라(문소리)를 따라간다. 미라에겐 5년 전 집을 나가 도통 소식을 알 길 없는 동생이 가족의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 형철(엄태웅)이 집으로 돌아온다. 잠시 외출했다 돌아온 듯 무람없이 구는 형철의 옆에는 이모뻘은 되고도 남는 여자, 무신(고두심)이 서 있다. 미래에 대한 목표도, 별다른 꿈도 없는 형철은 애인 무신과 함께 이날부터 미라의 집에 눌러 앉고,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얼마 후, 미라의 대문을 두드리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미라 앞에, 자신의 집 주소가 적힌 종이를 가슴에 품고 있는 어린 소녀가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고 서 있다. 이어 이야기는 서울로 배경을 바꾼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고궁 관광 가이드 선경(공효진). 선경은 매번 반복되는 사랑에, 매번 목숨 거는 엄마가 지겨워 집을 나와 혼자 살고 있다. 자신의 미래를 꼼꼼히 챙기는 똑 부러지는 선경에게 엄마는 항상 걸림돌이다. 뻔히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는 남자와 늦은 연애를 시작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몸마저 아픈 엄마의 인생이 선경은 속상하다. 족히 스무 살 터울은 될, 아빠 다른 남동생을 바라보는 것도 속상하긴 마찬가지. 감정 표현이 서툴러 단 한번도 살갑게 대하지 못한 엄마가 어느 날, 세상을 등진다. 선경에겐 이제 남동생 하나만 남았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경석(봉태규)과 채현(정유미)의 알콩달콩 사랑 얘기에 초점을 맞춘다. 경석에게 채현은 너무나 예쁘고 착한 여자친구다. 문제는 채현이 모든 사람에게 '너무나 예쁘고 착하다'는 데 있다.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모든 부탁에 '노'라고 답할 수 없는 채현이 점차 버거운 경석. 두 사람이 심하게 다툰 어느 날, 화해하기 위해 무작정 채현을 따라 기차에 오른 경석은 기차 여행 끝에 채현의 기묘한 가족 모임에 초대된다. 서로 어긋나 흐르던 <가족의 탄생>의 세 이야기는 이렇게 한 자리에서 만나 서로 얼개를 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묘하고 독특한' 가족이 탄생한다. 세월과 정이 쌓이고, 연민과 동정에 가슴 쓸어내리고, 호기심과 애정이 뒤섞여 만들어진 이 '가족'은 현실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어 더욱 빛나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이후, 6년 만에 극영화 메가폰을 잡은 김태용 감독은 <가족의 탄생>에서 현실감이 뚝뚝 묻어나는 캐릭터와 이야기 안에 반짝이는 판타지를 버무린다. 시종 핸드 헬드로 흔들리며 인공조명 없이 거칠게 찍혀진 영상은 땅에 발붙인 '가족'의 모습을 꾸밈없이 그리고, 그 영상들 사이에 책갈피처럼 간간이 끼어있는 판타지의 세계는 영화 속 '그들'에게 가족과 사랑을 꿈꿀 공간을 만들어주며 동시에 관객을 꿈꾸게 한다. 여러 사람이 끌고 가는 여러 이야기를 매끈하게 담아낸 <가족의 탄생>의 성과는 단연 김태용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에 가장 크게 기대고 있지만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 역시 든든한 몫을 해주었다. 세상 무서울 것 하나 없는 나이지만 사랑 앞에선 마냥 수줍기만 한 무심을 완벽히 소화한 고두심, 바보 같이 순진하던 처녀가 세월을 입어가며 변하는 모습을 온몸으로 표현해낸 문소리의 연기엔 뭐라 더 덧붙일 칭찬이 따로 없다. 겉은 맨숭맨숭해도 속정은 깊은 딸이 된 공효진과 사랑 앞에 마냥 어리광인 남자 봉태규는 기존의 연기에서 한 단계 발전한 연기를 선보이고, 절대 미워할 수 없게 '헤픈' 여자를 연기한 정유미도 반짝인다. 거기다 돈도 없고 목표도 없는 주제에 철딱서니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 한심한 건달로 분한 엄태웅의 연기는 놀라움을 넘어 감탄에 가깝다. 감독과 배우의 똘똘 뭉친 호흡이 느껴지는 <가족의 탄생>은 이렇듯, 인간과 관계에 대한 낙관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실로 흥겨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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