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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 포인트] 히든 Hidden

감독,각본 미카엘 하네케 출연 다니엘 오테이유, 줄리엣 비노쉬, 모리스 베니초우 수입,배급 스폰지 | 등급 15세 관람가 | 시간 118분 2005년 중산층 밀집 지구가 화면 가득 펼쳐 보인다. 집들 사이로 단단하게 닫아놓은 창문이 보이고, 골목 사이 주차된 차들이 보인다. 어떤 움직임도 없는 화면은 오랫동안 그렇게 단단히 지속된다. 문득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간다. 희미하게 새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화면 안으로 자동차가 미끄러져 들어오고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려 한 집의 대문을 연다. 그리고 순간, 화면이 흔들린다. 이어 화면이 되감기기 시작한다. 카메라가 뒤로 서서히 빠지면 텔레비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한 쌍의 남녀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인공과 함께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방송인 조르쥬(다니엘 오테이유)와 그의 아내 안느(줄리엣 비노쉬)에게 그들의 집을 찍은 비디오테이프가 배달된다. 테이프를 싸고 있는 종이에는 아이가 피를 토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관객과 함께 비디오의 화면을 유심히 보던 조르쥬와 안느는 처음에는 이 일을 그리 대수롭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익명의 발신인이 보낸 이 비디오테이프가 반복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히든 ⓒ프레시안무비
조르쥬는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어느 날 조르쥬는 자신의 고향집 전경을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받아보고 과거의 기억 하나를 건져 올린다. 어린 시절 자신의 집에 살던 알제리인 하인의 아들 마지드. 마지드의 부모는 1961년 알제리 독립 시위를 하던 중 프랑스 인에 의해 센 강에 빠져 죽었다. 고아가 된 마지드를 조르쥬 부모가 입양하려 하자 어린 조르쥬는 거짓 이야기를 꾸며내 그를 고아원에 보내버렸다. 그렇다면 비디오테이프는 마지드의 복수일까? 계속돼 전해지는 비디오테이프와 함께 주인공과 관객의 불안과 의문은 점점 커져간다. 그러니 이제 범인을 찾을 일만 남았다. 아마도 영화 <히든>은 의문의 발신인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리고 관객도 이 탐문에 동행할 것이고 머지않아 범인을 손 안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 영화는 미카엘 하네케가 만들었다. 두 싸이코 청년이 카메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관객에게 눈인사로 게임을 하자고 덤비는 <퍼니게임>, 신경증적이고 마조키즘적인 성적 취향을 가진 중년의 여성 예술가를 거칠게 묘사한 <피아니스트>를 만든 감독 말이다. 미카엘 하네케의 관심사는 범인이 아니다. 그의 관심사는 지금 여기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관객에게 맞춰져 있다. <히든>을 보는 동안 관객은 내내 당혹스럽다. 매끈하게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와 달리 범인은 짐작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실 범인을 찾기 위해 영화가 그다지 큰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당혹스러운 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화면이 주인공들이 보고 있는 비디오테이프인지, 영화인지' 가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한창 몰입해서 보다보면 의문의 발신인이 찍어 보낸 비디오테이프고, 비디오테이프 화면이겠거니 여기는 순간 영화로 돌아와 있다. <히든>은 영화 내내 이 두 이미지를 교란시키며 관객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한다. 주인공과 함께 이야기에 몰입하는 관객의 '자기 동일시'는 이렇게 배반당한다. <히든>은 미디어에 관한 영화다. 극중 조르쥬는 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송인이다.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스튜디오엔 수백 권의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이 놓여 있지만 진짜 책으로 보이는 건 단 한권도 꽂혀 있지 않다. 그 어떤 진짜보다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미카엘 하네케는 앞서 말했던 두 이미지를 교란시키며, 스크린을 쏘아보고 있는 관객에게 진짜처럼 보이는 영화(미디어) 뒤편의 숨겨진(hidden) 어떤 것을 보길 권한다. <히든>은 죄의식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조르쥬가 잊고 있던 과거의 개인적인 기억은 사실 프랑스라는 집단 전체가 '굳이' 잊으려고 한 알제리에 관한 기억인지도 모른다. 영화 후반부에 카메라는 또 한번 고정된다. 따스한 볕이 쏟아지는 마당 너른 저택에 새소리가 지저귄다. 마당엔 닭들이 무리지어 몰려다니고 있다. 한가롭고 따스한 전원 풍경이다. 하지만 저택 안에선 알제리 꼬마가 울부짖고 있다. 결국 꼬마는 저택에서 끌려나와 차에 실려 그곳에서 쫓겨난다. 소동이 잦아들자 화면은 여전히 한가롭고 따스하다. 이 한가로움이 던져주는 섬뜩한 충격. 이것이 바로 <히든>이 찾던 진짜 범인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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