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돌파구는 남북관계 진전뿐이다."
지난해 9.19 공동성명 도출로 탈출구의 빛을 본 듯하던 북핵 문제가 미국의 '위폐' 문제제기로 다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교착상태 속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우리 시대의 내로라하는 북한전문가들이 내놓은 해답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남북관계 진전'이었다.
앞으로 매주 〈프레시안〉에 연재될 '한반도 브리핑'의 필자 5명 중 3명이 지난 21일 본사 사무실에 모여 북한의 오늘을 진단하고 한반도의 내일을 전망하는 좌담을 벌였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 박순성 동국대 교수, 김근식 경남대 교수,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 등 5명은 앞으로 매주 한 차례씩 돌아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흐름을 진단하고 우리의 대응을 모색하는 '한반도 브리핑'을 집필할 예정이다.
이번 좌담은 본격적인 연재에 앞서 현재 한반도가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상황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것으로 5명의 필자 중 서동만 교수, 김근식 교수, 김연철 박사가 참가했고, 사회는 유영구 사단법인 현대사연구소 이사장이 맡았다.
***"미국의 적대정책과 북한의 고민…北 선택지는 中·南과의 관계 강화뿐"**
대담에 참가한 이들은 최근 급속도로 강화되고 있는 북한과 중국 간의 경제협력 강화는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대외정세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오랫동안 갈망해 온 북한이지만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이라는 현실 아래에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이나 남한과의 관계 강화뿐이라는 것이다.
김연철 박사는 "북중 경제협력의 주체가 아직까지는 중국 정부 차원의 공적 투자 성격이기보다는 민간기업 차원의 성격이 더 크다"며 "최근의 북중 관계 강화를 북한경제의 대중국 예속 등으로 너무 과장해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서동만 교수는 "북한 내부 시장변화에는 대외적인 안보위협 감소가 대단히 중요한 전제조건"이라며 "최근 북중관계 강화 움직임을 북한이 남한을 빼고 중국으로 선회하려는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김근식 교수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은 경제적 필요성도 분명히 존재하나 대외적·정치적 측면에서 상당한 큰 고민의 표현"이라며 "9.19 이후 오히려 노골화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대한 북한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미간 기본적 인식의 엇갈림…한반도 위기 쉽게 풀리지 않을 것"**
또 이들은 조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근식 교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9.19 공동성명의 도출이 "북한의 체제변화에 대한 미국의 욕심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줬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그런 면에서 현재 미국의 대북 전략은 "'북핵문제'에서 '북한문제'로 전화되고 있는 국면"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9.19 공동성명의 실천이행합의서 체결 과정에서 모든 것을 한번에 다 풀고 싶은 것이 부시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미국이 '일괄타결'을 주장할 경우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도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연철 박사는 "현재 부시 행정부는 각 부서의 고유 성격에 따라 제각기 문제를 제기하는 경향이 있다"며 "과연 미국 행정부 내에서 합의되고 공유된 대북 전략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김 박사는 "그와 달리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라는 정치적인 측면을 전제로 북-미 관계에 접근하고 있다"며 "이처럼 북한과 미국의 접근목표가 달라 '엇갈림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서동만 교수는 부시 행정부 각 부서간 입장이 서로 상충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냥 두는 것이 오히려 '미국 대북정책의 핵심'이라며 "이를 알면서도 그대로 두고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그런 면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강온 양면의 전술"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남북관계 진전에서 온다"**
〈사진 : 대담장면〉
이들은 현 상황의 돌파구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꼽았다. 서 교수는 "북중관계가 본격적으로 진전되고 있으며 어쨌든 남북관계도 꾸준히 진전되고 있다"며 "북미관계만 막혀 있는" 상황을 미국이 그대로 둘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근식 교수도 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해결하기 위해 "남한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상회담뿐"이라며 "체제변화라는 미국의 요구를 누그러뜨릴 정도로 적극적인 북한의 태도 변화는 남북간 정상회담을 통해 도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연철 박사는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의 정책변화의 요인은 미국 내부의 자체적인 변화라기보다는 북한의 움직임이었다"며 "9.19 공동선언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김 위원장의 6.17 면담이 대북정책 전환의 계기를 제공하면서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김 박사는 결국 미국의 대북 정책 전환은 "남북관계의 변화나 북한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의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역사적 전환기에 걸맞는 정부의 정책 결정과 긴장감 필요"**
이들은 한미FTA와 전략적 유연성 합의 등 최근 남한 정부가 보이는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서동만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 평화번영전략' 등을 내놓으며 보였던 집권 초기의 모습에서 최근 거꾸로 가는 측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근식 교수도 "미국의 세계 전략이나 동아시아 구도에 남한이 일방적으로 편승하는 이미지를 보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김연철 박사는 "지금 상황은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고 전환기"라며 "하나하나의 결정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만큼 좀 더 긴장감을 가지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한반도 브리핑' 연재를 시작하는 각오도 밝혔다. 김연철 박사는 "전환기에 걸맞는 상상력"을, 김근식 교수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각각 갖겠다고 다짐했다. 서동만 교수도 "정확한 인식과 방향성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날 본사 사무실에서 진행된 좌담의 내용이다.
***北-中 경제협력 강화는 北이 마주한 대외 정세 때문**
유영구 : 오늘 좌담은 앞으로 〈프레시안〉에 매주 연재될 '한반도 브리핑'을 시작하기에 앞서 참여 필자들의 견해를 사전 조율하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독자들에게는 오늘의 북한 상황, 특히 6.15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사전 브리핑한다는 의미도 있다. '한반도 브리핑'에는 서동만, 박순성, 김근식, 김연철, 임원혁 박사 등이 참여할 예정인데 임원혁 박사는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라 참석하지 못하셨고 박순성 교수께서는 개인 사정으로 이 자리에 오지 못했다.
<사진 : 유영구>
우선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볼 때 북한의 내부 사정이나 정책의 변화, 대외정책의 변화에서 시작해서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이 한반도를 어떻게 다루려고 하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오늘 좌담에서는 일단 그 문제를 얘기하고 그 이후에 현재 한반도는 어떤 시점에 와 있는지와 우리 정부와 민간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얘기하는 순서로 진행하겠다.
우선 감각적으로 눈앞에 당장 느껴지는 북한의 변화는 지난 1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현재(21일) 시점에서 계속되고 있는 장성택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중국 방문일 것이다. 이런 흐름들을 두고 여러 해석들이 많다.
북한이 자체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든, 남한식의 해석이든, 아니면 그저 일반론의 개혁·개방이든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최근의 움직임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먼저 짚어보자.
김연철 : 최근 북·중 관계부터 시작하자.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의 의미와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북한이 현재 대외정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는 포괄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북한은 지난해 9.19 공동성명을 계기로 오랜 국가 목표였던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루고자 했다. 그런데 현재 북한 지도부가 마주친 대외정세는 그런 바램이 잘 이뤄지기 힘든 현실이다. 따라서 북한 지도부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적으로도 현 난관을 타개하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 및 남한과의 관계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나 장성택 부부장의 방중을 계기로, 북한 경제의 대중국 종속 가능성을 과장하거나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분석은 과도하다. 그것은 현재의 북·중 관계가 과거 양국의 전통적인 혈맹 관계와는 약간 다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과 북한 모두 서로간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여러 면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에 양국의 최고 지도부들 간에 상호방문 외교를 확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북·중 경제협력의 주체가 아직까지는 중국 정부 차원의 공적 투자 성격보다는 중국 기업 차원이 더 큰 것 같다. 이미 시장경제가 많이 진행된 중국이기 때문에 북한의 저임금과 교역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노린 기업들이 접근하는 경향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북·중 관계의 강화를 너무 과장해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지금과 같은 북·미 관계의 교착상태에 길어지고 6자회담의 돌파구가 쉽게 마련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 북·중 관계가 더욱 강화될 것은 당연하다.
서동만 : 개혁·개방은 북한이 내부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아서 늦춘 면도 있지만 역시 대외관계 변화와 상당히 많은 부분 연동돼 있다. 만일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당시에 북·미 관계 정상화가 이뤄졌다면 북한의 개혁·개방은 그 때부터 가시화됐을 수 있다. 즉 북한의 본격적인 내부 시장 변화는 북·미 관계와 북·일 관계의 '정상화' 또는 최소한 '안정화' 이후에 간다는 것을 기본 순서로 잡고 있었다고 보인다. 그런데 당시 그것이 여의치 못했던 것이다.
결국 북한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변화가 나타나자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는가. 2000년 이후 남북관계가 안정화되면서 북한은 '6.15 시대'라는 명칭으로, 그것을 김정일 위원장의 통일노선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얘기하는 '6.15 시대' 속에는 '시장화'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내부 시장변화에는 대외적인 안보위협 감소가 대단히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김연철 박사도 언급했듯이 북·중 관계의 강화 움직임이 북한이 남한을 빼고 중국으로 선회하려는 것으로 보기는 좀 힘들다. 또 남북관계 없이 북·중 관계에만 집중한다는 것은 중국의 입장에서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중국은 남한과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기대와 현실 사이의 긴장관계'로 인한 '평양의 잠 못 이루는 밤'**
유영구 : 중요한 지적이다. 북한의 '전략적 변화'라고 하면 역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경제적 변화가 불가피한데 그것이 지금까지는 여러 대외적인 상황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북한이 2000년 정상회담으로 여러 상황이 좋아지자 이듬해인 2002년 7.1 경제개선조치를 바로 발표하지 않았는가.
김연철 : 7.1 경제개선조치의 핵심은 '가격의 현실화'와 '임금 현실화'였다. 북한은 이 조치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 암시장을 공식적인 영역으로 흡수하고자 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급의 문제다. 공급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만 가격 안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또 가격이 안정되어야 임금 현실화가 노동의 인센티브로 그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문제는 공급의 안정을 이루기 위해 북한 자체의 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릴 뿐더러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은 공급을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현재 북한의 대외무역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북·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조총련을 통한 일본과의 무역도 많이 축소됐다.
북한은 경제 운용에서의 핵심 품목인 식량과 에너지의 대외 의존도도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런 것들을 대체로 남한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원유의 경우 그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한다. 식량도 남한이 많이 지원해주고 있으며 중국도 한몫을 하고 있다.
유영구 : 북한이 국가 전략물자라고 할 수 있는 식량과 에너지를 남한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 현재 북한의 정세를 규정한다고 볼 수 있겠다.
김근식 : 현재 북한의 내부 사정을 생각해 보면 김정일 위원장이 편히 잠을 자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평양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나 북한 지도부가 생각하고 얻고자 하는 전략적 의도와 기대를 이룰 수 없게 만드는 현실적 제약이 너무 많다. 그 현실에 의해 전략적 의도의 수준을 낮추거나 심지어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즉, '기대와 현실 사이의 긴장관계'가 이어지고 있으니 정책 추진자인 김 위원장으로서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이는 북한 내부 상황도 그렇고 북미관계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식 개혁·개방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싶어 했으나 그 기대가 10년 이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 북·중 협력강화는 중국이 북한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측면도 있지만 북한 역시 생존 전략적 차원에서 그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중국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이것은 김 위원장이 그리 내키지 않는 일임에 틀림없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민족끼리'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며 북한이 강조하는 데에는 북한의 적극적인 공세적 측면도 있지만 그 이면에 남한으로부터 불어오는 남풍에 대한 수세적 입장도 분명히 공존한다. 남·북 관계는 김 위원장의 결단으로 풀린 것인데, 그 뒤 대남 통일전선 확대나 남한 내 혁명세력의 강화와 같은 기존에 의도했던 성과들이 이뤄지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반대되는 역풍이 불어오기도 하는 것이 곤혹스러운 일인 것이다. 결국 북·중 관계나 북·미 관계, 심지어 남·북 관계까지 모두 당초 전략적 의도와 실제 현실의 어긋남이 김 위원장을 잠 못 이루게 하는 것이다.
〈사진 : 김근식〉
이번 방중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사실 과거에도 북한은 여러 차례 그런 경험이 있다.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추진하고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 등 획기적인 정책의 전환을 보여줬던 1991년의 호재가 1992년 핵문제가 터지면서 아무런 성과로도 이어지지 못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2002년만 해도 그렇다. 2002년 7.1경제개선조치를 발표하고 북·일 정상회담을 하고 신의주 특구 건설 계획을 세우는 등 새로운 개혁·개방의 전략적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보였으나 그 해 10월 켈리 차관보가 와서 모두 엉망이 됐다.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전략적 의도와 개혁·개방 프로그램이 주어진 조건과 현실에서 어그러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사실 9.19 공동성명만 하더라도 김 위원장이 미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지만 11월부터 미국이 위폐 문제 등을 제기하며 목을 조르고 있지 않은가. 그 고민 속에 중국에 기대려고 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결국 김 위원장의 방중은 경제적 필요성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외적·정치적 측면에서 상당한 큰 고민의 표현일 수 있다. 9.19 이후 오히려 노골화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대한 북한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방중 당시 중국 남쪽 지방을 시찰한 것은 경제의 개혁·개방 의지를 보여주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 북·중 관계를 활용해서 버티기도 할 수 있다는 다른 메시지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대북전략, '북핵문제'에서 '북한문제'로 전환 中**
유영구 : 북한이 가진 생존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미국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의도에 훼방을 놓는 상황에서는 김 위원장의 전략적 의도가 도전을 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세에 따라 계속 전략을 수정하는 국면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김근식 박사가 강조했다.
다른 얘기를 해보자. 그렇다면 미국이 도대체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위폐문제를 놓고 지난 7일 뉴욕에서 미국과 북한이 접촉했다. 여러 언론 보도들로 짐작해 보면 북한은 이 접촉에서 융통성을 발휘해 미국을 대화로 끌어들이려 했던 것 같다. 북한의 정책변화가 엿보이는 지점이다. 그런데 미국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김근식 : 최근 미국의 대북정책의 의도는 부시 행정부 1기 때나 적어도 작년까지의 기조와는 조금 변화를 보인다는 판단이다.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9.19공동성명으로 북한의 체제변화(system transformation)에 대한 미국의 의도를 현실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미국은 북한을 내부 붕괴 시키든지 혹은 외부 압박을 통해 근본적 체제 변화를 시키든지 정권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까지는 그것을 실제로 시도할 만한 환경이 되지 못했다. 가장 크게는 남한 정부의 반대가 막강했고 북핵 문제라는 현안으로 인해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할 여력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9.19 공동성명의 도출이 미국에게는 북핵문제 해결 이후에 북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현실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다. 북한의 체제 변화에 대한 미국의 욕심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그것이 인권과 위폐 등의 문제제기로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핵 문제와 별도로 북한에 대한 다양한 압박의 수단으로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 위폐 문제의 경우는 의외로 북한에 미치는 손상이 컸다. 미국은 위폐 문제가 대북 압박의 지렛대로서의 효용이 의외로 크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이 올해 들어 조금씩 양보해가면서 절충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지만, 미국이 단호한 거부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을 봐도 이같은 분석이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미국의 대북전략은 현재 '북핵문제'에서 '북한문제(North Korean Questions)'로 전환되고 있는 국면으로 볼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9.11로 한 동안 정신이 없던 상황이 좀 안정된 이후 북핵 문제가 터져 나오지 않았는가. 부시 대통령은 그 이후 3-4년을 북핵 문제의 악화 방지에 큰 힘을 쏟아 왔는데, 지난해 9.19 공동성명으로 북핵 문제가 관리가 가능한 단계가 된 것이다. 즉, 이제 북핵 해결 이후에 하고 싶었던 북한문제라는 미국의 본심을 새로이 꺼내들 국면이 조성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위폐를 꺼내들었더니 북한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아파하더라는 것을 미국이 알게 됐다는 점이다.
***미국식 '일괄타결' 주장으로 6자회담 재개돼도 상황 더 복잡해질 것**
서동만 : 북핵 문제가 위기 국면은 넘겼고 관리수준으로 갔다는 얘기는 타당한 지적이다. 다만 북핵 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을 온건책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위기국면에서 위기를 넘길 때까지는 '협상'이라는 것이 '온건책'이었지만 그 이후의 모습을 보면 실제로는 애초부터 강온 양면의 전술이 마련돼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전까지는 강온이 통합되지 못했지만 어쩐 일인지 9.19 합의를 전후해서 사실은 거의 동시에 위폐 문제가 제기됐다. 이는 비록 그것이 사전에 미국 정부 내에서 조율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 이전까지 통합되지 못했던 강온의 흐름이 결과적으로는 양수겸장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또 9.19 합의 자체도 반드시 합의를 이뤄내야겠다는 의도 하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측면이 많다. 당시 남한 정부 내에서도 비관론이 훨씬 강하지 않았나. 모두가 극적인 타결이라고 봤다. 그런 면에서도 미국이 반드시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김근식 : 6자회담이 온건이고 위폐 문제는 강경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은 맞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최근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위폐문제도 다룰 수 있다고 한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9.19 공동성명 안에 핵 포기, 북미 국교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경제협력까지 모든 이슈가 다 들어가 있다. 과거에는 먼저 핵동결을 하고 그 다음에 여러 상황을 보면서 북미 관계정상화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봤는데 지금 미국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인 듯하다.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실천합의사항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다 한번에 풀고 싶은 것이 부시 대통령의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사실 북한이 6자회담에 나와 회담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오히려 미국의 대북 공세는 더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9.19 합의 실천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테이블에 꺼내놓고 일괄타결하자고 나온다면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유영구 : '일괄타결'이라는 표현이 재미있다. 일반적으로 일괄타결이라고 하면 북핵 문제를 포함해 북미관계정상화까지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을 그렇게 부르지 않았는가. 김근식 교수가 얘기한 미국식 일괄타결이라면 미국이 6자회담을 풀어가면서 자기들의 의제를 다 동시에 풀어놓고 모든 것이 해결돼야 합의된다고 강조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김근식 : 실제로 확인된 바는 없지만 미국이 구상중인 6자회담의 실천합의안도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하나도 해결해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도 가능하다. 결국 북한이 6자회담에 들어와 회담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미국의 입장이 그렇다면 아무 성과도 얻기 힘든 복잡한 상황이다.
***북미간 엇갈림 현상…남북관계 더 진전되면 미국의 대북정책 변할 것**
유영구 : 지난 20일 더글러스 앤더슨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자문위원과 주한 미 대사관 관계자가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이 방문에 대해 주한 미대사관 관계자는 "개성공단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서 갔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들을 보면 이종석 통일부장관이 언급한 미국의 '미묘한 변화'를 점쳐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연철 : 일단 '미묘한 변화'라는 표현을 해석하는 방식에 혼란이 있는 것 같다. 미묘한 변화란 어떤 단기적인 정책 변화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미국 내에서 한반도 문제를 장기적이고 넓은 시각 속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하는 말로 알고 있다. 한반도 정세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조짐을 구체적인 상황에 대입해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조금 더 복잡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과연 미국 행정부 내에서 합의되고 공유된 대북 전략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다시 말하면, 현재 부시 행정부는 각 부서의 고유 성격에 따라 문제제기하는 경향이 있다. 재무부는 위폐 문제를, 비확산쪽은 대량살상무기(WMD)의 비확산 차원에서, 국무부 동아태국은 북핵 문제를, 인권 담당은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움직임들 속에 모순이 있는데, 이 모순들을 하나의 전략으로 묶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리근 북한 북미국장이 뉴욕에 가서 미국 재무부와 위폐를 놓고 접촉했을 때도 재무부는 기술적 브리핑을 한 것일 뿐이었다. 북한은 그와 다르게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라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접근목표가 다르고, 이같은 엇갈림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사진 : 김연철〉
북미관계에 대해서는 상징적인 두 가지 얘기가 있다. 최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부 장관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1986년 남한을 방문해서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고 적고 있다. 당시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북한정책에 대해 물어봤더니 김 전 대통령이 붓글씨로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사자성어를 한자로 적어서 줬다고 한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1998년 김 전 대통령의 취임식 때 그 글씨를 가져와서 직접 사인을 받았다.
이 얘기는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1999년 방북 이후 했던 얘기와 같은 맥락이다. 페리 전 장관은 방북직후, 지금까지 미국은 미국이 원하는 북한을 머릿속에 그려 대북정책을 추진했지만, 지금부터는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협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 부시 행정부 내에서 실사구시를 깨닫는 세력이 대단히 소수이며 별다른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두 번째 얘기는 미국의 대북 정책의 변화 요인과 관련된 것이다. 1989년 베이징에서 북한과 미국이 참사관급 접촉을 시작한 이래 미국의 대북정책이 변화하는 몇 번의 결정적 계기들이 있었다. 1994년 제네바 합의가 그랬고, 1999-2000년의 상황이 또 그랬다. 가장 최근의 계기는 지난해 9.19 공동성명의 발표다.
이 시점들을 잘 보면 역시 정책 변화의 요인은 미국 내부의 자체적인 변화라기보다는 북한의 움직임이 미국 내에서 협상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는 자극이 됐다. 제네바 합의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1999-2000년 상황은 페리 보고서의 작성과정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9.19는 정동영 전 장관과 김정일 위원장의 6.17 면담이 대북정책의 전환 계기를 제공했다. 다시 말해 앞으로도 미국의 대북정책의 전환은 미국 자체의 동기라기보다는 남북관계의 변화나 북한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의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美행정부 각 부서간 '대북정책 모순', 알면서도 이용…'강온 양면'의 정책**
유영구 : 미국의 대북정책이 하나로 통합돼서 나오는지 아니면 세세한 부분이 각기 따로 모순된 채 존재하는지는 서로 다른 얘기인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그렇게 다른 것도 아니다. 미국은 '인파이터'는 안하고 '아웃복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밖으로 돌면서 링 밖에서 싸움을 지켜보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서동만 : 미국 정부 내에 '통합된 전략이 없다'는 것은 설명 방식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서로 상충되는 정책들을 하나의 정합성을 가진 정책으로 가져가야 일관된 정책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서로 상충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둔다는 것이 미국의 대북정책의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강온 양면'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사실 부시 행정부가 자기 내부의 각 부서가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 서로 모순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알면서도 그대로 두고 이용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김연철 : 바로 그 지점에서 부시 행정부와 그 이전 정부의 차이점이 있다. 핵문제가 다자협상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나. 6자회담의 핵심은 북미 양자협상이고 그 양자협상이 전체 6자회담의 결과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북미 양국의 불신을 넘어서 합의를 이루어 냈던 것이 또 6자회담의 역동성이다.
사실 제5차 6자회담 이후부터 상당한 역할을 담당해 온 중국과 남한의 역할이 위폐라는 특수한 성격의 사안이 발생하면서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김근식 교수가 말씀한 것처럼 미국은 한 바구니 안에 모든 것을 담아 풀려고 생각할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9.19 공동성명의 채택 과정에서는 그런 방식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쟁점 사안들을 뒤로 미루는 방식으로 처리한 것이다.
9.19에 모호하게 처리된 '인도적 사안(humanitarian issue)'만 보더라도 이를 두고 일본은 일본인 납치 문제로 해석하고, 미국은 북한 인권 문제로 생각하며, 북한은 말 그대로 인도주의로 생각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6자회담 틀 내에서 어떻게 흡수되고 소화되고 작용할 것이냐는 문제에는 중국과 남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서동만 : 미국은 사실 북한과 직접 대화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또 강경 일변도로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6자회담도 하고, 그 속에서 직접 대화도 하게 됐다. 거기다가 6자회담을 하면서 과거 북미 양자 대화구도와 달리 중국과 남한의 역할만 커지고 미국의 역할이 줄어든 것이 작용했다. 9.19 공동성명 발표 직전까지 그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미국이 9.19 공동성명 합의까지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된 측면이 있다.
이는 그동안 협상을 피해 왔던 미국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가버리는, 당초 의도에 반하는 역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내부 강경 흐름으로부터 문제제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이전부터 시작돼 왔던 것이 위폐 문제로 동시에 제기되면서 강온 양면의 방식으로 간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이것을 비관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복합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종래의 어정쩡한 태도가 통하지 않게 된 데 따라 강경책이 돌출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유영구 : 결국 6자회담은 앞으로 실천이행합의서 채택이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거기서 여러 의제들이 나올 텐데 서로 많은 부분 밀고 당기는 신경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9.19 공동성명이 전격적으로 실행되는 방식의 실천이행합의서가 아니라 여러 의제가 논의되는 과정에서 미국은 시간끌기로 갈 가능성이 높지 않나.
서동만 : 실천이행 단계에서 각국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자는 것이 당초 9.19 공동성명의 정신이었다. 중국은 이미 그 역할을 먼저 해나가고 있다. 남한의 경우는 9.19 공동성명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다가 주춤한 상태다.
***現 한반도 정세 2005년 상반기보다 심각한 위기**
유영구 : 서동만 교수의 얘기는 다시 말해 북중 경제협력 강화 조치를 통해서 중국이 이미 한반도 정세 안정화를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 시점에서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도 얘기해볼 필요가 있다.
김근식 : 지난해 상반기를 좀 되짚어 보자. 2004년 9월로 예정됐던 제4차 6자회담이 한동안 열리지 못하고 10개월 만인 작년 7월에 회담이 열렸다. 그 기간 동안 북한은 지난해 2월 10일 핵보유 선언을 하며 6자회담의 판을 뛰쳐나갔고, 미국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북핵문제의 안보리 상정까지 거론하기도 했다. 5월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있다는 논란이 있을 정도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의 어려움이라는 것은 북미가 직접 만나니 해결된 측면이 있다.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직접 만나고 나니 해결됐다. 힐과 김계관이 만나서 합의하면 문제를 타개할 수 있을 정도의 위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더 비관적이다. 그 이유는 힐과 김계관이 이미 만났다는 데 있다. 지난 1월 19일 중국에서 이미 둘이 서로 만났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다. 리근 국장도 뉴욕에 갔지만 역시 아무 소식이 없다. 북미가 만나서 해결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작년 상반기가 양측이 서로 만나서 서로 원하는 것을 털어놓고 얘기하면 돌파구가 생기는 상황이었던 것은 당시의 이슈가 핵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은 지금 북한 체제 전반에 대해 문제 삼고 있고 따라서 양국의 고위층이 만난다 할지라도 해결되기가 힘들다. 미국의 대북 체제변경의 움직임을 북한이 바꾸라고 한다고 미국이 바꿀 리가 없다. 따라서 작년 상반기보다 지금 진행되는 교착 상태의 국면이 더욱 구조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는 작년은 부시 행정부 2기가 막 시작된 해로, 라이스-힐로 이어지는 국무부 협상 라인이 힘을 받던 시점이었다. 지금은 워싱턴에서 힐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힐이 공식적인 자리에 나오지를 않는다. 이는 힐이 가진 협상권과 재량권이 약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9.19 공동성명이 나온 직후 미국 내 네오콘들의 불만이 상당히 컸다. 그들은 9.19 공동성명이 '제2의 제네바 합의'라고까지 말했다. 이런 상황도 작년보다 더 비관적인 이유라 볼 수 있다.
또 작년은 6자회담의 재개에서 남한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었다. 6.17 면담이나 중대제안 등으로 남한이 실제 그런 시도를 많이 했다. 그런데 지금은 6자회담 자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 충돌에서 남한과 중국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북·미간 양자 이슈를 놓고 문제가 복잡하게 꼬여가는 상황에서 남한이 개입할 여지가 상당히 적다. 지난해 5차 회담을 앞두고 위폐 문제가 터져 나왔을 때 당시 송민순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가 '9.19 공동성명이 가는 길에 접촉사고가 났다'고 표현한 바 있다. 접촉사고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었다. 보험회사 등이 와서 해결해줄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 북미 양국이 해결해야 한다. 사고로 막혀 있는 길에서 남한이 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상당히 중요한 국면의 전환이 예상되는 시점이다. 그런 면에서 조심스럽고 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현 위기 돌파구는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뿐**
서동만 : 어려워졌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추세를 잘 살펴보면 진전국면이 먼저 있었고 그에 대한 역풍이 있었던 것이 과거와 다른 점이다. 어려워진 측면이 분명 있지만 한편으로는 북·중 관계가 본격적으로 진전되고 있다. 그것은 또 다른 상황이다. 어쨌든 남북관계도 꾸준히 진전되고 있다. 북미관계만 딱 막혀있는 것이다. 미국이 이런 추세를 그냥 둘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예컨대 남한이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면 미국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분명 생길 수 있다.
김연철 : 저는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리라고 본다. 미국에는 올해 중간선거가 있다. 미국에서 정치의 시기, 그것이 대북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고 본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지난해 APEC때 부시 대통령이 한·미·일 3국 순방 당시 보인 태도다. 일본에서는 '자유의 확산'을 얘기했고, 중국에서는 교회에 갔다.
현재 미국 내에서 공화당 지지율이 많이 떨어져 있고, 부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도 상당히 떨어진 상태다. 그러다 보니 부시 행정부의 선거 전략은 보수층의 결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 보수층 결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외교'다. 또 도덕외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인용할 수 있는 있는 사례가 바로 북한의 인권문제나 폭정 같은 것이다. '자유의 확산' 차원에서 미국 국내 정치적 담론으로 이용하기에 용이하므로 대북 적대정책은 선거가 가까워짐에 따라 오히려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유영구 : 미국의 국내 사정을 봐도 그렇고, 최근 미국이 제기하는 이슈들의 성격이 모두 단기간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므로 한반도 정세가 전반적으로 경색될 측면이 있다는 얘기인 것 같다.
***'2차 남북정상회담을 6자회담 봐가면서 하겠다'는 남한 기조 바뀌어야**
유영구 : 그렇다면 최근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어떨까. 시기는 아직 예단하기 이르지만 이뤄진다면 현 난국의 돌파구가 열릴 것 같다. 더욱이 우리 국민도 2차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관심이 뜨겁다. 2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비롯해 올해 남북관계의 전망을 해보자.
서동만 : 적어도 현재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더 큰 양보를 할 상황은 아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남한이 주는 만큼 내놓을 것이다. 물론 북한은 남북관계를 경색시키지는 않을 것이고 최소한 현상유지와 꾸준한 화해협력의 진전을 해나갈 것이다.
〈사진 : 서동만〉
2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얘기하려면 김대중 정부 때 왜 2차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았는지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당시 전력지원 문제가 가장 큰 이슈였는데 그것이 잘 안 풀렸다. 게다가 미국의 정권교체가 있었다. 이런 상황이 겹치면서 어려워진 것이다.
노무현 정권에서도 여러 사정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여러 정책은 북미관계 개선의 진전도를 보면서 남북관계를 개선한다는 것이었다. 정상회담도 북핵 문제의 해결되는 추이를 보면서 그 실마리를 잡겠다고 노 대통령이 발언한 바도 있다. 그 접근방식에 아직까지는 변화가 없다. 9.19 공동성명 이후 새롭게 시도해보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다시 쑥 들어가 버렸다. 기존의 정책이 수정됐다는 조짐들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6자회담에서 일정 정도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면 2차 정상회담으로 간다는 것이 현재 남한 정부의 입장인 것이다.
북한에서는 또 2차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전력지원과 같은 대폭적인 경제협력을 기대할 것이다. 이러한 남북의 기존 접근방식에 변화가 생겨야 정상회담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김근식 : 내년이 남한의 대선이 있는 해라는 점에서, 만약 2차 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그 시기는 올해 안, 아마도 하반기에 성사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2차 정상회담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북한을 이끌어내겠다는 욕심이나 의지는 대통령이나 정부 모두 없는 듯하다. 정상회담은 정상들이 하는 것인데 노 대통령이 그런 의지가 별로 없으니 가능성은 낮다고 하겠다. 노 대통령은 '굳이 우리 정부가 여러 차례 나서서 북한에 흥정을 하면 물건 값만 올라갈 뿐'이라는 취지의 발언도 한 적이 있다. 실용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반도 정세가 최근 앞서 얘기한 것처럼 구조적 악화로 치닫고 있고, 북미 양자 대결구도에 남한과 중국이 개입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데 있다. 이같은 상황을 일정 정도라도 해결하기 위해 남한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상회담뿐이다.
김 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서 등소평의 개혁·개방 선언과 같은 내용의 언급을 한다면 미국도 더 이상 강경하게 나오기는 힘들다. 결국 체제변화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적극적인 북한의 태도 변화는 남북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도출될 수 있다. 북한이 적극적인 태도 변화를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나 배경을 정상회담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다. 또 그것은 한반도 문제는 우리 민족이 주도해서 풀어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개성공단에 앤더슨 의원이 방문한 것도 미국의 복잡한 고민을 보여준다. 사실 과거 미국이 북핵문제만을 고민할 때는 개성공단에 부정적이었다. '북핵 문제가 풀리지도 않았는데 무슨 개성공단이냐'는 입장이던 미국이 북핵문제에서 북한 문제로 옮겨가면서 개성공단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이 과연 북한의 체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체제변화를 가져온다면 중국이 주도하는 것보다는 남한이 주도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와 같은 복잡한 고민을 미국은 하고 있다.
〈사진 : 김근식 2〉
결국 앞으로 1-2년 간 북한을 놓고 한·미·중이 벌이는 전략 게임이 상당히 치열하고 복잡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그 게임의 주도권을 노 대통령이 쥐고 미국보다 먼저 앞서 나가지 않는다면 수세적인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
***'평화 유지'는 러닝머신에서 운동하는 것과 같아…끊임 없이 움직여야**
김연철 : 남한의 대북 정책에는 '평화 유지(peace keeping)'가 있고 '평화 증진(peace making)'이 있는데 사실 이 둘 다 모두 중요하다. 북핵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과 같은 실무적 변화가 이뤄진다고 해서 '평화 유지'가 가능하겠느냐. 평화 유지는 러닝머신에서 운동하는 것과 같다. 러닝머신에서 제 자리에서 서 있기 위해서는 뛰어야 하지 않나. 평화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늘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2차 정상회담의 목표를 과대하게 '평화 증진'으로 잡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정상회담이 최소한 상황 악화를 방지하고 평화를 관리하는 그 정도의 목적으로 갈 수 있지 않나. 또 정책결정 구조가 김 위원장에게 집중돼 있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정상회담을 하기만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성과는 반드시 있다. 그것이 우리가 원했던 만큼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최소한 현재 상황보다는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서동만 : 사실 북일 정상회담만 보더라도 고이즈미 총리는 이미 한 사람이 두 번이나 했다. 실질적으로 얻은 성과는 별로 없다 하더라도 말이다. 남북은 2000년에 한 번 하고 못하지 않았는가. 또 북·중 정상회담은 수차례 이뤄졌다. 굉장한 불균형이다.
또 '정상회담'이라고 하면 정치적 이용이나 그런 것들을 우선 떠올리는 것도 문제다. 사실 지금 노무현 정부 3년차인데 남측 기준이지만 한 정부에 적어도 한 번씩은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6.15 시대'를 시작한 마당에….
김연철 : 내년은 우리 대선이 있기 때문에 연내에 해야 한다. 따라서 만약 2차 정상회담을 한다면 올해 지방선거 이후인 6월부터 12월 사이가 될 텐데 사실 시간이 별로 없다.
서동만 : 맞다. 결국 2차 정상회담은 남북이 기존의 접근 방법을 바꿀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FTA·전략적 유연성, 힘의 한계라기보다 정책과 전략의 문제**
유영구 : 한미 FTA나 전략적 유연성 등의 미국의 남한 정부에 대한 정책 얘기를 조금 해야 할 것 같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군사적 측면과 경적 측면의 변화가 남한 정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좀 얘기해보자.
서동만 : 동북아시아 경제협력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추동력이다. 중국의 경제 구상이 있고, 한·중, 중·일 관계 속에서 남한 경제는 분업적 연관성 속에 입지가 상당히 넓어졌다. 우리 휴대폰이나 가전제품의 인기나 한류 열풍 등을 보면 남한 경제의 입지가 상당히 넓어졌음을 알 수 있다. 경제나 문화 분야에서 동아시아 표준이란 것이 성립할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측면이라면 동북아 경제협력을 뜻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시대의 평화번영 정책을 언급한 것도 그런 의미이다. 사실 북핵 문제로 인해 일정 부분 벽에 부딪혔지만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완전히 거꾸로 간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전략적 유연성과 FTA 문제였다. 이 두 가지에서 첫 번째 문제는 남한 내부에서의 정책적 정합성의 문제다. 그 다음으로는 국민과의 신뢰의 문제가 있다. '참여정부'라는 것이 국민의 참여를 존중한다는 것인데 사실 그 두 사안의 경우는 의사결정 과정이 그렇지 못했다. 그것이 큰 문제였다.
사실 지금까지 진전된 것으로 볼 때 남한경제의 위상이 높아진 측면이 있는데 이 두 사안을 보면 오히려 한·미 관계에서는 거꾸로 미국에 더욱 의존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남한의 객관적인 힘의 한계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정책 내지는 전략의 문제인 것이다.
〈사진 : 서동만 2〉
그런 면에서 상황을 냉정하게 규정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두 사안 모두 미국이 하고 싶어 한 면이 큰 것 아닌가. 그런데 거꾸로 남한이 꼭 해야 하는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동북아시아에서 정치·군사적 관계와 경제적 관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북핵 문제만 보더라도 남한의 외교적 역량이 넓어지고 중국의 경제력이 성장하는 가운데 북·중 관계가 진전되면서 제1차 북핵위기 때보다 진전된 측면이 있다. 특히 부시 정부 일각에는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결합시켜 한·미·일 3각 관계로 가겠다는 구상이 있는데, 이것은 시대에 역행적일 뿐더러 성립하기도 불가능한 구도다. 이 구도를 목표로 미국의 정책을 추진한다면 이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즉, 동북아시아에서는 정치·군사적 관계와 경제 관계의 어긋남이 있는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일본이 미국과 정치-군사 관계를 긴밀히 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사실 굉장히 신중하다. 이제까지의 군사적 동맹처럼 경제도 생각한다면 미일 FTA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1998년 'Japan passing'이라고 해서 당시 클린턴 대통령이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일본을 건너뛰고 중국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던 일이다. 여전히 동북아시아에서 정치-군사적 관계와 경제적 관계의 엇갈림이란 구도가 변한 것은 아니다. 미·일동맹은 정치·군사로는 강화되고 있지만, 경제협력에서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더욱이 1997년 IMF 금융위기 이전에 일본의 아시아통화기금(AMF)의 구상이 있었지만, 미국의 견제로 좌절된 적이 있다. 또한 최근 동아시아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의 경제협력이 진전되는 데 대한 미국의 초조함이 있다.
사실 노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번영전략은 경제를 중요시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아세안+3와 한·일, 한·중 관계에서 FTA로 간다고 한 구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것은 다 포기하고 미국에만 집중하는 듯한 흐름이 조성되고 있다. 한-일 간의 경우는 역사 문제가 걸려 있기는 하지만 경제 관계에서는 어떤 심각한 변화도 없었다.
유영구 : 그런 변화 없음에도 미국이 거는 드라이브에 흡수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우리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책적 선택의 문제라는 말이란 얘기죠.
서동만 : 그렇다.
***現 한미관계, '시대의 요구'와 '정책 선택의 현실' 사이에 괴리**
김근식 : 외교안보 전략의 맥락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구상이 동북아라는 지역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가려는 것 같다. 과거 냉전 시대에는 양자동맹에 충실했다면 이제는 동북아도 하나의 지역으로서의 공통의 상상력과 공통의 협력을 만들어내자는 구상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평화번영이 사실 동북아라는 지역에서 출발하는 것인데, 한미 FTA나 전략적 유연성은 좀 뜬금없는 면이 있다.
더욱이 대북정책을 놓고 미국과 남한 정부가 일정 정도 균열되고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굳이 전략적 유연성과 같은 미국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임으로써 미국의 대북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그래서 오히려 FTA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큰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의 미래나 비전에 대해 한미 정부 사이의 일정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각론이었는데, 이제는 순서를 바꿔서 총론적 방향에서 한미동맹의 미래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총론적 방향을 합의하고 각론을 얘기하면 더 쉽지 않겠느냐.
지난해 노 대통령이 얘기한 동북아 균형자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번 일은 역시 뜬금없다. 동북아 균형자는 미래 남한의 외교안보 구상으로 의미는 분명히 있다. 역량의 문제를 떠나서 하는 얘기다. 그것을 이루려면 장기적 마인드가 필요한데, 미국의 세계 전략이나 동아시아 구도에 남한이 일방적으로 편승하는 이미지를 보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통령이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비전이 없는 것 같다.
김연철 : 한미관계를 평가하는 방식에 관련해서는 분명히 시대의 요구라는 한 측면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책 선택의 현실이 있다. 현재상황은 두 가지 차원 사이에 분명한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책선택의 현실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지금 상황은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고 전환기다. 특히 한미동맹의 위상과 비전에 관련해서는 하나하나의 결정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좀 더 긴장감을 가지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진 : 김연철 2〉
현 남한 외교의 목표는 한미동맹이라는 한 축과 동북아 지역협력이라는 또 다른 축이 있다. 그런데 그 두 관계가 상충됐을 때 그것이 과연 남한의 국익에 바람직할까를 따져봐야 한다. 전략적 유연성만 하더라도 '최근의 한미군사동맹 강화를 동북아 지역 내의 국가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해석할까'는 대단히 중요하다. 중국이 북한과 지난해부터 전략적으로 관계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이 작용하고 있다.
한미 FTA의 경우는 양면협상이라고 본다. 상대 국가와의 협상이 있고 또 국내의 이해 당사자들과의 협상이 있다. 두 가지가 모두 이뤄져야 FTA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미 FTA의 추진 과정은 국내 이해 당사자들과의 협상 준비 등의 측면에서 대단히 아쉬운 점이 많다.
***정확한 현실인식과 진단을 통해 대안 내놓는 연재 만들 것**
유영구 : 오늘 이 좌담은 최근 변화하는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북미관계 등에 대해 주간 단위로 〈프레시안〉에 분석 칼럼을 연재하기로 함에 따라 그 첫 시작으로 진행된 것이다. 올해는 정세 하나하나가 다 중요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에 대한 각오 같은 것을 얘기해보자.
김연철 : 다른 것보다 올해가 우리의 외교안보 현실의 전환기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백낙청 선생도 언급한 바 있는 '탈냉전의 상상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구체적인 정세 분석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좀 더 새로운 상상력을 드러낼 수 있는 담론이라든가 그런 역할들을 주간 브리핑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책적 제안과 아이디어를 많이 고민해보겠다.
김근식 : 이번 학기 맡게 된 대학원 과목이 '리더십 특강'이다. 리더십이라는 것이 매우 복잡한 개념인데 리더십에 관한 거의 모든 책들이 그 판단 기준으로 드는 것이 '중요한 외교안보적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였다.
사실 지도자라는 것은 위기의 상황에서 어떻게 분석하고 판단하고 처방을 내리고 돌파하는가, 그 결정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어떻게 끌어내는가인 것 같다. 지금 한반도는 지도자의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시기로 가고 있다.
〈프레시안〉의 이번 연재가 앞으로 다가올 한반도의 도전과 기회 속에 어떻게 리더십을 구현해야 하는가를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현실을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해도 미래를 포기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현실에 대한 가장 냉철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가지고 분석해가겠다.
서동만 : 저 역시 정확한 인식을 하면서 그 인식에 대해 일정 부분 공감대를 넓혀가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일종의 전환기적 변화 상황에서는 정확한 인식이 현실을 열어가는 측면이 있으므로 그런 면에서 정확히 봐야 할 것 같다. 동시에 방향성을 잃지 않고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유영구 : 정확한 현실인식과 진단. 그리고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정책 차원의 대안까지 내놓을 수 있는 연재가 되기를 바란다. 이번 연재가 한반도 정세에 따른 담론이나 대안 제시와 같은 것들이 일상화 되도록 기여해 보자.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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