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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인들의 희망이 '빛바랜 절망'이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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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인들의 희망이 '빛바랜 절망'이 되지 않기를

[기고] 하인스 워드 모자를 다시 생각한다

역시 하인스 워드다웠다. 그는 미식축구 영웅,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 이른바 살인적인 미소(assassin smile)로 사람들을 친근하게 끌어 들이는 품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인스 워드가 스포츠 이외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최우수선수(MVP)였다면 그가 한국계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대단한 감동으로 다가왔을까.

역사의 거센 물결에 휩쓸린 가냘픈 한 여인, 동족 남편을 만나서 평범한 삶을 살아갈 운명을 허용 받지 못하고 흑인 미군병사의 아들을 천형처럼 안고 살아야 했던 한 어머니의 비상한 삶이 하인스 워드의 기념비적인 성공담에 겹쳐졌기에 미국에서도, 특히 한국에서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하인스 워드와 어머니 김영희 씨의 삶은 그들 자신이 알지 못했을 것이고 알 필요도 없던 우리 역사의 비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두 사람의 그 삶은 극적인 반전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경탄으로, 그 다음에는 당혹스러움과 미안함으로, 마지막으로는 속물적 부러움으로.

그러나 성경 말씀대로 끝자리에 있던 자가 맨 윗자리에 오르는 모습은 한여름 우물가의 등물 목욕처럼 시원한 소식이었다. 비록 소박맞고 구박받아 내쫓겼던 내 딸과 그녀의 천덕꾸러기 아들이 금의환향(錦依還鄕)한 것이 한편으로는 거북살스럽고 미안하기는 해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찌 기쁘고 대견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고구려 패망 이후 반도 안에 삶의 영역을 한정당해 온 우리 민족은 잦은 외침에 시달리면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단일민족 또는 순혈주의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고조선과 고구려, 부여, 발해 등 대륙에 삶과 역사의 공간을 확보했던 시절에는 돌궐, 거란, 몽고, 심지어는 중국 민족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 살고 경쟁하던 유연성과 다양성을 지녔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으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대제국을 경영하지 못했을 것이다.

통일신라 이후 한 여인으로서 우리 역사의 비극성을 딛고 우뚝 선 여인은 고려 말 귀족 출신으로 원나라 황실에 공녀(貢女)로 보내졌던 기황후(奇皇后)가 아니었을까. 황제를 남편으로, 아들로 둔 기황후는 원제국과 고려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쳤다.

원나라보다도 더 크고 강력한 세계제국인 아메리카에서 차별의 대명사인 흑인도 못되는 흑인 혼혈인 아들을 제대로 교육시켜 대접받도록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한 어머니의 집념은 돌이켜보면 무모하게까지 보인다. 귀족도 아니고 정치적 연줄도, 돈도 없던 김영희 씨. 자식에 대한 지순한 사랑과 믿음, 몸이 부스러져라 일하는 부지런함과 헌신만을 무기로 가지고 있던 한 여인. 흑인 또래들로부터도 따돌림 당할까봐 그 어머니를 원망하고 엇나갈 뻔한 아들의 마음을 자신과 하나 되도록 움직였던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디서 그 어머니의 독한(?) 마음이 나왔을까. 남성 중심의 오랜 사회질서, 그릇된 순혈주의의 편견 속에 흑인 혼혈 아들을 둔 여성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보면 그 어머니의 응어리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인스 워드 모자의 방문은 우리에게 큰 과제를 던져 주었다. 우선 우리 사회가 다인종 열린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폐쇄적 민족주의와 왜곡된 순혈 단일민족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에 따른 법적 제도적 후속대책을 어떻게 준비해갈 것인가라는 과제를 던져 주었다.

언론의 과잉취재 경쟁이나 기업들의 홍보를 위한 '하인스 잡기' 등은 이런 일에 으레 따르는 소란이려니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좀더 곰곰히 생각할 것은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지금 이 시간에도 차별과 소외 속에 살아가고 있을 많은 혼혈인들이 하인스 워드 모자의 한국 방문으로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남는 것은 희망이다. 그래도 미국이 아닌 이 땅에서 그 희망이 빛바랜 절망이 되지 않도록 만들 책임은 앞으로도 여기 이곳에서 살아갈 우리 몫이다.

하인스 워드 모자가 이 나라에 오기 전인 지난 2월 10일 필자는 '하인스 워드와 어머니, 참회하는 마음으로 맞자'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 모두 뉘우치는 마음으로 요란 떨지 말고 이들을 차분하게 맞았으면 한다. 그리고 부끄러운 마음을 담아 이들 모자에게 우리 누이들 같은 진달래 꽃다발을 안겨주었으면 한다. 또한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늘 속에서 이들 모자의 귀국을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을 같은 처지의 여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눈에 띄거든 진달래 꽃다발을 함께 안겨 드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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