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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랑, 어느 나라 여성들이나 모두를 갖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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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랑, 어느 나라 여성들이나 모두를 갖기 힘들다"

[뉴스메이커]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 찾은 도리스 되리 감독

<파니 핑크>의 도리스 되리 감독이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 참석 차 한국을 찾았다. 5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벌거숭이 게임>이 상영되는 등 서울여성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도리스 되리 감독이 이번 영화제에 선보인 작품은 신작 <내 남자의 유통기한, The Fisherman And His Wife. 2005작>. 야망 넘치는 패션 디자이너 아내와 물고기 판매상 남편의 일과 사랑, 일상사를 판타지로 버무려낸 <내 남자의 유통기한>은 직장과 가정, 모두를 일궈야 하는 현대 여성의 고뇌를 흥겨운 리듬으로 담아내고 있다. 일과 가정생활. 이 둘을 손에 쥐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오늘도 고민 중이라는 여성 감독 도리스 되리. 그녀가 감독으로서 또, 주부로서 일과 영화, 인생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초청한 것으로 안다. 그렇다. 초청 때마다 일이 있어 오지 못했다. 한국엔 처음 방문했다. - 초청 때마다 일이 있었을 것도 같다. 영화감독 이외에도 명함이 많다. 영화감독, 영화학교 교수, 소설가, 오페라 연출자다. 그리고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다. 처음 영화를 시작했을 때 '영화 하나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하게 된 것 같다. 여러 가지 공을 한꺼번에 공중에 던지고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저글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느 날 자전거 뒤에 화장지를 한가득 싣고 오페라 연습을 가고 있었다. 집에 휴지가 다 떨어졌는데 휴지 살 시간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연습 전에 마트에 들렀다. 순간, '과연 남자 동료 중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독일에서 여성이 일을 하는 덴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어려움도 많겠다. 슈퍼우먼처럼 일하고 있다. 가끔은 지치기도 하고.(웃음) 지금 독일의 많은 기혼 여성들은 자신의 커리어와 아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그 결과 출산율이 현저히 떨어졌다. 정치가들은 이제 와서야 양육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 같은 경우, 양육이나 가사 일은 일종의 '특혜'라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 바탕을 둔 안식처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내 아이가 지금 16살인데, 3~5살까지는 영화 작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달려가 아이를 돌봤다. 대부분의 남자 스탭들은 술 마시러 가지.(웃음) 가사 일들은 내게 자기 잘난 멋에 사는 예술가가 아니라 생활의 모든 부분에 깨어있는 사람이 되게 했다. 일상생활의 뿌리를 잃지 않은 탓에 생활에서 느끼는 모든 것들이 영화나 소설로 다시 재생산된다. - 이 영화의 패션 디자이너 이다는 일에 대한 야망과 아이를 낳고 훌륭한 가정을 꾸미고 싶은 욕망,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 든다. 그렇다. '이다'는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성공과 명성, 사랑스런 아이와 남편이 있는 가정을 모두 원한다. 이 역시 '저글링'과 같다. 여러 공을 한꺼번에 던지지만 하나도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거지. 일과 가정생활, 모두를 갖고자 할 때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뤄보고 싶었다. 둘 사이의 '균형과 유지'를 그려보고 싶었다.
도리스 되리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이번 영화는 현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문제를 다룬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직설법 대신 판타지를 차용했다. 독일의 오래된 동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어느 날 어부가 고기를 낚는다. 물고기는 자신이 마법의 고기라며 살려주면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아무 욕심 없는 어부는 대신 아내의 소원을 들어 달라고 하지만 아내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다'는 일도 가정도 완벽하게 꾸리고 싶은 욕심이 있는 여자다. 이다는 물고기를 보고 패션 아이디어를 얻는다. 여성들은 흔히 새로운 구두, 옷을 사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화 가능성이 남자보다 크다. 이다의 직업인 패션 디자이너는 여자들의 변화 가능성을 대변하는 직업이다. - 영화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이다'를 긍정하지만은 않는다. 일과 가정, 모두를 원하는 여성을 반성적인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일과 가정. 둘은 균형이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 직업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다른 것을 너무 등한시 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 때가 있다. 인생의 순간들을 소중히 하지 못하고 일 때문에, 바빠서, 놓친 것들이 많지. 일에 힘을 쏟는다, 가사에 힘을 쏟는다, 이런 것에 정답은 없다. 상황에 맞게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다'를 반성적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다의 남편, '오토'를 긍정하는 건 아니다. 오토는 매우 수동적인 사람이다. 밖에서 돈 벌어오는 부인 대신 집에서 일을 하지만 진정한 역할 전환은 아니다. '난 원하는 게 없다. 마음대로 해라'의 수동적인 태도는 슈퍼우먼을 기대하는 또 다른 심리의 발로일 뿐이다. - 영화속 두 커플은 일본에서 우연히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장난처럼 결혼을 한다. 영화에 나오는 잉어(こい)는 일본어로 '잉어' 외에 '사랑'이란 뜻도 같이 갖고 있다. 현대 남녀의 사랑을 어떻게 보나. 예전에 남녀 관계는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백여 년 전을 생각해보자. 남자 없이 여자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백여 년 동안 여성의 경제적인 위치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지금의 '사랑'은 매우 흥미로운 단계다. 개인적으로는 '이성 관계의 역사적인 혁명 단계'가 아닌가 싶다. 경제적으로 독립 가능한 여성이 받아들이는 사랑은 예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 경제적인 요소가 사랑이나 가정을 변화시키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보나. 모든 것은 경제적인 계산에 기초를 두고 있다. 정부가 여성문제에 다시 눈을 돌리는 것도 기껏 돈 들여 공부시켰는데 집에서 애 키우는 데 인력이 다 소모되니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성은 경제적인 요인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아프리카 피임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는데 이 역시 경제적인 것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다. 출산을 지금보다 줄여 2~3명만 낳아도 아프리카 여성의 사회 기여도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슬픈 건, 사회가 오로지 경제적인 것을 통해서만 여성의 가치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내 남자의 유통기한 ⓒ프레시안무비
- 독일에서도 한국에서와 같이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여성이 겪는 어려움이 심한가. 슈퍼우먼에 대한 논의 자체는 오래됐다. 하지만 여성의 역할을 공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수동적인 반응으로 일관한다. 오히려 일하는 여성들에게 들러붙어 갉아 먹지.(웃음) 강한 여성이 되어야 하는 여자들은 일이든 가사일이든 뭐든지 '빨리' 해치워야만 한다. 여자들이 삶을 영위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점점 빨리지는 여자들의 리듬을 조절하고, 남자와 함께 맞춰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삶이 다르게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전진 가능한 리듬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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